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별거 아니야

by 김운용


기용이 똘마니들과의 담배 문제로 시비가 있고 나서 며칠 지났나. 우리 학교 전 학년 통 들어 최고의 짱 정욱이가 비둘기를 보내왔다.

- 수업 끝나고 잠깐 밴드부 연습실 뒤에서 보자 -


정욱이와 난 국민학교 때부터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같은 학교를 다녔고 특히 중학교 때는 단짝이었다.


중학교 때는 내가 운동부 출신이고 정욱이보다 키도 커서 만만했는데 정욱이가 고등학교 들어오고나서부턴 최고의 깡다구로 알려져 그 누구도 쉽게 건드릴수 없는 학교 내 거물이 되었다.


일진에 끼지 않고도 난 정욱이와 절친한 친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후배들로부터 일진급 선배 대우를 받았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밴드부 연습실 뒤편으로 돌아가 보니까 정욱이가 똘마니 몇 명 하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 왔냐. 너도 한대 필래. "

" 안돼. 본전 다방 가야 돼 "


" 너 어젠가 기용이 친구들이랑 다구리(집단 싸움 일본어) 붙을 뻔했다며.

야 변기용이 이리 와봐 "


그 말이 끝나자마자 망가진 의자와 책상을 수북하게 쌓놓은 뒤에서 기용이가 잽싸게 튀어나왔다.


" 기용아. 나하고 X 나게 친한 친구다. 얘도 우리랑 같이 노는데 잘해라. 알았냐."


예. 형님!


정욱이가 친구인 내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 이학년 짱 기용이를 일부러 인사시키려고 날 불렀던 것이다.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지만 절친한 정욱이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었다.


학교 전체 탑이라 예전처럼 편하진 않지만 그래도 정욱이와 난 둘도 없는 친구였기에 자존심은 상해도 오해는 없다.




형. 같이 가요.


기용이가 뒤쫓아오길래 나 일하러 다방 간다. 넌?

정욱이 형한테 얘기 다 들었다며 저도 관심 있다고 해서 그래 그럼 가자며 본전 다방으로 향했다.


기용이는 공부를 안 하고 놀아서 그렇지 머리가 좋은 편이었다. 놀기 전에는 영어를 제일 잘했다는데 그래선지 팝송 제목이나 밴드 가수들 이름을 읽을 때 발음이 영어 선생님 수준이다.


나는 영어 가사 밑에 한글로 써서 발음기호대로 충실하게 발음하는 편인데 박스 안에 따라 들어온 기용이는 바닥에 철퍼덕 퍼질르고 앉아 리퀘스트 들어온 노래 제목과 가수의 영어 발음을 볼펜으로 써서 내발음을 교정해주었다.


기용이는 준식이 형 중간고사가 끝날 때까지 거의 매일 날 따라서 본전 다방으로 출근했다. 짱 하는 놈이 시다바리 짓도 스스럼없이 잘해 중간고사 끝나고 박스에 돌아온 준식이 형이 너 여기서 일해라 칭찬을 할 정도였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재수학원 등록을 핑계 삼아 뜻한 바가 있어서 서울로 올라왔고 기용이는

그 후 2년간 준식이 형 밑에서 Dj보조로 일하다가 준식이 형이 취직을 하는 바람에 메인으로 승진했다.


이후 기용이와는 기용이 결혼식, 가라오케 개업할 때 등 일 년에 한두 번 일 있을 때나 만나는 정도로 뜸하게 지냈다.




10년 전쯤이다. 기용이가 서울로 아주 이사를 왔다며 전화를 했다.


서울로 올라오기 전에 가라오케, 호프집을 하다가 문을 닫고 포장마차까지 해봤다면서 한번 밀리니까 대책 없이 밀려서 바닥 맛까지 보았다고 나도 아는 긴 사설을 또 리바이벌했다.


궁여지책으로 서울에서 고깃집을 하는 처제네를 찾아와 기용이 처는 동생 식당에서 주방일을 하고

기용이는 상조보험 영업일을 했었다. 그러다가 최근 대부분 기피하는 장례지도사 일을 해보자 맘먹고 자격증을 따서 장례지도사 일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지난번에 일자리 구했다며 만난 지 채 한 달도 안돼서 다시 기용이가 전화를 해왔다.


" 형 오늘은 내가 한잔 살게 연신내로 오시오. 우리 마누라 얼굴 기억나지. 형이 보고 싶다네."


거의 한 달 만에 불쑥 전화를 해 그쪽으로 오란다. 암튼 도깨비 같은 친구다.


연신내역에서 내려 로데오거리를 지나 뒷골목에 있는 처제가 하는 고깃집에 도착하니

기용이가 여기야 형 큰소리로 손짓하며 부른다.


기용이가 부르는 자리로 가니 기용이와 기용이 처, 처제가 인사를 한다.


" 형. 와이프야. 여보. 형 알지."


기용이 아내가 웃으며 오빠 많이 늙었다 인사하는데 옛날 기억이 살아난다. 둘이 연애하기 전에도 기용이 처는 우리 동네 살았고 내 국민학교 이년 후배라 잘 아는 사이다. 결혼하고도 두세 번 기용이네 집에서도 보고 호프집 할 때는 밤새워 한잔했었지. 너도 늙었구나.


" 나이가 얼만데 "


모처럼 나도 취했다. 기용이도 취했는지 자식이 웬일로 이차를 가잔다. 지가 쏘겠단다.


Amaging grace다.




근처 노래방으로 갔다. 기용이가 나를 핑계 삼아 와이프에게 위로를 해주고 싶은가 보다.

기용이는 기타도 잘 치고 노래를 잘 불러서 인기가 있었다.

제목이 생각 안 나는데 다가가면 뒤돌아 뛰어가고 폼을 잡으며 열창을 한다.


기용이 처는 오빠부터 하라는데 니들 부부 노는 것 좀 보자며 마이크를 손에 쥐어줬다.


기용이 처 희숙이,

양수경의 사랑은 빗물 같아요 밖에 모른다면서도 번호 찾는 손놀림은 능숙했다.


고단한 삶에 목이 탔는지 흥이 자연스러웠다.


오빠 노래 잘하잖아. 듣고 싶다. 기용이 처가 내손을 잡아끌며 한곡 부르란다.

점잔을 빼다 후배 기용이 부부를 위로라도 해야겠다 싶어 이제하 시인의 버전으로 모란동백이란 노래를 불렀다.


노래방을 나오면서 기용이는 저만치 떨어져 오는 희숙이를 돌아보더니

" 형 시신을 깨끗이 소독약으로 닦는걸 습이라 하고 수의를 입히는 일을 염이라 하는데 아무나 하기 힘든 일이요.


내 인생 별거 아니다. 스타일 구겨지더라도 먹고살아야겠다. 마누라가 불쌍해서 말이야. 그래서 이일 시작한 거요. 형.


아무나 못해. 형. 담력이 있어야 할 수 있거든.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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