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E에게
날이 춥다. 내일은 눈이 온대. 봄을 한창 지나는 와중에 눈이라니. 인생만큼이나 알 수 없는 날씨네. 우리는 나이를 먹을수록 이런 말을 당연하게 하게 될까. 모든 게 너무도 빨리 변하고 있잖아. 예측이란 건 이제 그냥 말장난에 불과할지도 모르겠어.
눈이 온다니, 네가 눈을 처음 봤던 날이 기억나. 일 년 중 밤이 가장 길어지는 날 자정 무렵이었지. 유난히 따뜻했던 그해 겨울엔 눈 소식을 찾아볼 수가 없어서 겨울 내내 네가 조금 풀 죽어 있던 게 기억나. 그래서 그날 눈이 온다는 내 말을 듣자마자 잔뜩 신나서는 나가자고 했잖아. 몇 시간을 두드리던 노트북을 내팽개치고서. 평소라면 귀찮다고 이불속에 누워있을 테지만 유독 반짝이던 네 두 눈을 어떻게 외면하겠어.
우린 잠옷 위에 대충 패딩을 걸쳐 입고 문 앞에 나란히 섰는데 말 그대로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어. 그해 오지 않았던 모든 눈들이 그날 밤 다 쏟아지는 것 마냥. 날 잡아끄는 너를 못 이기듯 따라 달리다가 어느새 옷이 젖든 말든 펑펑 쏟아지는 눈 아래를 마구 달리는데, 이상했어. 이상하게 행복했어. 옷이 젖을 거란 걱정도, 집으로 돌아가면 다시 씻어야 한다는 귀찮음도, 그렇게 싫어하는 추위도 다 괜찮았어.
‘처음’이란 뭘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직 모르기 때문에 그 뒤에 따라오는 망가짐도 불편함도 걱정도 다 무력하게 만드는 걸까. 그 모든 걸 알면서도 다시 처음을 떠올리게 하는 네 모습과 그 밤이 오래도록 남아서, 그날 이후로 겨울이면 눈 오는 날을 기다려. 질척이는 회색 눈과 엉망진창이 될 출퇴근길을 떠올리는 건 여전하지만 말이야.
학부 시절 도자사 수업에서 상감기법에 대해 배운 적이 있어. 상감기법은 도자기에 문양을 장식하는 기법 중 하나인데, 형태를 만들어둔 자기에 홈을 파고, 그 안을 희거나 검은흙으로 채우는 거야. 그냥 홈만 파고 구우면 멀리서 봤을 때 문양이 잘 안 보여. 색 차이가 그리 선명하진 않거든. 그런데 흙으로 색을 채워 넣고 나면 아주 선명해져. 우리가 박물관에서 봤던 학이 그려진 화려한 그 고려청자 있잖아.
처음을 다시 경험한다는 건, 그 홈을 채우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어. 무언가를 처음 할 때의 홈이 패이는 것 같은 강렬함은 없지만 채워진 색이 그 기억을 더욱 선명하고 특별하게 만드니까. 어쩌면 그거야말로 처음보다 더 오래 남는 것일지도 모르겠어.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것을 다시 만나게 된다는 게, 잊을 수 없는 자국을 다시 지난다는 게 말이야.
이젠 새로울 것이 점점 사라지는 시절을 살아. 모든 걸 그간의 경험으로 만든 카테고리에 능숙하게 분류해버리는 나를 발견해. 새로움이 주는 반짝임도, 두려움과 부끄러움도 많이 무뎌졌어. 그 덕에 이제 예전만큼 불안하진 않지만 문득 그게 슬퍼지는 거 있지. 사실 난 익숙한 것이 주는 안온함에 취해있던 게 아닐까, 알지 못하는 것이 주는 두려움에 지레 겁을 먹어버린 게 아닐까 하고 말이야.
한밤중에 망설임 없이 눈 내리는 밖으로 나가던 너를 본다. 과거엔 나도 너처럼 할 수 있었을까. 모르겠어. 너무 오래되어서 기억이 잘 나지 않네. 다만 네가 일으킨 바람으로 오랫동안 쌓인 먼지를 털어내. 소중하게 간직했던 첫 순간을 다시금 꺼내봐. 처음은 오직 처음일 텐데 처음을 다시 겪는다는 게 말이 되니? 근데 그런 게 세상에 존재하더라.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은 우스울 정도로 자주 일어나잖아. 말이 되는 것보다 더 말이 될만큼. 그때만큼 똑같은 감정은 아니어도, 그때만큼 특별했어. 오래된 기억을 다시 불러일으킨다는 건 그 자체로도 조금 울고 싶어지잖아.
그러다 나는 궁금해져. 나도 너에게 오래된 처음을 선물했을까. 너도 나와 같이 느꼈을까.
같은 마음이길 바라지는 않아. 그런 건 욕심이니까. 그저 언젠가 우리가 이런 얘길 나눌 수 있길 바랄 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