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소연 Aug 23. 2022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

'세상'은 누구일까

책 인간실격 후기를 이제야 쓴다. 5, 6월부터 나는 극도의 무기력함,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침대에 누워만 있고 싶은 나태함에 시달렸는데, 그 무기력감이 극에 달하면 책을 읽었다. 인간실격은 몰입하기 좋은 책이었다. 소설을 읽는 건 오랜만이었는데, 상상하기도 어려운 요조의 생각과 삶을 구체적으로 상상하며 한 걸음씩 따라가는 여정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특히 중간중간 특정 단어나 상황에 대해 괄호로 부연설명을 하는 부분에서는, 저자가 다섯 번째 자살 시도로 마침내 목숨을 끊기 직전까지도 세상을 향해 얼마나 할 말이 많았는지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이 책은 왜 그토록 많은 일본인에게 사랑을 받았을까. 그리고 전 세계가 묘한 충격과 함께 열광하게 되었을까. 인간'실격'은 어떻게 되는 걸까. 인간'자격'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건 어떤 걸까. 정말로, 신뢰는 죄일까? 요조가 세상을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익살'이라는 가면은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 자꾸 떠오르는 것을 보니, 사랑받은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다.


다자이 오사무는 주인공 여주인공 츠네코를 등장시키자마자 '츠네코(라고 기억하고 있는데, 기억이 희미해져, 분명치 않습니다. 동반 자살한 상대의 이름조차 잊어버리는 놈입니다)'하고 자진 스포를 해 버린다. 깜짝 놀라 자세를 바로 잡게 된 대목이었다. 후반부에 요조가 '세상'에 대해 인지하게 되는 부분도 공감이 많이 갔다.


"하지만 네 계집질도 이쯤에서 그만두라고. 이 이상은 세상이 용서하지 않을 테니까." 


세상이란 대체 무엇일까요? 인간의 복수(複數, the plural)일까요? 어디에 그 세상이라는 것의 실체가 있을까요? 하지만, 어쨌거나, 강하고, 엄격하고 무서운 것이라고 여기며 지금까지 살아왔으나, 호리키에게 그런 말을 듣고 문득 "세상이라는 건 자네가 아닐까?"라는 말이 혀끝까지 나왔지만, 호리키를 화나게 하는 것이 싫어서, 말을 삼켰습니다. 


'그건 세상이 용서하지 않아.'

'세상이 아니야. 네가 용서하지 않는 거잖아?'

'그런 짓을 하면, 세상이 가만두지 않을 거야.'

'세상이 아니야. 너잖아.'

'머지않아 세상에게 매장당할 거야.'

'세상이 아니야. 매장하는 것은 너잖아?'


그런 식으로 세상이라는 것은 개인이 아닌가라고 생각하기 시작하고부터, 저는 지금까지 보다는 다소 자신의 의지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시즈코의 말을 빌리자면, 저는 조금 제멋대로가 되었고, 쭈뼛쭈뼛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108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예컨대, '사람들이 그걸 하지 않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거야',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싫어하지', '그런 시도는 전에도 다 누군가가 해봤지'라는 식이다. 궁금하다. 과연 그 '사람들'은 누굴까. 요조의 말대로라면, '사람들'이라는 것에 실체가 있을까? '사람들'이라는 건 결국 그 말을 하는 당신 아닌가?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릴 때, 특히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또 누군가 세상을, 사람들을 들먹이며 나를 위협하려 할 때, 나는 조금 제멋대로가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존재하지 않는 세상도 사람들도 아닌, 세상을 이루는 실체이자 전부인 나 자신만을 생각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

저는 세상에 대해서, 서서히 경계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세상이라는 곳은 그렇게 무서운 곳이 아니다,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114


그렇게 해서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했습니다. 거기서 얻은 기쁨은 반드시 큰 것은 아니었지만, 그 후에 얻은 슬픔은 처참하다는 말로도 부족할 만큼, 실로 상상을 초월하는 커다란 것이었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세상 속'은 역시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서운 곳이었습니다. 결코 그런 단판 승부 따위로 하나에서 열까지 정해져 버리는 간단한 곳도 아니었습니다. 123 


(진짜 너무 좋다)



/

어느 틈에 등 뒤에 요시코가 누에콩을 수북이 담은 접시를 들고 우두커니 서 있었습니다. "아무 짓도 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됐어. 아무 말도 하지 마. 너는 사람을 의심할 줄 몰랐던 거야. 앉아. 콩 먹자."


나란히 앉아 콩을 먹었습니다. 아아. 신뢰는 죄인가? (...) 그 상인은 그 후 오지 않았는데. 저는 왜 그런지, 그 상인에 대한 증오보다도 최초에 발견했을 때 다시 옥상으로 되돌아온 호리키에 대한 증오와 분노가 잠들지 못하는 밤 등에 걷잡을 수 없이 치밀어 올라 신음했습니다. 용소하고 말고도 없습니다. 요시코는 신뢰의 천재입니다. 사람을 의심하는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 때문의 비참함.


신에게 묻는다. 신뢰는 죄가 되는가?


요시코가 더럽혀졌다는 사실보다도, 요시코의 신뢰가 더럽혀졌다는 사실이, 저에게 있어서, 그 후 오랫동안, 살아갈 수 없을 정도로 고뇌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아내가 강간당하는 것을 목격한 요조가 충격을 받은 것은, 그 사실 자체보다도 요시코가 세상에 대해 가지고 있던 '신뢰'가 깨져버린 것에 대한 충격이었다. 우리는 살아가며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고 적응한다. 순수한 신뢰 따위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어버리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요조의 충격은, 내게 오히려 충격이었다. 순수한 신뢰를 믿고 지지하고 있었나? 과연 인간실격은 누구인지 의심하게 됐던 대목. 


/

지금 저에게는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그저,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제가 지금까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소위 '인간' 세계에 있어서, 단 하나, 진리처럼 느껴진 것은, 그것뿐입니다. 그저,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저는 올해 스물일곱이 됩니다. 흰머리가 부쩍 늘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은 마흔 이상으로 봅니다. 


"And this, too, shall pass away." 



다자이 오사무는 이 책을 두 달만에 탈고했다. 글이 완성된 후 한 달 후 다자이 오사무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소설에서 그랬던 것처럼) 야마자키 도미에와 함께 투신자살했는데, 두 사람의 사체가 발견된 것은 6월 19일, 다자이의 40번째 생일이었다. 소설보다도 더 소설 같았던 그의 삶이 써 내려간 흔적을 읽으며, 그를 상상하고 추모하고 곱씹고, 삶과 인간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한다는 것 자체가 참 '인간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싯다르타 그리고 이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