층간소음, 학대, 삶의 소리
며칠 전부터 듣기 싫을 정도로 앙칼졌던 옆집 강아지의 짖는 소리가 들리질 않았다.
샤워를 하다 문득 별 생각이 다 든 나는 밖에 있는 언니를 소리쳐 불렀다.
"언니. 언니!!!!!"
나의 다급한 부름에 언니는 역시나 한 번에 오지 않았고, 몇 번을 더 목놓아 부르니 언니가 놀라 후다닥 습기가 가득한 욕실 문을 벌컥 열었다. 문틈 사이로 한기가 훅 들어와 온몸의 털이 빳빳이 섰다.
"언니. 그러고 보니까 며칠 전부터 옆집 강아지 소리 안 들리지 않아?
... 혹시 죽은 거 아니야?"
언니는 머리에 동그랗게 샴푸 거품을 올려둔 채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는 나를 어이없어하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뭔 개소리야. 겨울이잖아. 겨울이니까 베란다 창문을 닫았나 보지. 머리 감다 너야말로 웬 개소리냐."
헛소리하지 말고 빨리 마저 헹구고 나오라며 언니는 문을 덜컥 닫았다. 오래된 문의 삐걱거리는 경첩 소리가 마저 나고 나서도, 나는 쉽게 머리 거품을 헹구지 못했다. 베란다 문을 닫아서 소리가 안 들리는 거라면, 그런 거라면 차라리 다행이겠다 싶었다.
반년 전. 그러니까 나시 한 장도 걸치기 싫었던 무더운 여름. 체질상 에어컨을 켜고 자지 못하는 나는 집에 있는 모든 창문을 열어두고 살았다. 평범했던 여름날 아침 6시, 나는 화가 날 대로 나서 노트를 부욱 찢어내 창자에서 올라오는 짜증을 담아 한 글자 한 글자 글을 개발새발 써 내려갔다.
"이렇게 키울 거면 강아지 키우지 마십시오. 밤부터 아침까지 하루 종일 짖게 두는 것도 방임이고 학대입니다. 강아지가 이렇게까지 짖는 거면 뭔가 문제가 있는 거예요. 강아지 학대를 멈추세요. 당신네 집에 갇혀 하루 종일 짖어대는 강아지가 불쌍합니다."
거의 잠을 자지 못해 조금 과장하긴 했지만, 어느 정도 사실이다. 503호 강아지는 목 놓아라 짖어대기로 우리 아파트 단지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과일을 나누러 그 집에 들렀을 때도, 강아지는 꼬리를 잔뜩 내린 채 더욱 목놓아라 나를 향해 짖어댄 적 있었다. 내가 집에 돌아와 씻고 이부자리에 누울 때까지도, 강아지 짖는 소리는 계속됐다.
다음날 퇴근길에 쪽지를 떼어내려고 그 집 앞에 갔을 때는 "남의 집 일에 상관 말라.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쪽지가 대신 붙어져 있었다.
강아지가 진짜로 학대를 받아 하루 종일 짖는 건지,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 짖는 건지, 기쁨의 왈츠를 추며 컹컹 짖는 건지 나는 끝내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목소리만 들어도 체구가 굉장히 작을 것 같은 강아지가 뱉어내는 것은 절규이자 호소에 가까웠다.
수건으로 머리를 돌돌 감고 나와, 벗어두었던 수면 잠옷을 대충 걸치고 베란다로 나왔다. 따뜻한 수증기가 가득한 욕실에 있다 나와서 그런지, 피부가 금세 쩍쩍 갈라질 것만 같았다. 닫힌 바깥 유리창으로도 전해지는 차가운 공기에 어깨가 움츠러들었지만, 냉랭함이 가득한 베란다에 좀 더 머물고 싶었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오히려 조금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 하고.
갑작스러운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12월이다. 추위에 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 뾱뾱이로 창문까지 덮어버리는 겨울이 됐다. 함박눈이 사르르 창가에 내려앉으며, 한순간 세상의 모든 소음이 소복한 눈 사이로 사라져 버리는 것만 같은, 머릿속이 고요해지고 말로 표현하기 힘든 그런 포근함이 있는 12월.
나는 오늘도 이불을 털겠다며 굳이 베란다로 나가 한참을 문을 열고 서 있었다. 개 짖는 소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걸 알리는 경고음이 있다면, 누군가는 들어야 한다. 목에서 간신히 터져 나온 비명 소리가, 두터운 아파트 창문을 뚫고 들어가지 못한 채 폭력이 가득한 집 안만을 애처롭게 맴돌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너무나 있음 직해서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두렵다.
그런 연구가 있을까 상상해본다. 모두가 문을 걸어 잠그는 겨울에 아동학대가 약 29%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는 그런 연구. 서로가 서로를 보거나 들을 수 없는, 거리가 더 떨어진 단독주택일수록 아동학대와 가정폭력이 1.7배 더 자주 일어나고 있다, 는 그런 연구.
최근에 TV에서 아동학대 공익광고를 본 적 있다. 아동학대는 일상의 소음과도 같아서, '조금 더 의심해야 한다'라고 했다.
층간소음에 이웃 간의 갈등이 식을 날 없다는 뉴스가 가득한 요즘이지만, 한 번쯤은 우리가 서로의 생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그 정도로 가까이 있는 존재라는 것도 생각해볼 만하다.
2020년 한 해 동안 확인된 아동학대는 약 3만 건. 굳게 닫힌 창문 바깥으로, 학대의 소리는 우리 주위를 조용히 맴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랫집도 추위에 베란다 문을 걸어 잠근 것인지, 개가 마음의 평화를 찾은 것인지, 개 짖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베란다 문을 활짝 열고 봄 내음과 바람을 집으로 한껏 들이는 봄이 오면, 개 짖는 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