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는 그 포도를 먹었을까?

by 서이


담장 너머 포도나무가 보였다. 과육이 크고 알찬 게, 샤인머스캣 품종이 틀림없다. 탐스럽게 열린 포도가 내 것은 아니지만 군침이 도니 맛을 보아야겠다. 뛰어넘을 수 있는 공간을 찾아 몰래 밭으로 들어가 마치 자신을 먹어달라는 듯이 영롱한 포도열매를 향해 땅을 박찼다. 하지만 점프력이 모자란 것인지, 키가 작아 안 닿는 것인지 몰라도 닿을 듯 말 듯 닿지 않는다.


제자리 점프, 달려와서 점프, 열매가 달린 나뭇가지를 향해 점프. 닿지 않았다. 결국 주인이 돌아올까 노심초사하며 뛰었다만 포도를 먹지 못하고 자리를 떠야 했다. 화가 나고 짜증이 났다. 사실 저 포도는 맛이 없기 때문에 모양만 이쁘게 자란 게 아닐까? 한 시간이 넘도록 뜀박질을 했는데 한 알이라도 충격에 떨어지지 않는 것을 보니 덜 익어서 시어 빠진 걸 수도 있다.


'저 포도는 분명 시기만 하고 맛이 없을 거야.'


그렇게 여우는 불만을 터트린 채 포도밭을 벗어났다.


-라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자신이 원하고 추구하는 것을 얻지 못했을 때 욕망의 대상을 깎아내리는 형태를 이야기로 만든 것인데 이는 일종의 '합리화'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정신분석학의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이러한 합리화를 방어기제 중 하나라고 꼽았다.


합리화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욕망을 포기하면서 발생하는 합리화, 그리고 '니'의 행동과 행위가 정답이고, 자신이 항상 옳다고 생각하는 합리화. 마지막으로 어떠한 문제에 대한 원인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합리화이다. 우리는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 자기 합리화를 한다. 나에게 곤란함을 주는 문제를 벗어나거나, 회피하기 위해 작용하기 때문이다.


사실 포도가 시다고 생각하는 것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내가 옳다고 자뻑하는 것이 남에게는 아니꼬워 보이겠지만 여전히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남 탓을 하는 합리화는 상대의 기분이나 상황을 굉장히 난처하게 만드는 문제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살면서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타인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시기하기도 하고, 질투하기도 한다. 좋은 영향을 받아 '나도 저 사람처럼 옳은 마음가짐, 생각, 행동을 해야지'라고 한다면 좋겠지만 실상은 '내 것이어야 하는데 쟤가 빼앗어갔다'라는 마음이 셈 솟는다. 그러다 결국 '저 사람 때문에 내가 지금 이 모양이야'라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우리는 의외로 자신에 대한 방어기제를 쉽게 노출시킨다. 특히 욕을 할 때 학력적인 비난을 많이 하는 사람은 학력에 대한 컴플렉스가, 부모 욕을 하는 사람은 가정환경에 대한 컴플렉스가 있기 때문에 남들도 나와 같은 처지를 겪어야 한다는 마음에 자신의 컴플렉스를 욕으로 사용한다. 게다가 요즘엔 MBTI라던가, 애니어그램이라던가 심리성격검사 등이 유행하면서 자신이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를 많이 파악하고 있는데 내 주변사람들의 대부분 사람은 자신의 결과에 수용하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보였다. 나는 완벽하고 대단한 사람처럼 보여야 하는데 실상은 회피형 성격에 방어기제를 남발하는 사람으로 보이는 것을 다시 한번 회피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살아가면서 많은 자기 합리화를 했다. 고등학교를 진학했을 때에는 '지금 성적이 역전되어 내가 가는 학교가 제일 경쟁률이 쌨다'라고 합리화했고, 대학을 진학했을 때에는 '돈이 없어 장학금을 주는 곳으로 갔을 뿐'이라고 합리화를 했다. 일을 하다 실수가 생겼을 때는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다, 퇴사할까 라는 생각을 끝의 끝까지 하다가 겨우 해결하는 상황이 잦았다.


그러다 최근엔 이런 문제를 가진 것도 나, 이런 것을 잘하는 것도 나라는 생각으로 살고 있다. 다른 사람이 나를 뭐라고 보던지, 말하던지를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사람이기 때문에 완전히 평온함을 잃지 않는 건 아니지만 상황 자체를 수용하려고 노력한다. 언제는 왜 나만 이런 희귀한 질환을 겪는지, 집안은 왜 이러는지, 하물며 일을 하는데 돈은 왜 안 모이는지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으로 잠식당한 적이 있다. 그리고 합리화를 꽤나 했던 기억이 난다. 이때에 나는 그 누구보다 불행했고, 빠르게 삶을 정리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살아남았고, 이제는 그러한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내가 똑똑하고, 건강한 멘탈을 가져서 극복한 것이 아니라 불행한 생각을 하고, 타인을 탓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라는 마음으로 살아가고자 한다.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이 있어도 그 사람과 나는 다르게 자라왔고, 생각하기 때문에 차이가 난다고 생각한다. 문제가 벌어졌어도 온전히 나로 인해 벌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자리를 벗어나지 않고 해결하고자 한다. 신포도면 어떤가. 설탕을 뿌려먹든, 샐러드로 먹든 어쨌든 맛있게 먹으면 되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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