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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연 Apr 19. 2022

싯다르타 그리고 이직

프로이직러와 모험가 사이


독서모임을 하다 보면 놀라는 일이 많다. 어떻게 이렇게 지치지 않고 얘기를 나눌 수 있는지, 서로 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더 매력적인 건지, 그리고 분명 같은 책을 읽었는데 저마다 이렇게까지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 깨달으며 놀라는 식이다. 이번 책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는 3번째 놀라움이 컸다. 저마다 참 다르게 받아들였다. 


여러 관점 중에서도 나는 퇴사를 앞둔 사람으로서,' 현재 상황에서의 이탈', '더 나은 것을 향한 도전 혹은 도발'을 주저 않는 싯다르타의 모습에 더욱 이입했다. 싯다르타는 진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더 큰 배움과 진리를 찾고자 주어진 환경을 자꾸만 벗어나는데, 그의 모습이 이직을 준비 중인 나의 마음 상태와 (조금) 비슷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여 뜬금없지만, 퇴사를 앞두고 있는 이들에게 파스텔톤 일러스트가 가득한 퇴사 에세이보다는 싯다르타 한 권을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습니다.


꽤 큰일이라 정식으로 떠벌떠벌 이야기하고 싶지만, <싯다르타> 읽은 후기를 쓰며 빼놓을 수 없어 이렇게 고백한다. (저 이직해욨ㄲ!!@#!) 내 삶에 나름대로 중대한 변화가 생겼다. 2년 반 함께 했던 회사를 떠나기로 했다. 퇴사를 얘기하는 과정에서 생긴 작은(하지만 큰) 에피소드는 큰 상처가 됐고, 이후 '오해'는 풀었으나 책을 읽었을 당시만 해도 '첫 회사 그리고 최악의 퇴사'라는 씁쓸한 생각으로 가득 찬 채 책을 읽었다.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는 '잘생기고 인기 많은' 사람으로 태어난 싯다르타가 진리를 얻기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모두 내려놓고 세상의 바닥부터 가장 위까지 곳곳을 누비고 다니며 겪은 이야기다. 어머니, 아버지에게 인사를 고하고 사문들의 여정에 섞여 길과 마을을 누볐고, 부처를 만나 대화를 했으며, 사랑하는 여인 카말라를 만나 먹고살기 위해 상인의 기술을 배웠다. 돌고 돌아 처음 여정을 시작한 강으로 돌아오고, 자신의 아들을 바라보고 힘들어하며 그토록 바라던 진리에 가까워진다. 그리고 그의 긴 삶의 여정에는 친구 고빈다와 스승 바주데바, 그리고 언제나 똑같이 흐르지만 한 번도 같은 적 없던 강이 있었다.


싯다르타는 자신이 처한 환경을 벗어나는 걸 한치도 망설이지 않는 사람이다. 손에 잡은 모래를 남은 한 톨까지 탈탈 털어버리고, 새로운 모래를 찾아 떠날 줄 안다. 그는 어린 시절 서로 '사랑'한 친구 고빈다와의 이별을 과감하게 택했고, 다신 만나지 못할지도 모르는 현자 부처에게도 (대범하게) 안녕을 고하였으며, 첫눈에 반해 십여 년간 자신을 정착하게 만든 카말라와도 하룻밤 만에 이별을 결심했다. 물론 그런 그도 이별을 하지 못한 이가 있었다. 바로 아들이다. 아들을 통한 아버지의 기억에 대한 회상과 회귀의 순간은 소름 끼칠 정도로 인상 깊었으나, 이것은 퇴사와는 관련이 없으므로 논하지 않겠다. (나중에 아이를 낳게 되면 그때 싯다르타는 또 다르게 읽히리라 기대해 본다. 재밌겠다 호호)


당장 노는 자리에만 빠져도 FOMO(Fear of missing out·자신만 뒤처지거나 소외되어 있는 것 같은 두려움을 가지는 증상. 소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리는 현대인1인 나로서는, 그의 결단력과 이별 능력에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사회는 어른에게, 손에 쥔 것을 포기하지 않고 차곡차곡 쌓아가라고, 새로운 도전에 무모하게 도전하기보다는 안전한 상태에 머무르라고 하지 않던가. 싯다르타는 그런 굴레를 걷어찬다. 개가 신나게 뛰어놀다 스테인리스 밥그릇을 땡그랑 걷어차듯 걷어차고 자기만의 길을 나선다. 그리곤 외친다. "나고 시은 대로 나 있으라지. 그 길이 어떻게 나 있든 상관없이 나는 그 길을 가야지!" (140쪽)


보통 이직은 보상 혹은 보상 혹은 더 나은 보상을 위해 한다. 때론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현실 상황에 대한 도피일 때도 있다. 나도 앞선 두 가지 이유 모두 때문에 이직을 결심했다. 하지만 그랬기 때문에, 현재 몸담고 있는 회사에서 같은 조건을 맞춰준다고 제안했을 때 큰 고민에 빠졌다. 


그럼에도 둥지를 옮겨보기로 결심한 데는 다음과 같은 생각 때문이었다. 어떤 어려움이 생겨도 내성이 생겨버린 나 자신, 그 정도로 익숙해진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 최고의 잠재력을 터뜨리거나 혹은 최악의 실수를 했을 때를 상상해 보았을 때, 상상 가능한 수준인 것이 싫다. 지금의 나로서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정도의 성공, 혹은 실패여도 좋으니 그런 새로운 무언가가 내겐 필요했다. 그런 걸 쉬운 말로 '가능성'이라고 하는 것 같다. 나는 새로운 가능성에 내 시간을 배팅해 보기로 했다. 당장의 보상이 아닌 길 끝 위에 놓인 가능성을 보는 것, 그게 참 명쾌한데도 어려웠다.


인생 첫 회사였고, 또 첫 이직이다. 언젠가 또 이직을 하게 되겠지만, 나는 '프로이직러'보다는 '모험가'에 가까운 삶을 살고 싶다. 삶의 순간에 집중하고 몰입하되, 내 삶의 길을 조망할 줄 아는 삶. 당장의 보상에 연연하기보다 내가 궁극적으로 닿고자 방향에 집중하는 삶. 삶의 길이 어떻게 나 있든 상관없이 그 길을 가야지 하고 마음먹는 그런 모험가가 되고 싶다.




(41쪽) 바로 그날 싯다르타는 사문의 최연장자에게 자신이 떠나기로 하였음을 알렸다. 그는 최연장자에게, 젊은 제자가 갖추어야 할 예의와 겸손한 태도를 다 갖추어서 자신의 결심을 알렸다. 그러나 그 사문은 두 젊은이가 자기 곁을 떠나려 한다는 사실에 대해 분통을 터뜨렸으며,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면서 입에 담지도 못할 험한 욕설을 해 대었다. (...) 


ㅎㅎ... .... . .. .


(55쪽) 저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해탈은 가르침을 통하여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일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세존이시여, 당신은, 당신이 깨달음을 얻은 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아무에게도 말이나 가르침으로 전달하여 주실 수도, 말하여 주실 수도 없습니다. (...) 어떤 다른 가르침, 더 나은 가르침을 찾기 위하여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다른 가르침, 더 나은 가르침이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이건 주니어 팀원들에게 피드백을 줄 때, 황금열쇠 같은 구글 OKR이 우리 팀에는 잘 적용되지 않고 삐걱거릴 때 느꼈던 감상과 매우 비슷한 부분이다. 어떤 다른 가르침, 더 나은 가르침은 없다. 스스로 부딪치고 경험하는 수밖에.


(57쪽) 친구분, 그대는 재치 있게 말을 할 줄 아는군요. 그러나 너무 지나치게 똑똑하지 않도록 경계하시오! 


(98쪽) 글을 쓰는 것은 좋은 일이고 사색하는 것은 더 좋은 일이다. 지혜로운 것은 좋은 일이고 참는 것은 더 좋은 일이다. 


(147쪽) 이 강물은 흐르고 또 흐르며 끊임없이 흐르지만 언제나 거기에 존재하며, 언제 어느 때고 항상 동일한 것이면서도 매 순간마다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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