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의 빛이 길어지면 나는 막걸리를 곁들여 이른 저녁을 먹고 다시 해변으로 산책을 나간다. 걸어가는 길목에 나무 현판 위에 커다란 글씨로 ‘책’이라 쓰인 집을 발견한다. ‘책’이란 글자는 이 고요한 길 위에 ‘오도카니’ 서 있었다. 나는 십여 년 넘게 책을 만들어 왔으면서도, 이 글자가 이토록 정갈하고 단정한 글자인지 처음 알게 된다. 지붕이 유독 낮은 단층 주택을 개조한 책방이었다. 나는 해 지는 것을 우선 보고 나서 돌아오는 길에 들를까, 잠시 고민한다. 걸음을 재촉하다 다시 발길을 돌려 책방 문을 열고 주인에게 “몇 시까지 하세요?”라고 물어본다. 수수한 들꽃같이 생긴 주인이 의자에서 잠시 몸을 달싹이며 “6시까지요”라고 답해 준다. 시계를 보니 5시 37분. 나는 산책을 잠시 미루고 책방으로 들어서서 진열된 책들을 구경한다. 조금 뒤에 그녀의 남편이 들어와 노트북 앞에 앉는다. 주인이 내게 따뜻한 차를 건네준다. 찬찬히 살펴본 뒤 두 권의 산문집을 골라서 계산한다. 그러면서 두 주인과 짧은 이야기를 나눈다. “자주 놀러 오세요. 저희도 심심하거든요” 주인의 선한 눈빛에 마음이 잠시 데워진다.
다시 길을 나오니 멀리서 범종 소리가 울린다. 6시였다. 저녁 햇빛이 대기와 낮은 지붕들과 돌담들을 감싸는 가운데 종소리가 울릴 때마다 그쪽을 돌아본다. 종소리가 퍼져나가며 붉은 하늘을 가득 메우다 더 먼 곳으로 가서 그 소리가 맴돌 때 내 마음도 충일함으로 차오른다. 나는 어쩌면 이 저녁에 조금은 다정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권태나 정념은 먼 세계의 일인 것처럼 심심하게 담담하게 길을 걸어간다.
해변에 당도했을 때 바람이 거세게 불기 시작한다. 나는 모자가 날아가지 않게 머플러로 단단히 모자를 동여매고 검은 바위 위에 올라서서 몰려오는 파도를 바라본다. 끊임없이 부딪히고 돌아선 다음 다시 몰려와서 부딪히고 떠나는 영겁의 움직임, 나는 한때 이 파도가 되고 싶었다. 거침없이 이 세계로 달려들고 망설임 없이 부서진다. 부서져서 포말이 된다. 포말은 다시 포효하듯 일어서서 절벽으로 몸을 던진다. 파도는 매 순간 죽고 다시 태어난다. 나는 파도를 따라 밤의 죽음과 아침의 탄생을 맞이하고 싶었다.
해변의 한쪽에는 한 무리의 갈매기들이 내려와 앉아 있다. 그들은 마치 잠시 정박한 하얀 배처럼 보인다. 나의 시선은 그들을 따라 수평선 쪽으로 나아간다. 빛이 조금씩 바닷속으로 가라앉으며 소멸해가는 것을 본다. 빛들은 자신이 사라지는 일에 대해 분노하지 않는다. 빛들에게는 ‘자기 자신’이 없으므로, 나는 어쩐지 이들의 소멸에 슬퍼진다. 빛들은 태양으로 붉어진 자신을 낯설어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나는 어쩐지 그들의 붉음에 흐느끼고 싶어 진다. 자연은 무심하고 매정하다. 파도는 무고하게 죽은 사람들의 영혼이 우는 소리를 몰고 온다. 바다는 사람들의 눈물을 심연에 가라앉힌 채 마지막 핏빛을 토해낸다.
음력 2월이면 독한 바람과 함께 찾아와 봄의 씨앗을 뿌리는 영등할망 이야기가 있다. 풍랑을 만난 어부들을 구해주고 외눈박이 거인에게 몸이 절단되어 머리는 우도에, 팔다리는 한수리에, 몸통은 성산포로 흘러갔다. 그때의 바다는 얼마나 붉었을까, 얼마나 핏빛이었을까. 그녀는 바람의 신이 되어 제주 곳곳을 맴돌며 고둥씨, 소라씨, 미역씨를 뿌리고 간다. 씨앗들은 슬픔을 대지에 묻고 자라난다. 해녀들은 그 바다에 자신의 몸을 의탁해 문어, 소라, 멍게, 뿔소라 들을 건져 온다. 이제 4월이 오면 슬픔은 거름이 되어 땅의 초록은 짙어지고 무성해질 것이다. 바다는 온몸으로 달려와 그 땅을 껴안을 것이다. 죽은 사람들의 슬픔이 검은 바위 위에 아로새겨질 것이다. 거센 파도에 밀려 뿌리째 뽑힌 감태가 해안으로 밀려올 것이다. 물질 못하는 해녀들은 이를 널어 놓고 말린 다음 등에 이고 지고 돈 벌러 나갈 것이다. 감태 판 돈으로 손녀 손주에게 과자 사주고 아이들은 자라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