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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연 Oct 17. 2016

37. 파리에서 김치 담글 날이 올 줄이야!

초겨울이 다가오는 파리, 이럴 땐 길에서 파는 뜨끈한 국물의 어묵과 엄마 표 김치찌개 생각이 간절하다.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라는 영화를 보면 주인공 박중훈과 장동건이 잠복근무 중에 뜨끈한 해장국이 먹고 싶어 그걸 상상하는 장면이 있다. 어느새 나의 파리 일상은 그들과 다를 바가 없다. 매번 먹고 싶은 게 너무 많지만 현실은 사 먹을 수 없다 보니 한국의 맛 집 프로그램 탐방 먹방 프로그램 같은 건 당연히 시청 금지다. 진정 고문이 아닐 수 없기 때문. 어느새 다가온 겨울에 김치찌개가 간절했던 나는 안 되겠다 싶어 친구와 함께 생애 첫 자발적 김치 담그기에 도전했다. (그간 서울에서 살 땐 엄마가 이미 만들어 놓으신 김치를 받아먹거나, 엄마가 준비하면 김칫소만 바르는 정도였기에) 한국 슈퍼에 가면 물론 김치를 살 수 있지만 김치 한쪽에 7천 원 정도 하는 셈이라 도저히 비싸서 사 먹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김치를 풍성하게 넣고 끓여야 하는 김치찌개는 언감생심 꿈도 못 꾸고 있었다. 그야말로 한국서 그 흔한 김치가 파리는 금치다.


김치를 담그기 위해 올리비에와 친구 남편을 데리고 파리의 유명 중국 슈퍼를 찾았다. 배추용 김치는 파리에서 중국 배추라는 이름으로 팔리고 있다. 배추를 12포기 정도 사고 수육용 돼지고기, 무, 마늘, 생강 등의 각종 재료를 산 뒤 돌아와 김치를 절이고 내일 아침 일찍 만날 것을 약속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김치의 절여진 상태를 보아가며 추가로 소금을 더 뿌리고 마늘을 믹서기에 갈고 무를 썰고 파도 좀 넣고 찹쌀을 풀어 한국에서 공수해온 고춧가루를 투하했더니 제법 김칫소 느낌을 내었다. 올리비에에게 절여진 김치를 나르게 하며 김치 만드는 과정에 참여시켰고 어느새 쓱싹쓱싹 김칫소를 배추에 버무리니 김치가 완성된 것이다. 수육과 같이 먹을 겉절이까지 완성해 이건 뭐 누구 집 잔치 상보다 부러울 것 없는 한상이 차려졌다. 평소에 올리비에는 김치를 아주 잘 먹진 않는다. 마늘향이 너무 강하고 맵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프랑스 사람들은 김치가 매워서 못 먹는 편이다. 하지만 먹다 보면 매운 것도 늘어서 친구 신랑은 라면을 끓여주면 이제 김치 김치 김치도 줘야지! 한다고 한다^^ 암튼 그 날은 방금 한 겉절이에 참기름을 넣고 마지막에 깨까지 뿌리자 꽤나 그럴싸해 보였다. 3명의 한국인이 너무 맛있어하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마구 마구 먹고 있으니 평소 같으면 생김치 먹는 시도를 안 하는 올리비에인데 그날은 두툼한 수육과 함께 큼지막한 겉절이를 몇 번이나 먹는 게 아닌가! 와우~ 그렇게 너무나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며칠 뒤 냉장고를 열 때마다 오.. 스멜~!!! 정말 김치 냄새가 훅! (먹을 땐 참 맛있는데 김치 시는 냄새는 정말이지.... 흑.....) 나는 올리비에를 처다 보며 “괜찮아?”라고 묻자 “응응 처음에만 냄새가 심한 거잖아? 참을 만 해” 라며 나를 배려하는 대답을 해주어 참으로 고마웠다. 생김치는 매워서 지금도 잘 못 먹지만 올리비에는 들기름에 약간의 설탕 후추를 넣고 김치를 볶아주면 요즘은 아주아주 잘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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