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속초에서 설악산 등반을 한 다음 날, 바다에서 함께 모터보트를 탔을 때였다.
“아저씨! 당신은 최고의 직업을 가졌어요!”
바다를 가르며 보트가 질주할 때 어머니는 흥분한 목소리로 운전사를 향해 외쳤다. 나는 보트를 타기 전까지만 해도 해변 모래사장 위에 앉아 “보트 한번 타는데 5만 원이라는데… 너무 비싼 거 같아…” 하면서 가격 걱정만 하던 터였다. 그러나 어머니는 너에게 보트를 태워줄 돈쯤은 얼마든지 있다며 보트를 타러 가자고 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보트가 출발하기 전에 잊지 못할 사진 한 장을 남기게 되었다. 운전기사가 찍어준 나와 어머니의 모습은 고교 시절의 어머니가 외할머니와 찍은 흑백 사진과 데칼코마니처럼 겹친다. 사진 속의 어머니는 선글라스를 끼고 구명보트를 입은 채 자신감에 가득 찬 미소를 띠고 있다. 나는 햇살이 눈부셔 약간 찡그린 눈빛으로 무릎 위에 두 손을 포갠 채 억지웃음을 띠고 있다. 출발하는 것의 설렘과 긴장이 우리들의 얼굴에 서려 있는 채.
햇빛에 그을린 맨몸에 민소매 티 하나 걸친 운전기사는 클론의 쿵따리샤바라 같은 철 지난 유행 가요를 볼륨 높여 틀어놓은 뒤 보트의 시동을 켜고 바다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환호성을 질렀다. 모터보트는 ‘왜앵’ 소리를 내며 바다 위에 괴성을 지르는 듯했다. 어머니는 소리 내어 웃기 시작했다. 나는 어머니가 그토록 환희에 차서 웃는 것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았다. 너무 환해서 아득해지는 웃음. 내가 그녀에 대해 단 한 가지 모습만 기억할 수 있다면, 그날의 그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어머니의 야망과 함께 질주하던 바다 위의 한때. 어머니와 단둘이 맹렬히 질주하던 한때. 두 마리의 돌고래처럼. 어머니의 모든 꿈이 빛의 분수처럼 흩어지던 한때.
모터보트가 파도에 튕겨 통통 튈 때면 우리의 엉덩이도 그 자리에서 통통 튀었다. 엉덩방아를 찧을 때마다 어머니의 웃음도 통통 튀었다. 그녀의 웃음은 흘러가는 시간을 영원히 붙잡는다. 그녀의 모든 열정, 정념, 질투, 수치, 슬픔, 분노, 혐오, 기쁨, 환희 들이 그 흩어지는 웃음과 함께 세상에 색채를 더한다. 당신이 살다 간 흔적, 당신이 세상을 사랑한 흔적, 당신이 나를 사랑한 흔적… 그것들을 나는 이제 세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 흔적을 따라 걷는 길이 나를 다른 길로 인도할 것이란 걸 나는 이제 안다.
당신 덕분에 나는 다시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아픈 몸들을 사랑하는 것. 작고 여리고 순한 모든 것들을 사랑하는 것. 우리의 존재가 매 순간 무無를 향해 걷고 있음에도 그 사라짐의 정량만큼 사랑하는 것. 당신의 맨몸을 감쌌던 수의의 색깔로 모든 색들이 바래어 가는 순간을 사랑하는 것. 당신이 정신의 비탈을 타고 기울어지듯 당신의 기울어진 어깨를 닮은 이들을 사랑하는 것. 아슬아슬한 생의 줄타기를 하느라 어쩔 수 없이 휘청이는 당신들을 사랑하는 것. 당신의 눈망울을 닮은 조약돌 같은 것, 말간 것, 고요한 것, 침묵하는 존재들을 사랑하는 것, 둥그스런 박과 같은 당신의 엉덩이처럼 하얗고 포실포실한 둥그런 마음으로 다친 것들을 감싸는 것, 그것이 나의 길임을 나는 이제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