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선 아직도 많은 공적인 일의 진행이 편지와 서류로 진행된다. 어떤 서류든 상관없이 받으면 항상 카피를 해 보관해 두라는 프랑스 거주 선배들의 충고에 따라 나는 이 번거로운 일들을 매번 하고 있었다. 가스, 전기, 인터넷, 핸드폰 요금 등등 모든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우리는 개인의 서류 보관 여부와 상관없이 보통 해당 기관에 바로 전화를 걸거나 찾아가 해결하려 하지만, 여기는 개인이 모든 서류를 구비한 상태에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지 않으면 큰 손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행정업무를 보는 그들이 알아서 나의 서류를 챙겨준다거나 찾아서 나의 물음에 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한국에선 너무나 많은 부분 서류가 생략되어 있다 보니 그 삶에 익숙한 나에게 이제 와서 서류 정리에 복사까지... 정말 타임머신 타고 옛날로 날라 간 듯한 느낌이었다. 일례로 파리 시청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프랑스어 수업에 참가신청을 해야 하는데 2012년 말부터 2014년 봄 까지 매번 그 수업을 신청할 때마다 편지로, 서류를 작성하여 보냈다. 서류를 보낼 때는 나의 지원서와 함께 꼭 하나의 새 봉투와 새 우표를 동봉하여 보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나의 서류를 잘 받았다는 서류를 다시 나에게 보내게 하는 시스템 때문이라는 것이 놀랐었다. 그리고 프랑스에서의 모든 행정 관련 진행은 생각보다 ‘더’오래 걸린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항상 어떤 일을 진행하고 준비할 때 최소 두, 세 달 전에 여유를 가지고 하지 않으면 정말 큰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아무튼, 2013년 11월의 어느 날, 우리는 집주인으로부터 내년 2월 말 전에 아파트를 비워달라는 연락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며칠 후 그것을 입증하는 편지가 도착했다. 우리는 이사 갈 집을 알아봐야 했고, 언젠가 태어날 아이를 감안하여 방이 2개 있는 집을 알아보기로 합의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의 예산으로 방 2개가 있는 집은 파리에서 찾을 수가 없었기에, 파리 근교로의 이사를 결정했다. 그러나 집을 알아보겠다고 한 뒤 한 3주가 지났는데도, 올리비에로부터 별다른 이야기를 듣지 못해 궁금하던 차 나는 “집은 보고 있는 거야?”라고 물으니 “응”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가 더 지나자 아마도 곧 집을 몇 군데 보러 갈 수 있을 거 같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나는 원래 그가 느린 사람이니 그러려니 하려던 참이었지만, 생각보다 우리가 찾는 아파트가 없느냐 예산이 문제냐 여러 가지를 묻다 보니 “ 집을 보러 가기 전에 부동산 에이전시에 보내야 하는 서류가 좀 많아, 그걸 준비하느라 시간이 꽤 걸렸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아무리 내가 인터넷을 보고 집이 맘에 들어도 당장 바로 그 집을 보러 갈 수 없는 게 이곳의 시스템이었다. 그 집을 보기 위해 우리는 미래의 세입자 후보의 하나로써 우리가 보낸 서류전형에 합격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서류가 통과된 미래의 세입자 후보들에게만 제한적으로 집을 보여준 후 계약 절차가 진행되는 것이다. 오 마이 갓! 이곳에선 오 몽 디유(Oh mon dieu) 라고 하는데 그말이 절로 나왔다. 프랑스는 세입자가 갑자기 월세를 못 내도 약자를 보호해주는 시스템 상 함부로 세입자를 곧바로 내쫓지 못한다고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저런 번거로움을 막기 위해 무엇보다 까다로운 서류전형이 진행된다는 것이다. 월세가 월급의 1/3은 최소한 되어야 하고 두 명이 같이 살 예정이면 두 명 모두 직업이 있는 것을 선호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거 참, 난감하고 새로운 경험이었다. 유학생 신분으로 집을 구할 때는 프랑스에 보증인이 있거나, 일 년치 월세가 은행 잔고로 있음을 보여주는 계좌 증명 같은 것도 필요하다고 들었다. 아 진짜 이 나라 살기 피곤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철저한 서류 작업 때문에 크게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 거 같아서 나는 준비하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답답하기는 해도 한국처럼 대충대충해서 큰일을 처리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프랑스에서 부동산 서류전형 통과를 위해 보내야 하는 필요 서류들
신분증 또는 여권 / 최근 현재 3개월 월세 명세서 또는 현재 주거 증명서 / 최근 2년간 세금고지서
재직증명서/ 노동 계약서/ 최근 3달간 월급명세서 / 최근 은행계좌 증명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