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도 돼지를 꽤나 많이 키웠는데 새끼를 낳고 나면 사료값이 많이 든다며 어머니 아버지는 늘 어미돼지 몇 마리를 식육업자에게 연락해 팔아 버리셨다.
어려서 돼지들을 지켜보고 자랐으니 돼지들의 습성을 그래서 조금 안다.
대개의 돼지들은 법(자연)도 잘 준수하고 질서도 잘 지킨다. 돼지들은 정해진 장소에서만 배설을 하지 아무데서나 배설을 하지 않는다. 한번 입력되면 좀처럼 잘 안 바꾸고 지키려는 습성이 있어 용변 볼 곳을 스스로 지정해 그곳에서만 급한 볼일을 본다.
더럽고 지저분한 곳을 보면 돼지우리 같다고 하는데 돼지처럼 청결한 동물이 없다. 아무데서나 뒹굴고 눕지 않고 깨끗한 곳에서만 잠자리를 만들 정도로 자기 관리도 잘한다.
돼지들에 대한 사람들의 잘못된 인식 중의 하나가 돼지들이 먹는 걸 많이 밝힌다 고 알고 있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
가축이 되면서 식용으로 쓰려고 잘 먹이고 많이 먹도록 인간에 의해 사육되어서 먹이를 보면 미친 듯이 달려들게끔 입력된 것일 뿐 본래는 절제된 식습관을 가진 동물이다. 돼지들의 식습성은 먹는 걸 발견했을 때에도 하이에나나 사자들처럼 마구잡이로 덤벼들지 않고 순서를 지킬 줄도 안다.
돼지들은 먹다가 다른 돼지가 나타나면 자리를 비켜주며 나누어 먹을 줄도 알고 먹을 만큼 먹었으면 더 이상 탐내지 않고 다른 돼지의 식사를 위해 남길 줄도 아는.공격적이지 않고 다른 돼지를 배려할 줄 아는 착한 동물이다.
돼지들은 좀처럼 다투는 법이 없다. 천성이 순해서 다툼이 생길 것 같은 때에도 서로 피하는 것이 습관처럼 몸에 배어있다. 돼지는 위를 쳐다보지 않는다. 항상 발아래 땅 밑을 보며 순진하게 살아온 겸손한 동물이다.
그러던 돼지들이 탐욕스러운 인간들과 같이 어울려 살다가 가축으로 길들여지면서 돼지들 고유의 속성들을 거의 다 잃고 말았다. 인간의 탐욕에 의해 길들여진 돼지들도 더러움을 모르고 수치심도 모른 체 덩달아 먹을걸 탐내고 아무데서나 뒹글고 배설을 하며 욕심을 부린다.
인간들에 의한 돼지 잔혹사를 조금이라도 알게 되면 눈을 감아버릴 정도로 너무 끔찍하다. 다른 돼지에게 상처 입히지 못하게 한다면서 새끼돼지의 어금니를 강제로 잘라버리고, 꼬리도 자른다. 심지어 고기에서 나는 누린내를 없애겠다며 거세도 한다.
협소한 공간에 가두며 통제당하고 사육되다 보니 자유로이 움직일 수 없게 되자 성질도 난폭하게 변하고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도 약해져 버렸다. 사전에 정기적인 방역을 통해 질병을 예방해야 하거늘 바이러스가 번질 때마다 집단으로 매장하거나 화장을 시키며 잔인하게 돼지들을 탄압해왔다.
얼마 전 인터넷에 돼지에게도 안락한 주거 환경을 만들어주자는 돼지 복지론을 주장하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난다. 돼지들의 주거환경을 개선하자는 돼지 복지도 이슈가 되고 있는데 하물며 사람이 살고 있는 서울의 미친 집값을 뉴스로 접할 때마다 여기가 사람이 사는 곳인지 인간의 탐욕에 의해 길들여진 돼지 우 린지 구분이 안 간다.
건설회사, 중개인, 부녀회와 돈맛에 눈이 뒤집힌 일부 탐욕스러운 무리들이 평화롭게 서로 위해주고 배려해주던 인간세상을 더럽히고 망가뜨리고 있는데도 그 제어장치들이 제대로 작동이 안 되고 있어 걱정이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탐욕스러운 무리들이 세상을 더럽히고 불안하게 만든다.
미친 집값을 잡자며 거창하게 세계경제 금리 주택정책 등 하루에도 무수하게 쏟아내며 전문지식들을 자랑해보지만 결론은 무대책이다.
누가 돼지마을을 탐욕의 수렁으로 빠지게 했을까.
돼지고기도 이력을 매겨 등급 화하는 스펙 만능의 사회,
유통과정의 돈 장난으로 금겹살을 만들어 돼지고기도 맘 놓고 못 먹게 만드는 신계급 시대,
이대로 가면 공멸의 길인데, 왜들 세상살이를 힘겹게 만드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사람 사는 원리 별거 아닌데, 서로 돕고 배려하던 공동체의 시대로 돌아간다면 탐욕의 마을, 돈맛 들린 우리 돈마을도 다시 평화롭고 살맛 나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