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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묘 Sep 05. 2022

또 50대 50

네팔 포카라

내가 이미 지적했다시피 
그런 더없는 환희와 희열은 낙원이 아니라 해왕성에 존재한다.
높은 곳에 오르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일이 없을 행성에 말이다.
<한 인간이 보내는 편지> 존 맨러브 에드워즈 


트레킹 마지막 날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 

선글라스를 잃었고 

찾기 위해 다시 혼자 산에 올랐다가 포기.

홍콩 여성 두 명이 나를 보고 놀랬다.

뛰어오르는 걸 보았는데 다시 내려오고 있었으니까.

"선글라스가 당신의 안전보다 중요하지 않아요.

해가 지고 있어요. 어서 내려가요."

깜깜해지는 히말라야를 뒤로하고 달렸다. 

좀 울었다. 콧물이 더 많았지만. 

선글라스와 물병이 꼭 내 인생의 조각 같아서 

추억을 잃었다 생각하니 미련하게도 눈물이 났다. 

어리석은 희망을 품고

잃어버린 물건에 시간을 허비하고 감정을 허비하고.

죽을 때까지 이렇게 살듯해서.

울며 달리며 10년은 늙었고 더 한심해졌다.


포카라 숙소로 돌아와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는 게 기적이었다. 

왼쪽 다리가 몹시 아팠지만 내 안전에 감탄했다.

해리는 포카라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게스트하우스를 하고 있다.

네팔에서 선거로 파업이 시작되었을 때, 

그는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50대 50이라고.

허탕만 쳤다.

다음날 또 물었다.

"해리, 소나울리 버스 있을까요?"

"버스 길목에서 기다리면 있어요, 분명."

"어제 없었어요. 허탕만 쳤다고요, "

"온 사람이 있으니 분명 있어요. 50대 50이요."

또 50대 50.

그러나 여자 혼자고 영어도 서툴고 네팔어도 못하는 

내가 탈 확률은 이보다 낮다는 걸 파업 이틀 후에 깨달았다. 

풍성한 하얀 수염 때문에 도인 같아 보이는 한국인 할아버지와 

삼겹살을 구워 먹으면 해리가 말했다.

"문제없어요. 비자도 연장했고. 이제 큰 문제없어요."

떠나는 날, 해리는 오토바이로 버스터미널까지 데려다주며 '프리'란 걸 강조했다.

"우리 집에 더 있어도 좋은데."

우린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영수증을 보니 카트만두행 버스표에 택스 10%가 더 붙었다.

이틀 더 머문 덕에 비자 연장 비용과 숙소비 그리고 항공료가 추가되었을 뿐.

포카라에서 더 머무는 동안, 

첫날은 인도 숙소와 열차 예약을 취소했다. 

둘째 날은 사랑 코트에 올라 스케치를 했다. 

라이스 테라스를 지그재그로 빙 돌아 내려오다가 너무 까마득해 가로질러 내려왔다. 

좁은 논두렁 길에서 만난 소들이 길을 비켜주지 않아 애먹었다. 

멀리서 나마스테를 외치는 소년 소녀들. 

그 아이들은 어김없이 스위트가 있는지를 궁금해했다. 

산에서 내려와 레이크 사이드를 빙돌아 숙소 근처까지 왔을 때,

난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무얼 먹을까 헤매다 예전에 봐 두었던 테이블 네 개가 있는 가게에 들어갔다. 

피시 앤 칩스는 기대 이상으로 맛있었다. 

게다가 텍스도 붙지 않았다. 

다시 힘이 솟았다. 

맥주 두 병과 내가 좋아하는 피넛 쿠키를 샀다. 

산에서 금욕한 탓인지 취했다. 

폰으로는 카트만두-바라나시 비행기 예약이 안 되었고. 

최고로 취해 있었고. 

급기야는 지저분해 얼굴을 박고 싶지 않은 변기에 토를 했다. 

좋아하던 맥주와 피넛 쿠키를 토했다. 

다음날 카트만두에 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곤 누워 생각했다. 

내일 일어나면 가고 못 일어나면 가지 말자. 

그렇다. 포카라는 계속 머물게 만든다.

저 우뚝한 산들이 있어서.

인간의 힘은 너무 작디작다는 운명을 받아들여 

무언가 새로 계획하고 시도하고 떠나는 일을 도저히 할 수 없게 만든다고 웅얼거렸다.


새벽에 눈이 떠졌다. 

산의 기운이 약해졌나? 

아님 산이 떠나라 허락한 것인가? 

새벽에 준비를 마치고 카트만두로 떠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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