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왔다. 한 달 동안 머물 김녕 숙소에 짐을 풀고 나니 넓은 베란다가 있어 작은 포구에 내려앉은 오리의 울음소리가 저녁까지 들렸다.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나서 해변에서 달리기와 근육 운동을 한 후 몸을 풀며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아 가느다랗고 기다란 선이 내뿜는 희부연 빛과 그 너머의 비어 있음을 오래도록 응시했다. 이른 새벽의 해변에는 인적이 없고 모래 위에는 갈매기와 떠돌이 개가 걸어 다닌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운동을 마친 후에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낮은 돌담으로 둘러싸인 마을의 집들을 천천히 걸어 다니며 한 집 한 집 내 눈에 담았다. 마치 여기가 먼 미래에 내가 살 집이라는 듯이. 500여 미터 간격으로 마을 보호수가 보였다. 이 마을의 집과 길은 이 나무들을 중심으로 구획되어 있었다. 나무는 신묘하고 기이하게 뒤틀린 몸통으로 가지를 하늘로 뻗어 마을과 풀꽃과 돌멩이들을 품고 있었다.
냉이된장국을 끓여 점심을 먹고 베란다에 앉아 아주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을 하염없이 본다. 베란다에 널어놓은 양말이 바람이 펄럭이는 것을 바라본다. 마당 앞을 흘러가는 작은 포구와 그 너머의 오름과 하늘을 바라본다. 이제야 내가 도시의 모든 신경증적인 시간의 재촉에서 아주 멀리 도주해 왔음을 실감한다. 관대한 봄볕이 포구의 물결 위에 무늬를 그리며 간다. 시간이 더디게 가서 나는 어쩔 줄 몰라한다. 책과 노트북과 음악과 시간과 나 자신만이 오후의 정적 속에 있는 것에 소스라치게 놀라서 아! 여기가 어디였지? 하고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보게 된다.
먼 곳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방 안에 향이 피어오른다. 수시로 울려대던 전화기도, 회사 사람들의 카톡 알람도, 처리해야 할 한 무더기의 이메일도, 업무 지시를 하던 편집장의 말도, 마감해야 할 원고도 더 이상 없다. 사무실의 칸막이가 쳐진 책상 위에서 핀셋에 짓눌린 벌레 모양으로 버둥대던 나도 더 이상 없다.
나는 정말로 정말로 멀리 온 것이다. 그리고 이 섬에서 나는 하나의 점처럼 박혀 더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과거의 내가 완전히 사라지고 ‘없는 그곳’을 말이다. 나는 오직 이 현재의 땅 위에서 시간의 아득함으로 들어차 있는 하늘을 바라본다. 봄볕의 애무에는 어쩐지 더 먼 곳으로 떠나야 할 것만 같은 초조함이 서려 있다.
그녀는 빅토리아 여왕이 왕국을 지배한 것보다 더 훌륭하게 몽파르나스를 지배했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
(해일리 에드워즈 뒤자르댕 지음, 고봉만 옮김, 『Noir』, 미술문화, 2021, 89쪽)
Man Ray, Noire et Blanche, 1926
만 레이의 사진 <흑과 백> 속의 여인, 키키를 본다. 1920년대 몽파르나스의 보헤미안들―피카소, 모딜리아니, 파카비아, 칼더, 장 콕토, 헤밍웨이, 만 레이의 뮤즈였던 키키의 본명은 알리스 프랭이다. 나는 어쩐지 파리의 날이 선 키키보다 벨기에의 동글동글한 알리스가 더 맘에 들었다.
흑과 백의 선명한 대조 속에서 알리스의 검게 윤이 나는 머리칼과 길고 가느다란 직선형 눈썹과 추켜올려 그려진 기다란 아이라인, 입술산의 뾰족한 윤곽이 두드러진다. 그녀는 꿈꾸듯이 한쪽 얼굴을 테이블에 누인 채 한 손으로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 바울레 부족의 가면을 쥐고 있다. 그녀는 누워서 원시의 세계를 꿈꾼다. 지그시 감은 눈은 자신의 시원을 바라보고 있기에 아득하다. 그녀의 몸은 현재에 있지만, 먼 곳을, 자신이 이 세계의 입자로 존재하던 그 시간 속으로 떠난다. 그녀는 더 이상 유럽인도, 아프리카인도, 아시아인도, 아랍인도 아니다. 어쩌면 그녀는 나무, 사자, 강, 부엉이, 산, 뱀, 돌멩이, 물범, 이끼, 순록이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었던 광막하고 깊은 어둠이었을 수도 있다.
알리스는 예술가들의 뮤즈로, 누드모델로 생계를 유지했지만, 그녀 또한 그림을 그리던 예술가였고, 배우가 되기 위해 할리우드로 떠났고, 다시 몽파르나스로 돌아와 카바레 셰 키키(Chez Kiki)의 주인이 되었다. 술과 약물 중독으로 생을 다할 때까지 그녀는 자신만의 왕국에서 주인으로 살았다. 만 레이의 <앵그르의 바이올린>에서 그녀의 몸은 악기가 되었지만, 발팽송의 목욕하는 여인이 있던 19세기에서 20세기를 가로질러 21세기의 현존으로 다가왔다. 내 눈 속에서 그녀의 곡선형 몸과 꿈꾸는 얼굴은 단지 대상화된 물체가 아니다. 나는 그녀를 통해 나를 본다. 그녀의 감은 눈을 따라 눈을 감고 먼 곳의 시원을 생각한다. 나를 태어나게 한 곳, 암흑의 동굴인 곳, 창조되는 곳. 그곳에서 나는 툰드라 식물이 된다, 눈이 된다, 비가 된다, 강물이 된다, 뿌리가 된다, 바오브 나무가 된다, 사막여우가 된다, 꿩의밥이 된다, 뱀의 허물이 된다, 씨앗이 된다, 물범이 된다, 우뭇가사리가 된다, 플랑크톤이 된다, 해파리가 된다, 고래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