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종수. 그 유명한 58년 개띠니까 그의 나이도 벌써 60줄 가운데 칸에 성큼 들어섰다.
들꽃 징역이 생애 두 번째 시집이고 이미 2017년에 엄니와 데모꾼이란 첫 번째 시집을 낸 바 있으니 시인이란 건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전쟁 같았던 풍파의 그 긴 세월을 애잔하게 멋을 꾸며 노래 같은 시구로 엮어 시집 한 권 만들었다며 가슴에 품고 나온 그가 왠지 외로워 보인다.
인생 원래부터 빈손이라지만 수십 년 만에 백수가 되어 돌아와 찬바람 쌩쌩 불어대는 이 살벌한 세상 문턱에 발을 디디고 선
명색이 낭만가객인데 고작 두 권의 시집을 낸 걸로 소주 한잔이나 변변히 마실 여유가 있을지 의문이다.
그의 시 1. 58 개띠
돌아보면 광풍과 노도의 세월
들판을 헤매었지
길들여지지 않은 들개
나잇값 못 한다 철없다 하지 마시길
철없는 그가, 우리가 필요한 세상살이다.
김종수 시인. 고등학교 선배다. 사 년 차이라 학교를 같은 시간대에 다닐 수 없었으니 미지의 선배이자 하늘 같은 선배다.
안개와 산과 호수가 가득한 도시에서 우리가 다닌 고등학교는 지정학적인 여러 조건으로 봐서 한눈팔지 않고 학업에만 매진하기가 어려웠다.
공부 잘하는 춘고, 같은 담장 안 여학교, 미군부대, 양색시촌, 시장통, 호텔, 개나리 꽃집 등
환경 탓하는 건 아니지만 학교 주변이
온통 지뢰밭이었다.
그의 시 2.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춘천
기지촌 미자의 아메리칸드림이 철길에 깔려 아이 노꼬 꼬맹이 마미 부르며 철길로 뛰어가는 모습은 드라마나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다. 그 시절 그의 주변에 물기 흠뻑 먹은 빨래처럼 널린 일이었다.
어디든 데려다 줄래
취하고 취해 울던 잿빛 꽃 난초도 있었지.
선배. 기억력도 좋습니다.
개나리가 춘천의 꽃이란 걸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명동 공지천 호수 중도 추억 쌓인 그곳의 사연은 춘천을 떠나 나 같이 타지화 된 이들에게마저도 그리움을 불러내 즐겁지 않은 추억에도 웃음 짓게 해 준다.
" 나 간만에시집 냈다."
선배로부터 시집을 냈다는 말을 전해 듣고 대개의 시들은 짧은 시어로 돼있어 이해가 어렵고 알듯 모를 듯 의미를 속 깊이 담아놓아 시인의 속내를 파악하기 힘들다는 선입견에 따라 그냥 선배 자랑이나 해줄까 하다가 시가 담긴 파일을 한 페이지씩 넘기다 쭉 끝까지 읽었다. 한번 더 찬찬히 읽었다.
그의 시 3. 춘배의 십팔번
세상만사 근심 걱정 강물에 흘려보내고 싶다면 고독하다고 느낀다면
옛사랑 그리워 차마 못 잊겠거든
춘천으로 오세요
근심 없는 사람들, 고독하고 옛사랑이 그리운 사람들이여.
춘천 가는 열차 올라탄 김에 김종수 시인의 시집도 한 권 들고 가시라.
시인은 시로만 평하고 감상하면 그뿐이다. 과거에 그가 무엇이었든지 간에 하나도 중요치 않다.
선배가 보내준 시집 원본 파일을 내려받아 두 번을 연속으로 읽고 난 후 선배에게 전화를 걸어 수고하셨습니다 인사와 함께 감탄사도 전달했다.
누가 그를 거칠고 투박하다 하는가.
그의 시 4. 이별 애사와 거미줄을 읽어보라.
다시 진분홍 캐리어를 끄네
이별은 헤어짐의 이유는 늘 주관식이라네.
(이별 애사 중)
얼마나 간절하면 허공 가득 빼곡하게 그물을 엮었을까 함부로 걷어내려 하다니
밥그릇 남김없이 걷어차면 누군들 좋겠느냐.(거미줄)
따뜻하고 푸근한 사랑의 시인이다.
시집 속 그의 시를 한편도 안 빼고 다 읽고 나니 한 30년 전쯤 어느 날이 문득 떠올랐다.
요선동인가 언덕길 위 젊은 날 선배의 단칸방엘 들렀던 적이 있었다. 춘천이 낳은 불세출의 가수이자 선배인
김추자의 노래를 틀어놓고는 부엌으로 가 라면을 끓여와해장 속을 풀리게 해 주었다.
젊은 날 하루하루를 전쟁같이 치열하게 보낸 그가 난 그저 감성이 풍부하고 인간미와 멋을 아는 의리의 사나이로만 알았지 시를 쓰는 섬세한 심상을 가슴속 깊이 품고 있을 줄은 까마득히 몰랐다.
타고난 야성으로 제도권으로부터의 심사를 거부하며 순수 야인으로만 시를 쓰겠다는 고단한 길만 고집하는 독특한 인물.
현재 그는 춘천시민 언론 협동조합의 주간신문 춘천 사람들의 이사장이자 시 쓰는 사람들의 모임 '시문'의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