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바간 / 14년 전 여행
성 바울 성당을 보러 가는데
내가 이용하게 될 깔레샤가 길에 가득 세워져 있다.
특히 성 바울 성당 앞에 많다.
때는 정오, 성당 앞과 옆엔 그늘이 없다.
강렬한 태양 아래 늘어서 있는 야윈 말들, 말만큼 야윈 주인들.
성당에서 나오면서 고민했다.
내가 꺌레샤를 타야 할까? 말아야 할까?
더운 정오를 피해 올 걸.
제일 가까이 있는 초라한 말과 주인에게 다가가 본다. 이왕이면.
타면서 보니 말의 등과 엉덩이가 너무 말랐다. 나이도 많은 듯.
박물관에 세워주고는 나를 따라 내리는 주인 할아버지를 보니 잘 걷지 못하신다.
말보다 더 못한 행색이다. 저 새빨간 모자만 아니면 걸인.
한 시간 내내 맘이 불편했다.
내가 과연 잘한 일인지!
이 말이 더 안 됐나~ 이 노인이 더 안 됐나~
이 노인은 말에게 잘해줄까? 말을 학대하는 건 아닐까?
난 1시간 동안의 투어를 빨리 끝마치고 싶어서
박물관에 내려주는데도 Go Back! 을 외쳤다.
그러고 나니 말이 땀을 뻘뻘 흘린다.
차라리 박물관에 내릴걸 ㅠㅠ
옆구리 털이 젖어 군데군데 뭉쳐 있다.
그늘을 지나면서 말을 좀 쉬게 해주고 싶어 "여기에 내리겠다" 하니 잘 못 알아들으신다.
우린 대화가 전혀 통하지 않았다.
통했더라면 말에 대해 물어봤을 텐데...
"마농, 빠라 디또 뽀."
내 유일한 따갈로그어. 택시 때문에 외워두었는데 깔레샤에서 쓸 줄이야.
그곳이 숙소 근처라 팁을 챙겨 주고는 서둘러 내렸는데 가는 길이 같다.
숙소 앞에서 웃으며 인사하니 할아버지 더 타란다.
난 가라고~ Bye!라고~
이러고 나니 마음이 무거워져 괴롭다.
난 정오에 말을 괴롭혔고 도움을 주지 못했고
말보다 안쓰럽던 할아버지와 공생하고 있는 말에 대해
어떤 결론도 내릴 수 없었다. 판단도. 실천도.
그저 바라볼 뿐.
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 난 아무것도 아니었다.
짐을 풀어놓았던 방으로 돌아왔더니
방의 냄새를 없애기 위해 켜 놓았던 향초가 진하게 타고 있다.
나도 모르게 스르륵 눈이 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