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가곡목은 나어떡해. 그야말로 열창을 했는데 결과는 예심에서 탈락했습니다. 어이없게도 나와 친구의 헤어스타일이 노래실력과는 관계없이 미풍양속을 저해하고 풍기문란했기때문이라는 걸 1차예심이 끝나고 항의하려고 관계자를 만났을때 그가 그것도 탈락의 이유랍시고 짧고 무성의한 표정으로 설명해주었습니다.
사실 성우가 꿈이었기에 전국노래자랑을 그 발판으로 이용하려는 나름의 계획이었는데 크게 실망하고는 그날 저녁 동네에 있는 로터리 작은광장에 앉아 소주병을 옆에 놓고 전국노래자랑 예심에서 불렀던 참가곡 나어떡해를 당시 대통령이었던 전모씨를 향 한 원망과 욕설을 섞어가며 밤새 불러댔습니다.
" 머리털 없는게 본인 탓이지 왜 우리 머릴가지고 시빌거는거야. 야! ○○리 ○○끼야!
다음날 어머니가 흔들어 깨우시는 통에 겨우 눈을떴는데 어머니는 다급한 목소리로 경찰이 아침에 찾아와서 아드님 조심하라고 그랬다며 너 아무래도 서울가라. 니 하고싶은 거하라해서 그 얼마 후에 그런 이유로 서울로 올라 온겁니다.
그동안 K, m방송에서 주관하는 전속 성우테스트를 두번 지원했었는데 둘다 낙방했습니다.
성우가 너무 하고 싶었고 돈을벌어서 연기학원을 다닐 생각으로 작은누나한테 부탁해 매형이 운영하 는 전기통신 공사 하청업체에 취업을 했습니다.
탤런트 겸 성우인 고 전운씨가 설립한 연기학원에 등록을 하려면 2년은 족히 돈을 모아야 했기때문이었지요.
국민학교 일학년짜리 꼬마가 동네아주머니들이 모 인 자리에서 남진의 가슴아프게를 구성지게 부르는
통에 나중에 커서 가수해라는 소리를 들었고 국민 학교 3,4학년 때 웅변연사로 뽑혀 웅변대회에 나간 적도 있을 정도로 목소리가 좋다는 말도 수시로 들 으며 자랐습니다.
어려서부터 노래잘하고 목소리가 성우보다도 더 좋다는 말을 주위로 부터 자주 듣다보니 우쭐해 무모한 시도를 했으나 세상일이 내뜻대로 잘 안됐 습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아버지도 연로하신데다 편찮으신데 부모님속 그만 썩이고 허황된 꿈버리고 공부나 다시 시작해보라며 책까지 사준 작은누나 의 간곡한 권유로 결국 꿈을 접고 아쉽지만 고향으 로돌아가기로 맘먹었습니다.
내일이면 고향을 간다고 하니 같이 밤샘작업을 했 던 동료들이 서운하다며 이별의 술자리를 밤늦게 까지 강요하는 바람에 다음날 낮 12시가 넘어서야 일어났고 서둘러 가방을 챙겨 전철을 탔습니다.
원래는 상봉터미널까지 버스로 갈수 있었는데 서울 을 떠나기전에 무슨 연유인지는 생각은 잘안나는데 시청엘 가보고 싶었습니다.
그날이 1987년 6월 10일 이었습니다.
시청앞 광장으로 올라가자 온갖 깃발을 들고 수많 은 군중들이 모여 전경들과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군부독재 전○○를 끝장내자!
난생 처음 그렇게 많이 모인 군중들 모습에 놀라기 도 했고 그들이 뿜어 내는 함성소리를 들으니 데모 의 데자도 모르던 내 가슴도 왠지 울컥했습니다.
특히나 꿈을 꾸어볼 기회를 가져보지도 못하게 만 든 전○○ 물러나라는 구호에 감동먹었습니다.
감동을 조금 더 느끼고 싶었지만 시외버스 막차시 간이 정해져있어 서둘러 군중과 전경들로 쳐진 바 리케이트를 헤치고 시청광장을 빠져나와 지하철을 타려고 걸어가다 어느 음반가게앞을 지나가던 중 걸음을 멈추게 하는 노래가 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