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소양강 처녀
해저~문 소~양강에 황혼이 지~면
외로운 갈대밭에 슬피우는 두견새야
(김태희의 노래 소양강 처녀 중에서)
강물위로 서서히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자 황혼이 물결을 타고 파문처럼 번지고 있다.
댐이 생겨나고나서 강은 더욱 깊어지고 강폭도 메아리소리가 들리지않을 만큼 넓어져서 노을도 물위로 길게 늘어져 물들때가 많다.
그때마다 학생들의 등하교를 위해 운항하는 통학선 통통배가 호수를 지나가고 나면 그 자리에 동그랗게 물결이 일어 산허리까지 밀려온다.
옛 신작로 길은 물에 잠겨 거의 다 사라졌고 산허리를 잘라 만든 굽이굽이 새 길을 따라서 직행버스를 타고 북쪽으로 삼십분 조금 넘게 달리면 군청소재지가 있는 읍내가 나온다.
경사가 심해 굽이를 돌때마다 버스는 좌우로 심하게 흔들려 앞좌석의자 등받이에 달린 손잡이를 붙들고 있어야 쏠림이 없이 갈수 있는 S자코스같은 길이다.
달리는 차창밖으로 저만치 산아래 물에 잠긴 국민학교터 끄트머리가 언뜻 보일때마다 용식은 옛생각을 떠올리며 차창에 기대어 눈을 감는다.
' 짝꿍 로사와 도랑을 따라 심어진 뽕나무에 매달려 오디도 따먹고 개울가로 내려가 물장구치던 일이며, 군인들이 사격훈련을 마치고 간 자리에 남겨진 폭약을 주우러 우루루 몰려가 불을 붙여서 폭탄놀이도 했었지 ...... '
'그때는 댐이 생기기 전이라 소양강이 학교에서 꽤나 멀었는데 쪼그만 것들이
수업종이 치는 줄도 모르고 멀리까지 화약을 주우러 갔다가 결국 교실밖에서 선생님한테 붙잡혀 복도에 꿇어앉아 벌을 섰는데...... .
' 벌을 주신 박성철교감선생님은 지금 살아계실까? '
어둑해져버린 탓에 차창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박성철선생님의 벗겨진 이마와 뿔테안경이 실없이 먼저 떠올라 웃음을 지어보이고는 고개를 들어 다시 차창밖을 내다보았다.
신기하게도 오랜 시간이 지난 일인데도 인상깊었던 어린 시절의 주요한 장면은 눈을 감으면 또렷하게 재생이 되어 영상처럼 선명하게 떠오른다.
버스는 어느새 험한 고개길을 오르고 있었다.
고개마루를 지나며 읍내를 바라볼때면 왜 강쪽 너른 평지를 두고 경사진 산쪽으로 집들을 지었을까 의문이 들었다. 지형상 산지가 많은 지역이니 농사지을 땅이 필요했을거라는 점을 이해하면서도 왠지 옹색하고 협소해보여 볼때마다 답답했다.
강을 좋아하는 용식은 나중에 나는 강이 훤하게 내려다 보이는 평평한 강언덕에서 살아야겠다며 혼잣말로 다짐을 했었다.
금강운수마크를 단 직행버스가 읍내에서 제일 큰 병원앞을 지나 군청으로 오르는 사거리에서 우회전을 해 이내 버스종점안으로 접어들었다.
버스종점 대합실안에는 막차시간이 다 되어가서 그런가 휴가를 나왔다가 부대로 복귀하려는 군인들이 너댓명씩 무리지어 웅성거리고 있었다.
버스종점에서 부대앞까지는 완행버스를 타고 가야들 하는데 짧은 휴가들이 아쉬웠는지 다들 서두르는 기색이 없다.
군부대가 많다보니 그녀와 내가 사는 곳에선 익숙한 풍경들이다.
그녀와 만나기로 한 약속장소로 걸어가다 시장입구에 있는 수퍼에 들러 담배한갑을 샀다.
담배를 한개피뽑아 불을 붙이고 한모금 물고는 약속장소인 길건너편 경양식집건물로 건너갔다.
시계를 들여다보니 약속시간까지 아직 10여분이나 남았다. 이층으로 올라가 바깥이 보이는 창가쪽 구석진 곳으로 가 자리를 잡았다.
재래시장도 아까 담배를 샀던 슈퍼도 약국도 내려다보이고 그녀가 걸어오는 모습도 볼수 있어 일부러 골라 앉았다.
주문을 받으러 다가온 종업원에게 조금 있다 하겠다며 보내놓고 담배를 다시 피워 물었다.
♪We make it harder than it has to be
And I can't tell you why
No baby, I can't tell you why♬
♪우린 필요 이상으로 어렵게 만들어가고 있어요.
당신에게 그 이유를 말할 수 없어요.
당신에게 이유를 말해줄 수 없어요.♬
귀에 익은 Eagles의 노래가 레스토랑 안에 가득하게 흘러나오고 있다.
반주가 나오는 중간 중간 칙칙 긁히는 소리가 더러 들리는 걸 보면 턴테이블 바늘이 오래되어 닳은 것 같았다.
경양식집이라 불리우는 레스토랑인데 맥주도 팔았고 7080세대들이 즐겨찾는 분위기 좋은 곳으로 인구 2만 남짓한 소읍에서는
제법 알려진 곳이다.
개인적인 기호로 볼때 별로 선호하는 곳은 아니지만 그녀에게 만나자고 전화를 했을때 그녀가 정했는데 용식으로선 선택의 여지가 있을 수가 없었다.
' I can't tell you why '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에 음악다방에서 일할때 Eagles의 대표곡인 Hotel California보다 더많이 선곡해 턴테이블에 올렸던 기억이 난다.
' 당신에게 말할수없어요. 왜?'
이 노래를 들을때면 용식은 우울한 생각이 들었다. 사랑한다는데 무슨 이유가 필요할까. 그리고 돌아서면서 이유를 말할수 없다는 것 너무 냉정한 거 아닌가. 노랫말에 담긴 의미에 그리 공감이 가진 않았지만 글렌 프라이의 감성적인 보컬이 끌려서 좋아했었다.
" 아가씨. 여기 물좀 주세요."
두번째 담배를 꺼내려다 시계를 들여다보니 7시 정각,
그녀가 올 시간이다.
창밖은 벌써 어두워져 길가에 가로등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To 은하수보다 더 빛나는 그대에게
옥상에서 보는 밤하늘이
유난히 환하게 보이는 까닭은
까마득히 멀리서도 꺼지지않고 밤새 빛나고 있어서 아닐까요.
그대를 첨 본 순간부터 좋아졌습니다.
정말 하늘을 나는 것 같은 둥둥 뜬 기분이었습니다.
오늘 낮에 정희씨 선배 레코드가게에서 카셋트테이프를 두개나 샀습니다. 한개만 사려다 정희씨 생각해서 두개씩이나 샀습니다.
송골매 3집인데요.
옥상에서 따라 부르며 앞면 뒷면 카셋트녹음기에 돌려가면서 밤새
들었습니다.
처음 본 순간.
이노래 지금 제 심정과 너무나 똑같습니다.
앞으로 자주 뵜으면 좋겠습니다.
편안한 밤 보내시기 바라며......
은하수를 바라보며 어느 밤에 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