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답장을 보내야 할 차례인 제가 가족들과 여행 중이라 이번에는 스페셜 편을 준비했어요. 여행을 떠나기 직전 서영님과 나눴던 대화의 일부를 이곳에도 나누고 싶어서요.
다음 편에 다시 답장을 들고 찾아올게요.
-스페인 마요르카의 한 시골집에서. 소연.
소연>
0에는 무엇을 곱해도 0이잖아요. 제가 0인 것 같아요. 수업을 듣고 무언갈 해도 했다는 사실만 남는, 해야겠다고 결심만 하는 사람. 이건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서영>
생각보다 쉬워요.
소연>
작은 성공들을 쌓는 거?
서영>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끝까지 밀고해나가는 것.
소연>
저는 연애도 길게 해 본 적이 없거든요. 한창 싸울 때 그 얘길 듣고 그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이번에 헤어지게 되면 저는 또 회피형의 패턴을 반복할 거라고요. 나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누군가를 또 만나도 금세 헤어져버리는 같은 사이클을 반복할 거라고.
서영>
회피하지 않는 것을 연애를 통해서도 할 수 있지만 그것보단 그 에너지를 소연님의 삶에 쏟는 게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소연>
그렇네요.
서영>
저는 오픈 릴레이션십을 시도해 보면서 사랑을 받는 법을 모를 수도 있다는 걸 알았어요. ‘오픈 릴레이션십’이라는 단어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사랑은 요구 없는 사랑이었어요. 좋아하기에 당연하게도 기대와 욕심, 질투 등등이 존재하지만 그것을 상대에게 당연하게 ‘요구’하거나 ‘부과’ 하지 않는 것 말이에요.
그런데 그런 사랑이 무서울 수 있다는 것을 그 친구를 통해 알았어요. 욕심으로부터 나오는 꽉 쥐는 힘을 뺀 사랑은 큰 자유를 품고 있는데, 그 자유가 어떤 사람에게는 무서워 견딜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요. 자유롭다는 것은 스스로 선택한다는 것이고, 스스로 선택한다는 것은 책임도 오롯이 자신의 것이라는 이야기인데, 그런 점에서 큰 자유와 함께 따라오는 큰 책임에 압도된다는 것을 그 친구를 보며 알았어요. 아무리 줘도 받지를 못하니까.
소연>
왜 줘도 받지를 못하니…
서영>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친구는 저에게 오픈 릴레이션십이라고 거짓말했던 거었어요. 경제적 사회적 힘으로 찍어 누르면 원하는 것만 취하고, 책임은 안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제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아 많이 겁먹고 당황했던 모양이에요. 저는 그런 줄도 모르고 왜 사랑과 자유를 받지 않고 혼비백산해서 달아나는지 의아했고요.
소연>
서로 완전히 다른 걸 생각하고 있었네요.
서영>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 그 사람에게는 사랑이 아닐 때도 있고, 그 사람이 정의하는 사랑이 내게는 사랑이 아닐 수도 있죠. 사랑을 준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사랑이 아닐 때도 있고.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잘못된 것을 주고 있거나.
사랑을 잘 주고받으려면 내가 정의하는 사랑이 무엇인지, 내가 주고 있는 게 무엇인지, 그 사람이 주고 있는 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욕심과 욕망과 사랑을, 세세하게 들여다보고 구별할 줄 알아야죠. 그게 한 덩어리로 뭉뚱그려지면 오해하기 쉬워지는 것 같아요.
소연>
’모두를 사랑하는 것은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라는 문장을 읽은 적이 있어요. 이 문장을 어떻게 생각해요?
서영>
저는 모두를 사랑한다는 것은 나를 사랑한다는 말 같다고 느껴요.
타인을 만나는 건 거울을 보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특정한 관계에서만 드러나는 나의 영혼의 일부가 있는데, 나와 네가 이루는 관계의 각도에 따라서 비치는 모습이 달라지는 거죠. 그래서 관계가 다양할수록 다양한 각도에서 나를 볼 수 있어요.
그런 지점에서, 모두를 사랑한다는 말은 나의 모든 면면을 사랑한다는 말과 같다고 느껴요.
그리고 그런 사람만이 욕심, 집착, 폭력 없는 온전한 사랑을 할 수 있다고 믿어요.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는 사람만이 타인도 온전히 사랑할 수 있다고요.
소연>
그럼 그 모든 사랑 중에 이 사람과 특별히 관계를 맺어야겠다 결심하게 되는 기준이 있나요? 친구나 연인이나 그런 거요.
서영>
이름을 붙이기 전에, 먼저 느껴요. 관계의 거리, 온도, 힘, 방향 등등을요. 그리고 거기에 가장 어울리는 혹은 필요한 이름을 붙여요. 이름을 먼저 정해버리면 그 이름이 가지는 무게에 부응하기 위해 애쓰는 과정에서 ‘진짜’ 관계는 쉬이 망그러지고 상하는 것 같아서요.
예를 들어, ‘친구’라는 이름에 비해 내가 너무 차가운 것 같아서 뜨거운 척하기 위해 애쓰거나, 이름에 비해 내가 너무 뜨거운 것 같아서 쿨한 척하려고 애쓰는 것들 말이에요. 내 마음의 거리와 온도를 인정하면, 더 뜨겁고 가까워질 가능성도 생기고, 힘들 때 뒤로 무를 여지도 생기는데, 이름에 맞춰 연기하는 순간 그 모든 가능성이 사라지고 경직되어 버려요.
관계를 가만히 두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형태가 있는데, 그걸 가만히 지켜보면 이름을 붙이려 애쓰지 않아도 이미 거기에 드러나있어요. 그땐 말하지 않아도, 너와 내가 선명하게 알아요. 이름 없이도 이미 선명하죠. 그럴 때 이름을 붙이고 관계를 정의할 힘과 자유가 생기는 것 같아요.
소연>
서영님은 저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마치 연인 사이에 물어보는 질문 같지만요. 궁금해요.
서영>
어떤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아우라, 층위라고 해야 될까요. 레이어가 보이는데, 소연님이 처음 걸어 들어왔을 때 같은 레이어의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레이어가 달라서 흐릿한 사람들 사이로 혼자 같은 레이어 위로 아주 선명하게 걸어오는 느낌이었어요. 소연님과 눈빛이 얽혔는데 둘 다 피하지 않고 바라보는 동안 소연님도 같은 걸 느끼고 있다는 걸 알았죠.
소연>
같은 종족.
서영>
네.
오픈 릴레이션십을 해봐야겠다고 결심한 이후로 나는 여자도 좋아할 수도 있겠다는 직감이 있었어요. 그런데 소연님을 만났을 때 그 직감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았어요. ‘나는 여성과도 로맨스적인 관계로 발전할 수 있구나’를 알았죠.
그리고 우리가 다시 만나기로 했을 때, 만나기 전에 그냥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게 아니라 데이트를 앞둔 사람처럼 설레는 거예요.
소연>
저도 그랬어요.
서영>
그런 종류의 감정을 느껴보는 건 처음이라 시간을 두고 천천히 보고 싶었어요. 조심스럽게 다루고 싶었어요. 너무 빠르게 활활 타오르면 빠르게 소진되기 마련이니까.
소연>
맞아요. 제가 그때 며칠 뒤에 또 만나자고 했을 때 서영님이 시간을 갖자고 했었잖아요.
서영>
그랬었죠.
당시에는 저도 소연님도 각자 인생의 과업들이 있었는데, 그 방향성이 좀 다르다고 느꼈어요. 같은 방향으로 흐르기 힘들 때 만나면 관계가 금방 시드니까, 우리에게 맞는 타이밍을 좀 더 기다리고 싶었어요. 이상하게 우리에게 딱 맞는 타이밍이 올 거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그리고 잘 한 선택인 것 같아요.
소연>
잘한 것 같아요.
서영>
저도 소연님도 정의되지 않음을 잘 머금고 있는 사람이어서 좋아요. 혹은 있는 그대로 정의 내리는 것을 잘한다고 해야 할까요.
한 편 궁금해요. 둘 다 굉장히 깨방정 떠는 면모가 있지만 가끔 새어 나올 뿐, 아직 머금고 있잖아요. 그런 모습까지 자연스럽게 풀려나올 때는 언제일지.
소연>
그런 모습까지 다 공유한다면 그곳은 낙원이지 않을까요.
우리가 나중에 어떻게 되어 있을지 궁금해요. 우리는 무엇이든 시도해 볼 수 있는 사이니까. 안전하게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는 사이니까.
서영님과는 뇌가 싱크된 것 같아요. 오늘도 세 번이나 같은 말을 동시에 했었잖아요. 걸림이 없고 아무 장애물 없는, 물길의 흐름 속에 있는 느낌이에요. 평온하고 자연스러워요.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좋아요.
제 삶에 찾아와 줘서 고마워요.
서영>
저도요. 소연님을 만나서 아주 기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