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같은 때 기분 좋아지는 무언가를 찾아내는 건 행운이다.
나를 기분 좋게 만드는 그 무언가는 바로 얼마 전 다시 시작한 슬기로운 생활 시리즈 '슬기로운 의사생활'이다.
예전 정말 재미있게 보았던 '슬기로운 감빵생활'에 이어 의사생활을 얼마나 슬기롭게 해 나갈지 궁금했다.
서로 다른 전문의 5인방이 누군가는 태어나고 누군가는 삶을 끝내는 인생의 축소판 병원에서 제 나름대로 의사의 삶을 슬기롭게 펼쳐가는 이야기다. 의사를 다룬 드라마는 많았기에 어떻게 이야기를 펼쳐갈지 정말 궁금했다. 지금 몇 회 하지는 않았지만 역시 실망을 주지 않았다.
겉으로는 까칠해 보이고 사회생활 못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환자를 위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준완과 석형, 아무도 모르게 병원비가 없어 수술을 못하는 사람들의 키다리 아저씨 노릇을 하는 정원,
어떤 일이든 잘 해내면서 남을 위하는 마음까지 특출한 채송화,
무엇을 하던 천재성과 인간적인 면에서도 뛰어난 익준.
보는 내내 자기 일을 슬기롭게 잘해나가는 그들을 통해 흐뭇하고 기분이 좋아진다. 왜 일주일에 한 번만 하는지 아쉽다.
이번 주는 산부인과와 연관된 이야기들이 다뤄졌다.
첫째 아기를 유산한 경험이 있는 필자는 유산을 했어야 했던 이유와 상황들이 너무나 유사하게 다뤄지고 있어서 다시 그때의 감정이 되살아나 더욱 몰입하게 했다. 필자의 태아는 6개월 차에 장기가 배 밖으로 노출이 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때는 정확한 명칭과 증상이 뭔지 몰랐었는데 드라마를 통해 태아의 배 근육이 발달하지 못하여 장이 몸 밖으로 나와 있는 상태 즉 '복벽결손증'이라는 병이라는 것을 알았다. 지금은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바로 수술을 하면 아기가 살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 것 같은데 그때 당시는 세계적으로도 한 번밖에 시도해본 적이 없는 수술인 데다가 그 또한 성공하지 못한 수술이었다. 그래서 아이는 포기하고 산모의 빠른 회복을 위해 6개월이 넘은 태아를 유도분만을 통해 출산하기로 결정했다.
그때 나이가 지긋하셨던 의사 선생님께서 드라마의 석형과 같이 출산하고도 아기를 잃게 되는 산모의 아픔을 고려해 많은 배려를 해주셨었다. 드라마에서는 출산 후 아기를 보게 되면 산모가 트라우마를 갖게 될까 봐 산모에게 아기의 울음소리 조차 듣지 않게 하려고 석형의 애쓰는 장면이 나온다. 필자 또한 아기의 보지 못했으나 한참 지난 후에 남편은 아기를 보았다는 사실을 알고 정말 깜짝 놀랐었다.
요사이 드라마를 통해 잊고 있었던 예전 감정들이 다시 되살아나는 일이 잦았다. 잊었다고, 다 이겨냈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저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드라마를 통해 흔들어지자 가라앉아 있던 감정들이 다시 위로 쏟아 오르는 것을 느꼈다. 다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예전에는 일어나는 감정대로 화가 나면 화를 내고 신경질이 나면 신경질을 내고 기쁘면 웃다가 슬프면 울다가 했었지만 지금은 그런 감정이 일어나는 나를 느낀다. 그러면서 속으로 나 자신을 위로한다.
'그래, 정말 힘들었지. 당연한 거야. 잘 이겨냈다.'
그때는 죽을 거 같은 고통과 힘듬이 있었지만 그렇게 지나갔고 지금은 경험과 추억으로 남겨졌다. 사람들에게는 파도를 치듯이 주기적으로 힘든 일들이 찾아온다. 그것들이 잘 지나가고 나면 또 한 번의 성장한 내가 탄생된다. 이제 힘들게 겪고 이겨낸 일들은 더 이상 그때만큼 나에게는 힘든 일이 아니다. 그렇게 우린 성장한다.
그렇게 우린 삶의 파도를 겪으며 다양한 체험을 통해 성장하는 게 인생이 아닐까?
문득 우리 모두 아무 걱정 근심 없이 평탄하게 공주처럼 살다가 죽는다면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