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태산, 웅장하고 깊은 골짜기에서 백년이나 넘는 세월을 굴곡 하나없이 곧게 뻗어 자란 큰소나무만을 골라 베어내 가지런하게 자른다. 뱃머리에 해당하는 부분에 구멍을 뚫고 일정 간격을 띠어 마디 마디마다 홈을 파서 칡넝쿨로 단단히 엮고 뱃머리에 판 구멍에다 잣나무로 만든 긴 삿대잡이를 끼우면 뗏목배는 비로소 다 만들어 진다.
그렇게 열성을 다해 만든 뗏목배는 고향집 방내 앞개울 을 떠나 물살이 거친 내린천을 지나서 합강 여울목을 거쳐 마침내 소양강으로 흘러 들어온다.
소양강은 이름처럼이나 드세지도 않고 거칠지가 않아서 물흐르듯 유유히 흘러만 주니 거친 물길을 타고 넘으며 헤쳐 오느라 무척이나 고단했을 뗏사공들의 수고마저 덜어주는 너그러움을 담아 흐른다.
관대리 강나루에 우두커니 서서 멀리 두고온 부모님을 그리워하며 건너편 산골짝너머만 바라다 보는 새아낙의 안타까운 애태움이 못내 애처로워 보였는지 뗏목배 앞전에선 도사공은 뗏목배에 실은 동네사람의 짐보따리를 내려주고 뱃머리끝에 털썩 주저앉더니만
" 나도 방내골에 사니 같은 고향사람이네 그려 . "
무심히 던진 뱃사공의 말에 마치 이웃 사촌이나 만난듯 반색을 하는 아낙을 보고 빙긋이 웃어주던 맘씨좋은 도사공 아저씨는 떠나기 전 긴 삿대를 이리저리 흔들며 뗏목배 가던 길을 멈추고는 돌아서서
" 방내리 탁씨 영감님 내외가 새달마을 지나거든 들러 우리 장연이 잘 지내나 살펴달라 신신당부를 합디다."
뒷말을 던지고 허리를 곧추세워 힘차게 삿대를 저어 강물을 헤치며 떠나간다.
아버지.
한번 화나면 성난 호랑이 같이 무섭고 불같이 사나웁지만 밭에 같다 돌아오는 길에 좁다란 밭둔덕을 비틀거리며 걷는 어린 딸을 덜렁들고 우리 장년이 다리아프냐며 업어주던 따뜻한 아버지의 등판이 생각나 울컥 눈물이 치밀어 오른다.
행여 남이 볼까 눈물을 훔치는 사이 그리던 부모님의 사연이 담긴 이야기 보따리를 건네 준 뗏목배는 큰강을 향해 저만치 떠내려가고 있었다.
시집오던 날 시댁까지 가마곁을 따라와준 친정 오라버 니가 그해 가을 홍천 우시장에 다녀오던 길에 꽃비녀를 샀다며 일부러 먼길을 걸어서 전해주러 왔을때에도 나룻배를 타고 저 강을 건너 왔었다.
혼례올린 지 두어달도 채 안됐는데 큰시아주버니 대신 이라며 야속하게도 낯선 시댁에 저 홀로 남겨놓고 어질기만한 새신랑 남편은 어디로 가는 건지 목적지도 모른체 고되고 위험한 징용길을 떠났다. 나룻배를 타려고 강나루를 향해 걸어가는 뒷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하루 이틀 가을 겨울이 두번이나 바뀌어 버려 얼굴이 조금씩 가물거리려 할 때
" 숙모 작은 아부지 편지왔어요."
남편의 조카가 건네준 신랑이 보낸 편지를 손에 받아 들고는 부엌으로 혼자 들어가 읽고 또 읽었다.
' 해방이 됬으니 곧 돌아온다 ' 는 소식에 틈만 나면 돌담 아래 강나루쪽을 건네다 보며 집으로 돌아오는 날까지 제발 무사하기를 빌며 맘 졸였었는데,
어느 날인가 강물을 가로질러 빨간색 칠을 한 삼팔교 라는 이름의 나무로 만든 다리가 생겨났고 낼부터는 걸어서 읍내에 갈수 있다면서 시아버님은 곰방대에 불을 붙이시고는 담배를 피우셨다.
" 기린애기야! 아범도 삼팔교 나무다리로 건너올게다. "
툇마루끝에 앉아서 길게 한모금 담배연기를 내뱉으며 한마디 남기고 화덕에 불을 짚이려 쪼그려앉은 며느리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마당으로 내려와 낫을 들더니 싸립문을 나선다.
' 다리가 생기는구나.'
그때부턴 수시로 강물을 내려다 보게 되었다. 이젠 언제든 맘만 먹음 한달음에 고향집 마당으로 달려갈 수 있게 되었다 는 설레임으로 한껏 들떠 하루에도 몇번씩이나 삼팔교 다리를 내려다 보곤 한다.
' 고향집 담장위로 훌쩍 자랐을 고야나무엔 지금쯤 빨간 고야가 달게 익었겠지. 신랑오면 얼른 찾아가 봐야지.'
남과 북을 가른다면서 다리 한 가운데에 빨간색 삼팔선 을 그어놓고는 군인들이 지키는 검문소를 만들어 지나 는 사람들을 불러 세웠지만 다들 아무 탈없이 오고 갔는 데 어느 날부턴가 가시같은 철조망으로 가로막아 더는 건널 수 없게 되었고 왜 그런건지 까닭을 몰라 발만 동동동 굴리던 새아낙의 작은 가슴은 까맣게 타들어갔다.
다리가 생겨나서 더는 오지 않는 뗏목배 머물렀던 텅빈 나루터로 나가 고향쪽 하늘을 쳐다보지만 뗏목머리에 서서 긴 삿대를 잡고 구성지게 불러주던 늙은 도사공의 아리랑 가락은 들을 수 없고 야속하게도 강물만 소리도 없이 흘러 가고 있다.
언니와 나물을 씻고 산단같은 긴머리 풀어 휘휘 감던 고향집 앞개울에서 시작해 굽이굽이 사백리 물길을 흘러온 소양강은 무서운 철조망도 아랑곳 하지 않고 저리도 잘 흘러가는데 어이 난 갈수 없단 말인가 저절로 눈물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