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가슴이 이끄는 곳] 1부. 말라가 교환학생 이야기
[스페인, 가슴이 이끄는 곳]
1부 - 말라가 교환학생 이야기
1-7. 운명 같은 로맨스의 시작?
*BGM:: Teléfono - Aitana*
교환학생 라이프를 꿈꾸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 상상해봤을 법한 그곳에서의 운명 같은 로맨스. 어릴 적부터 '플립'이나 '비포 선라이즈' 같은 하이틴 로맨스 영화를 많이 봐온 터라 나 또한 약간의 기대감을 가졌었다. 게다가 이곳은 눈부신 지중해 바닷가와 야자수로 둘러싸인 유럽 최고의 휴양지가 아닌가. 설렘을 가지기에 충분한 환경이 아닐 수 없다.
소도시인 말라가에서는 작은 바나 펍에서 매 학기마다 새로운 교환학생들을 위한 무료 파티를 자주 연다. 예를 들면 월요일은 무료 빠에야 파티, 화요일은 무료 타코 파티 등. 추후 단골들을 모객 하기 위한 그들의 일종의 마케팅 방식이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우리들에게는 친구들도 사귀고, 무료로 먹고 마실 수 있는 일석이조의 기회였다.
학기 초반에 우리가 자주 드나들던 '피카소 바'에서 무료 빠에야와 상그리아 파티가 있던 어느 날. 친구들과 밖에서 기다란 줄을 서며 기다리고 있던 찰나, 저 멀리 바 안에 있는 한 남자아이가 눈에 띄었다.
첫눈에 반한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보자마자 나는 여태껏 실제로 본 사람 중 제일 잘생겼다는 생각을 했다. 들어가면 말을 걸어봐야겠다 생각했지만 여자애들에 둘러싸인 그를 보고는 Never mind.(됐다.)를 외치고 친구들과 밤을 보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이번에는 또 다른 바에서 무료 모히또 파티가 있었다. (그렇다. 인심 좋고 흥이 넘치는 말라가에서의 교환학생 생활은 파티가 끊이질 않는다.) 친구들과 함께 가서 소파에 앉아 한참 수다를 떨고 있는데, 바 안으로 엊그제 친해진 한 네덜란드 남자아이와 어제 빠에야 파티에서 봤던 잘생긴 애가 같이 들어오는 것이다. 네덜란드 친구는 우리에게 다가와 인사를 나누고 그 잘생긴 애를 소개해주었다.
"어제 도착한 내 새로운 룸메이트야. 이탈리아에서 왔어."
어떻게 이런 우연의 일치가 있을 수 있을까? 그 순간만큼은 내가 미드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우리는 그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금세 가까워졌다. 보통 이탈리아 친구들은 영어를 할 때 특유의 억양과 악센트가 되게 강한 편인데 이 친구도 그랬다.
그는 내게 말했다. "태어나서 한국인이랑 말해본 게 네가 처음인데, 다른 유럽인들보다 너랑 말도 더 잘 통하고 내 서툰 영어를 잘 알아듣는 게 참 신기해."
이때 처음 생각했던 것 같다. 마음이 맞는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이라면 인종, 국적, 언어에 관계없이 통할 수 있구나 라는 것을.
어느 날 친구들과 함께 간 타파스 바에서 있었던 일이다. 각자 메뉴를 준비했는데 직원의 내 스페인어를 잘 못 이해해서 음식 하나가 잘못 나왔다. 나는 부족한 스페인어로 따졌지만 직원은 이미 나왔으니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어쩌겠나 싶어서 먹으려는데, 그가 직원에게 직접 가서 원래 주문한 음식을 받아다 주는 것이다. 그는 늘 이렇게 배려가 가득하고 마음씨 고운 친구였다.
우리는 이후에도 친구들과 다 함께 여행을 다니고, 어울리며 추억을 쌓아갔다.
결국 좋은 친구 사이로 남은 우리이지만 지금도 종종 그때를 회상하면 풋풋하고 서툴었던 우리가 생각나 웃음이 나온다.
허무한 결론이긴해도 내 교환학생 시절에서 빠질 수 없는 소중한 인연인 그 친구.
Grazie!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