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포카라
내가 이미 지적했다시피
그런 더없는 환희와 희열은 낙원이 아니라 해왕성에 존재한다.
높은 곳에 오르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일이 없을 행성에 말이다.
<한 인간이 보내는 편지> 존 맨러브 에드워즈
트레킹 마지막 날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
선글라스를 잃었고
찾기 위해 다시 혼자 산에 올랐다가 포기.
홍콩 여성 두 명이 나를 보고 놀랬다.
뛰어오르는 걸 보았는데 다시 내려오고 있었으니까.
"선글라스가 당신의 안전보다 중요하지 않아요.
해가 지고 있어요. 어서 내려가요."
깜깜해지는 히말라야를 뒤로하고 달렸다.
좀 울었다. 콧물이 더 많았지만.
선글라스와 물병이 꼭 내 인생의 조각 같아서
추억을 잃었다 생각하니 미련하게도 눈물이 났다.
어리석은 희망을 품고
잃어버린 물건에 시간을 허비하고 감정을 허비하고.
죽을 때까지 이렇게 살듯해서.
울며 달리며 10년은 늙었고 더 한심해졌다.
포카라 숙소로 돌아와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는 게 기적이었다.
왼쪽 다리가 몹시 아팠지만 내 안전에 감탄했다.
해리는 포카라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게스트하우스를 하고 있다.
네팔에서 선거로 파업이 시작되었을 때,
그는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50대 50이라고.
허탕만 쳤다.
다음날 또 물었다.
"해리, 소나울리 버스 있을까요?"
"버스 길목에서 기다리면 있어요, 분명."
"어제 없었어요. 허탕만 쳤다고요, "
"온 사람이 있으니 분명 있어요. 50대 50이요."
또 50대 50.
그러나 여자 혼자고 영어도 서툴고 네팔어도 못하는
내가 탈 확률은 이보다 낮다는 걸 파업 이틀 후에 깨달았다.
풍성한 하얀 수염 때문에 도인 같아 보이는 한국인 할아버지와
삼겹살을 구워 먹으면 해리가 말했다.
"문제없어요. 비자도 연장했고. 이제 큰 문제없어요."
떠나는 날, 해리는 오토바이로 버스터미널까지 데려다주며 '프리'란 걸 강조했다.
"우리 집에 더 있어도 좋은데."
우린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영수증을 보니 카트만두행 버스표에 택스 10%가 더 붙었다.
이틀 더 머문 덕에 비자 연장 비용과 숙소비 그리고 항공료가 추가되었을 뿐.
포카라에서 더 머무는 동안,
첫날은 인도 숙소와 열차 예약을 취소했다.
둘째 날은 사랑 코트에 올라 스케치를 했다.
라이스 테라스를 지그재그로 빙 돌아 내려오다가 너무 까마득해 가로질러 내려왔다.
좁은 논두렁 길에서 만난 소들이 길을 비켜주지 않아 애먹었다.
멀리서 나마스테를 외치는 소년 소녀들.
그 아이들은 어김없이 스위트가 있는지를 궁금해했다.
산에서 내려와 레이크 사이드를 빙돌아 숙소 근처까지 왔을 때,
난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무얼 먹을까 헤매다 예전에 봐 두었던 테이블 네 개가 있는 가게에 들어갔다.
피시 앤 칩스는 기대 이상으로 맛있었다.
게다가 텍스도 붙지 않았다.
다시 힘이 솟았다.
맥주 두 병과 내가 좋아하는 피넛 쿠키를 샀다.
산에서 금욕한 탓인지 취했다.
폰으로는 카트만두-바라나시 비행기 예약이 안 되었고.
최고로 취해 있었고.
급기야는 지저분해 얼굴을 박고 싶지 않은 변기에 토를 했다.
좋아하던 맥주와 피넛 쿠키를 토했다.
다음날 카트만두에 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곤 누워 생각했다.
내일 일어나면 가고 못 일어나면 가지 말자.
그렇다. 포카라는 계속 머물게 만든다.
저 우뚝한 산들이 있어서.
인간의 힘은 너무 작디작다는 운명을 받아들여
무언가 새로 계획하고 시도하고 떠나는 일을 도저히 할 수 없게 만든다고 웅얼거렸다.
새벽에 눈이 떠졌다.
산의 기운이 약해졌나?
아님 산이 떠나라 허락한 것인가?
새벽에 준비를 마치고 카트만두로 떠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