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전선에 서다

길냥이구하기 전쟁

by 김운용


" 고향? 전라북도 장수. 나이는 얼마 안 됐어요. "


도토리 알맹이를 말리려고 펴놓은 마대자루를 햇살 따라 옮기고 나서 허리를 살짝 펴고는 그녀가 쳐다보며 웃는다.


할머니가 아니란 점을 강조하려고 도토리를 담아왔던 커다란 플라스틱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는 한 바퀴 빙 돌며


" 할머니 아니라니까요. 누나여요.

아직 칠십 두 아닌데. 그러는 아저씨는 몇 살이요. "


대답을 머뭇거리자 이내


" 배도 나오고 머리숱도 많지 않은 걸 보니 내 보다 차이도 안 나겠구먼."


" 올해 딱 육십입니다."




그러니까 누나제. 아홉 살밖에 차이도 안 나는그마 손뼉을 치며 엄청 기뻐한다. 아홉 살이면 세대차도 날 판인데 격하게 좋아한다.


체격 좋고 운동신경이 좋다 보니 여전히 젊음을 유지한 걸로 자신하며 살아온 나에게 장수할머니의 과도한 반응과 논리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마도 장수할머니의 의도는 자신보다 열 살 가까이 어린 나를 자신과 동급의 연령대로 끌어올려 본인의 만족감을 채우려 햔거였겠지만 그 말을 들은 난 몹시 불 유쾌해진 기분이 돼버렸다.


육십하고 육십구의 차이를 비슷하다고 인정하지 않는 데에는 아홉 살이란 물리적 이유도 있었지만 동의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로는 죽기 전까지도 젊은 의욕으로 살아야겠다는 자기 최면에 가까운 믿음을 늘 채워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홉 살이나 차이 나는데 별 차이 없어 보인다는 장수할머니의 주장을 터무니없다 여기면서도

장수할머니의 무리한 주장에 강하게 대응할 순 없었다.

장수에서 보내왔다며 가져가시라고 주는 고추장 장아찌 등 반찬 선물 공세 때문은 아닌데 왠지

반박의 말이 선뜻 나오질 않았다.


어쨌든 장수할머니의 무리한 주장은 앞으로도 무시할 작정이다.




시골에서 살던 습관대로 매일 아침 바지런하게 움직이는 장수할머니와 평일날 출퇴근길에서도 휴일에도 빠짐없이 거의 매일 마주쳤다.


장수에서 온 할머니와 친해진 건 사실은 길냥이 폭행 사건이 벌어진 때부터였다.


작년 가을에 아파트 단지 내에서 생활하던 길냥이 한 마리를 주민 한 사람이 막대기로 때리는 장면을 목격한 장수 할머니가 이를 제지하다가 두 사람 사이의 다툼으로 번지는 사건이 발생했었다.

폭행당한 길냥이는 더군다나 새끼를 밴 상태라 장수할머닌 더 격분해 강한 제스처로 항의하다 고소까지 당하게 되었다.


결국 자치회로까지 사건은 확대되었고 관리사무소까지 중재에 나섰으나 주민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기준으로 양갈래로 갈라져 집단 간 분쟁이 되면서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혐오감을 주는 고양이를 단지 내에서 퇴출 하 자파와 길냥이도 생명이다 지켜주자 파로 날카롭게 대립했다.




양쪽 간에 반목과 대립이 심각해지면서 길냥이들의 안전문제가 생명파 쪽에서 거론되었다.

일단 안전한 곳으로 이주시키고 난 후 이후 대책을 세우기로 하고 적당한 장소 물색에 나섰을 때 착한 캣맘이 내게 도움을 요청해왔다.


집에서 사용하던 캣 하우스와 간단한 바닥 담요를 가지고 나왔는데 그것만으로는 야외로 쫓겨난 길냥이들이 비가 올 경우나 겨울 추위를 견뎌내기엔 부족하니 재료를 구해서 주말에 작업을 하자는 내 의견에 따라 다시 모이기로 하고 헤어졌다.


그 주 토요일 아침 내다 버린 폐가구 더미에서 판자와 쿠션 등을 구해와 단지에서 가까운 숲 길 입구에 길냥이 안전가옥 공사를 시작했다.


바닥을 평탄하게 고른 뒤 판자로 외벽을 세우고 상판을 천장으로 막은 뒤 세로로 지붕을 올렸다. 스티로폼으로 외벽을 두르고 덤불을 구해와 외부로부터 쉽게 눈에 띄지 않게 위장까지 마쳤다.


착한 캣맘들은 자신들의 집이지만 아직은 낯선 곳이라 입주를 주저하는 길냥이를 위해 스프레이도 뿌려주고 장난감도 하우스 안에 넣어주었다.


그런 인연으로 내게 캣맘들과 장수할머닌 적극적으로 생명파에 가담해주길 강권했다.

한 번은 캣맘들의 모임 장소인 카페에서 다들 기다리고 있으며 특히 카페 주인 부부가 날 만나고 싶어한다며 연락이 왔었는데 다른 일 때문에 나가진 못했다. 사실은 분쟁에 끼고 쉽지 않아서 핑계를 댔었던 것이다.


나는 공원 벤치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담배를 피우러 나왔다가 길냥이들을 챙겨주는 캣맘들과 친해졌기도 했지만 사람이든 동물에게든 폭력은 절대 안된다주의라 기본적인 입장은 길냥이도 생명이다 파에 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