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파울루, 브라질
배낭을 잃어버려 너무 슬프다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자 생각지도 않게 많은 친구들이 도와주겠다며 연락이 왔다. 한국 친구들은 물론, 미국에서 알던 친구들까지.
그러고 얼마 뒤 …
정말로 배낭이 돌아왔다.
도쿄 나리타 공항에서 마지막 장소가 찍힌 뒤 감감무소식이던 배낭. 지구 몇 바퀴를 돌아 내게 온 것일까?
어쨌든 기분 좋은 하루다. 호스텔에서 사귄 친구들은 배낭이 돌아온 것을 축하할 겸 클럽에 가자 했다.
배낭여행 중, 클럽에 갈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는데…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친구들은 낡고 더러운 배낭에서 드레스 업 할 예쁜 옷들을 꺼내 입기 시작했다.
- 난 클럽을 가기엔 없는 게 많은데 …
- 그게 뭐가 중요해? 우리에게 여분의 아이템들이 있으니 빌려 줄게!
그렇게 우리는 상파울루에서도 유명하다는 아이스 클럽에 갔다. 나와 독일에서 온 네바와 네다, 프랑스에서 온 케빈과 캐넌. 그리고 호스텔에서 일하던 브라질 친구들 두 명까지 총 일곱 명이서 클럽으로 향했다.
클럽 밖에서 30분가량을 기다리니 우리의 입장 순서가 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내가 여권을 챙겨 오지 않은 것이다. 브라질 친구는 우선 자기가 잘 말해보겠으니 기다리라 했고, 얼마 되지 않아 덩치 큰 클럽 매니저가 클럽 밖으로 나왔다. 나를 위아래로 훑더니 종이에 이름과 국적, 나이 그리고 여권번호를 적으라고 했다. 그제야 우리는 클럽 안으로 입장할 수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강한 비트의 음악이 사람들 땀 냄새와 엉켜 묘한 흥분감을 주었다.
"오늘은 널 위한 날이니만큼 춤을 춰야지 않겠어?"
파리에서 온 동갑내기 친구, 케빈이 말했다.
춤추는 것이 어색한 나는 이 모든 풍경들을 바라보며 쭈뼛쭈뼛 서 있었다. 케빈은 그럴 때마다 다가와 춤을 추라고 말했다. 손을 잡고 함께 춤을 춰 주었다. 어색하지 않도록, 민망하지 않도록.
독일에서 온 네다와 네바. 생김새로 보든 이름으로 보든 언뜻 봐서는 자매 같은 두 사람이지만 실은 가장 친한 친구사이라고 했다. 네다는 고등학교 졸업 후 6개월 동안 남미를 여행하기 위해 브라질로 막 날아온 아이였고 - 네바는 한 달 동안 네다와 브라질만 여행한 뒤 독일로 돌아가는 아이였다.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외모. 상냥하고 웃을 때 특히나 매력이 넘치는 두 명의 독일 사람.
'독일인!' 하면 큰 체구에 하얀 피부, 하늘색 눈동자와 노란 머리카락을 가진 유머 감각 없는 사람들을 쉽게 생각했는데 - 네바와 네다 모두 그와 반대되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네다의 부모님은 터키에서, 네바의 부모님은 부르키나파소라는 서아프리카 나라에서 독일로 이민 온 사람들이라고 했다. 하지만 정작 둘은 유럽을 떠나본 게 이번이 처음이라고.
캐넌은 프랑스 남부, 보르도 지방에서 온 사람이었다.
"파리는 프랑스가 아니야! 진정한 프랑스는 관광객들과 허영으로 가득 찬 파리가 아닌 남부 지방이라고 할 수 있지."
라는 말을 늘 외치고 다녔던 친구.
술과 여자를 좋아했고- 무언가를 좋아할 때는 그저 막연히 좋아할 뿐, 취향이랄 것도 딱히 없는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캐넌은 자신을 취할 수 있게 해주는 음료라면 일단 다 마시고 봤다. 여자도 마찬가지였다. 여자를 만날 때도 국적이나 나이, 인종, 키, 몸무게, 눈동자의 색깔 따위는 중요치 않아 보였다. 앉은자리에서 10명은 거뜬히 사랑할 줄 아는 사람처럼 보였다. 모두를 사랑할 줄 알고, 모두의 사랑을 얻을 줄도 아는 -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였다.
파리에서 온 케빈은 그런 캐넌을 보고 남들과 조금 다른 프렌치 악센트를 가지고 있다며 놀렸다. 하지만 그 말 기저에는 왠지 다른 뜻이 숨겨져 있는 것만 같았다. 파리에서 온 케빈은 보르도에서 온 캐넌의 그런 자유분방함을 부러워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을 좋아하고, 그중에서도 여자 친구들을 좋아하고,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에 있어 경계가 없으며 늘 어딘가 풀려있는 캐넌의 모습은 참 자연스러워 보였으며 매력이 넘쳤다. 카메라가 없어 사진 찍을 일이 있을 땐 노트북에 달린 내장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다던 캐넌. 2년 동안 남미를 일정한 수입 없이 방랑자처럼 떠돌고 있었던 캐넌. 프랑스어와 영어 그리고 스페인어를 완벽하게 구사해 이때까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있는 호스텔에서 일을 했고, 당시는 번 돈을 들고 브라질로 건너왔던 캐넌.
남미를 여행하다 보면 이렇게 자유로운 인생을 살고 있는 친구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데 캐넌은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오래 남는 친구가 아닐까 싶다.
강한 일렉트로닉 음악을 오랜 시간 듣다 보니 귀가 피로해지고, 몸도 피곤해졌다.
새벽 두 시, 우리는 택시를 타고 호스텔로 돌아가기로 했다. 택시 기사 아저씨가 호스텔 근처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어야 된다고 하자 우리는 그곳에서부터 호스텔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취기가 조금씩 남은 우리는 다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그때 케빈이 나에게 노래를 불러달라고 말했다. 사실 케빈이 내게 노래를 불러달라고 한 건 처음이 아니었다. 늘 쑥스러워서 거절하고 또 거절하며 버텼는데….
"다음에, 다음에 진짜 해줄게"라는 말로 늘 넘어갔는데 … 그날은 그냥 불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술도 취했고 공기도 뭐처럼 청아한 상파울루의 밤이었다.
케빈은 한국의 국가를 불러달라고 말했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내 노래를 기다렸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
태어나 누군가를 위해 처음 노래를 불렀다. 애국심이라고는 거의 없는 내가, 지구 반대편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그것도 클럽을 다녀오는 길에 애국가를 불렀다.
"너무 고요하고 아름다워. 마치 자장가처럼. 한번 더 불러줄 수 있어? "
노래가 끝나자 케빈은 한번 더 불러달라고 말했다. 쑥스러웠지만 분위기도 좋았고 … 그래서, 2절도 부르고 3절도 불렀다.
"내가 잠이 오지 않을 때 네가 옆에서 이 노래를 불러주면 되겠다."
케빈은 말을 참 낭만적이게 할 줄 아는 친구였다.
노래를 마치고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이제 상파울루를 떠나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가에 웃음이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