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파울루를 떠나며

상파울루, 브라질

by 팡동이


예상보다 훨씬 길게 머물렀던 도시. 상파울루. 가방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내가 이 도시에서 이렇게 많은 추억을 쌓을 수 있었을까? 예정보다 길게 머물었음에도 불구하고 떠나려니 왜 이렇게 아쉬움이 많이 남을까.



늦잠을 자고 일어나니 호스텔의 아침식사 시간은 이미 끝이 나 있었다.


'주스나 마셔야지' 하며 주방에 들어가니 브라질 남자 애들 두 명이 있었다. 한 명은 키가 크고 덩치가 좋았으며, 다른 한 명은 키가 작고 왜소했다.


왜소한 아이는 주방에서 라면을 끓이고 있었고 덩치가 큰 아이는 라면을 기다리며 빵을 뜯어먹고 있었는데 -이 둘이 커플이었다는 것을 호스텔을 떠날 때쯤 돼서야 알았다.


주방에서 어물쩡거리는 나를 보고 무작정 말을 걸었던 왜소한 남자아이. 자신의 이름은 '티아고'이며 그다음부터는 포르투갈어로 길게 이야기했다. 아마 자신의 나이, 고향, 이 곳에 오게 된 이유 등을 설명했으리라. 중간중간 영어 단어를 섞어 얘기하던 티아고. 대충 짐작하고 웃으니 라면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보글보글 끓고 있는 라면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말했으니.


그러고 나서는 젓가락 사용법에 대해 이야기했을 것이다. 젓가락을 쥔 손을 까닥까닥 거리며 이야기했으니까. 이렇게 십 여분을 한참 이야기하다 웃기만 하는 내가 답답했던 것인지 티아고는 기다리고 있으라는 말과 함께 주방에서 잠시 사라졌다.


티아고는 10분 정도 뒤, 종이에 무언가를 적어 왔다. 영어로 된 편지 같은 거였는데 구글 번역기를 돌린 것 같았다. (2011년도 구글 번역기의 번역 수준은... ㅠㅠ)


번역은 엉망이었지만 티아고가 나에게 그토록 설명하고자 했던 게 무엇인지 알고 나니 상파울루라는 도시를 떠나는 게 더 싫어졌다.


티아고의 편지


우리는 브라질 사람들이야. 영어를 잘 못하지. 우리는 티아고와 클라우디우야. 만나서 반가워. 우리는 이곳에 다음 주 토요일까지 머무를 예정이야.


티아고가 저 편지를 쓰러 로비에 갈 당시 클라우디우는 이미 방으로 돌아간 상태였다. 하지만 티아고는 편지에 자신의 이름만 적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연인, 클라우디우의 이름도 빼먹지 않았다. 나는 티아고의 그런 섬세함과 따뜻함이 좋았다. 그리고 다음 주 토요일까지 이곳에 머물 예정이니 친하게 지내자는 메시지.


하지만 나는 곧 상파울루를 떠나야 했다. 티아고에게 말해줄 수 있었지만 동시에 말해주기 싫었다. 그냥 다음이 있는 상태로 인사를 나누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 또 만나자!




호스텔에 함께 묶었던 친구들 중 몇몇은 떠나고, 몇몇은 저녁 버스를 타기 위해 무작정 로비에서 시간을 때웠다. 다른 몇몇은 며칠 더 상파울루에 머무를 생각이라 했다.


그동안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과 작별 인사를 나눈 뒤, 큼지막한 배낭을 메고 호스텔을 나왔다. 이 낯선 땅에서 앞으로 몇 달을 더 여행하기 위해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은 만남과 헤어짐에 의연해지기. 떠날 시간이 오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멋지게 떠나기. 울지 않기. 애정을 갈구하지 않기. 인연이라면 언제라도 다시 만날 수 있다고 믿기. 하지만 인연이란 것에 집착하지 말기.



돌아보면 이건 비단 여행 때만 필요한 태도는 아니었다. 내 삶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태도였다.


나는 사람들과의 관계, 즉 인연에 대해 그 누구보다 두려워하고 무서워했다. 어렵게 마음을 열고나면 잠깐은 행복했지만 그다음부터는 대체로 괴로웠다. 나를 스쳐 지나간 많은 사람들을 미워했다.


"이젠 아무렇지 않아"라고 수 백, 수 천 번 이야기했지만 사실은 그와 정 반대였다.




그래, 또 만나자!


인연이라면, 언제든 어디서든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매서운 바람이 부는 시베리아도 좋겠고, 따뜻한 인도의 동남쪽도 좋겠다. 흰 눈이 많이 내리는 홋카이도에서 마주 보고 앉아 맥주를 마셔도 좋을 것 같고, 길을 잃어도 행복할 것만 같은 로마의 어느 골목길도 좋겠다.


우리가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