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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여 May 04. 2022

내겐 필 수 없는 꿈을 추앙한다


찰나도 남지 않고 스쳤어야 할 장면들이

되돌아와 흐린 잔상에 초점을 맞추고,

대사 한 마디로 귀에서 기억을 끄집어 내.

가진 온갖 재료를 주섬주섬 꺼내어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되는 식사를 만들던 손길.

무엇으로도 고마운데 그저 아쉽다며

웃어 보이던 당신의 미소가 건네던

정성이 담긴 안온한 시간의 온도를 입에 넣어.

익숙해질 리 없는 단 한 번의 낯선 식탁,

한 톨도 남기지 않기 위해 타닥 부딪히는 젓가락도,

끝없이 오가는 대화마다 걸려 있는 미소도.

마주 앉아 맞은편 발가락의 존재를 느끼며

당신의 채취만 남은 티셔츠에 안주하고,

맨 다리까지 따스해지는 마음의 만찬.

사랑스럽다, 무얼 해도 멋진 사람이

나를 위해 내어준 근사한 접시가

넘치게 차서 허기진 마음을 가득 채운다.


스쳐지나던 말들이 어려운 순간마다

다시 마음에 따스한 비를 내리고

그 끝으로 꽃망울을 틔운다.

스스로를 속박하느라 갇힌 시야와 생각 속에

가려져 있던 나의 아름다움을 풀어주고

흐트러진 얼굴 한 구석도 드러내고 싶지 않아

취기 어린 붉음 앞에 움츠러들면

빨갛지 않아, 오히려 예뻐,

시선 하나 머무르는 순간을 견디지 못해

등돌리고 눈을 감는 나에게 아름다워,

네가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날 사랑하고 내가 사랑했던 이들도

가벼이 넘겼던 아름다움을, 굳이,

매순간 새로이 건네주던 언어가

처음 듣는 단어처럼 귀하고 생경해서

단 한 번도 아름답다고 생각한 적 없던

내 모든 치부들을 곳곳이 들여다본다.

그렇게 오랜 세월 사랑해왔던 사랑의 자욱들이

다 무엇이었을까 - 나 자신에 대한 사랑 하나 없이

무엇을 애정 했던 걸까 - 마침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생각과 마음을 심어두고

홀연히 떠나버린 농부의 등을 보며

언젠가 황금빛으로 추수될 아름다움을

먼 곳에서 떠오르는 석양처럼 바라봐줄

그리고 바라볼 당신을 떠올리면

날 자라게 하는 비만 하염없이 내린다.


비옥한 토양이 되어 당신을 꽃피우고 싶은데

당신은 꽃이 아니다, 나에게서 피어날 수 없다,

땀을 흘리며 미소 짓던 당신은

나에게 품어질 수 없는 꿈이다.


추앙한다,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다.

당신도 누군가에게는 꽃필 꿈이라서 언젠가

머금은 향을 시야가 닿지 않는 곳까지 펼치길

추앙한다.


motif by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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