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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여 Apr 12. 2022

이해의 반대말


지금 나는 당신이 하는 말을 듣고 있다.

귓가에 닿는 목소리가 말하고자 하는 문장보다

먼저 마음에 도착한다.

문장이 완성되기도 이전에

또박또박 전해진 단어들이

귓가에서 비눗방울처럼 흩날린다.

가볍게 빛나 오르는 단어의 모양들이,

그 또렷한 목소리들이 이내 문장을 이루지 못하고

내 얼굴에 그려진 미소 근처에 맺힌다.

들리는 것은 목소리일 뿐, 말이 되지 못한다.

이해될 수 없는 음성들이 된다.


당신이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다만 뚜렷이 당신의 목소리를 듣는다.

단어마다 음절마다 그 호흡을 이해한다.

들숨과 날숨의 연결에 미약한 움직임이

단어를 이룬다. 그 단어에는 무게가 없고,

의미가 없다. 그저 목소리만 존재한다.

그래서 당신이 하는 말을 자꾸만 놓친다.


“미안, 못 들었어, 뭐라고?”


들었지만 이해하지 못한 내가

다시 되물으면 작은 호흡이 목소리를 돌돌 말아

다시 내뱉는다. 그러면 나는 또

읽거나 이해하지 못하고 목소리의 자취를 쫓는다.

어긋난다, 존재에 대한 애정은 이해와 먼 관계다.


당신을 이해할수록 나는 사랑과 멀어지고,

당신을 사랑할수록 이해할 수 없게 된다.

멈춰있는 목소리의 형태를 따라

이해가 아닌 사랑을 그린다.

사랑하지 않아야지만 나는 그 단어들을 볼 수 있다.

이해 없이, 말이나 문장이 아닌

그 목소리가 구성한 호흡의 음절을 사랑하고

이에 안주한다. 당신이 말을 하고 있다.

벌려진 입술 틈새로 퍼져 나오는 목소리가

문장을 무너뜨린다. 나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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