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는 당신이 하는 말을 듣고 있다.
귓가에 닿는 목소리가 말하고자 하는 문장보다
먼저 마음에 도착한다.
문장이 완성되기도 이전에
또박또박 전해진 단어들이
귓가에서 비눗방울처럼 흩날린다.
가볍게 빛나 오르는 단어의 모양들이,
그 또렷한 목소리들이 이내 문장을 이루지 못하고
내 얼굴에 그려진 미소 근처에 맺힌다.
들리는 것은 목소리일 뿐, 말이 되지 못한다.
이해될 수 없는 음성들이 된다.
당신이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다만 뚜렷이 당신의 목소리를 듣는다.
단어마다 음절마다 그 호흡을 이해한다.
들숨과 날숨의 연결에 미약한 움직임이
단어를 이룬다. 그 단어에는 무게가 없고,
의미가 없다. 그저 목소리만 존재한다.
그래서 당신이 하는 말을 자꾸만 놓친다.
“미안, 못 들었어, 뭐라고?”
들었지만 이해하지 못한 내가
다시 되물으면 작은 호흡이 목소리를 돌돌 말아
다시 내뱉는다. 그러면 나는 또
읽거나 이해하지 못하고 목소리의 자취를 쫓는다.
어긋난다, 존재에 대한 애정은 이해와 먼 관계다.
당신을 이해할수록 나는 사랑과 멀어지고,
당신을 사랑할수록 이해할 수 없게 된다.
멈춰있는 목소리의 형태를 따라
이해가 아닌 사랑을 그린다.
사랑하지 않아야지만 나는 그 단어들을 볼 수 있다.
이해 없이, 말이나 문장이 아닌
그 목소리가 구성한 호흡의 음절을 사랑하고
이에 안주한다. 당신이 말을 하고 있다.
벌려진 입술 틈새로 퍼져 나오는 목소리가
문장을 무너뜨린다. 나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