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 데 자네이루, 브라질
남미를 여행하는 연령대는 참 다양하다.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10대 후반부터 연세가 지긋하신 할머니, 할아버지들까지. 그중 가장 많은 연령대는 단연 2~30대이다. 내 또래 친구들을 만나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신기하게 동갑내기 친구들은 또 만나기 어려웠다.
나탈리아와 나는 동갑이기도 했지만, 우리는 서로가 아주 다르면서도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걸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탈리아는 리우 데 자네이루에 있는 호스텔, 같은 방 내 바로 윗 층 침대를 사용하던 브라질 여자 애였다. 어눌한 말투와 온몸에 새겨져 있던 타투. 4년 만에 미국에서 귀국한 어릴 적 친구를 만나러 브라질리아에서 비행기를 타고 리우 데 자네이루까지 날아온 아이.
"왜 친구 집에 머물지 않고 호스텔에서 지내는 거야?"
"친구 엄마가 나를 별로 안 좋아하거든. 친구는 만나고 싶고, 친구 엄마는 날 싫어하는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어? 이렇게 호스텔에 머물며 친구를 만나는 수밖에."
나탈리아가 내뱉은 그 말이, 그리고 그 상황이 당시 내게 꽤나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리우에서 묵었던 호스텔엔 이스라엘 여행객들이 많았다. 갓 군대를 제대한, 패기 넘치는 어린 이스라엘 여행객들은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어딜 가나 환영받지 못했다. 첫 번째로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팔레스타인에 가하는 폭력을 남아메리카, 특히 브라질 사람들은 용납하지 않았다.
다음으로 그들은 대부분 떼를 이루어 여행을 하고 목소리가 크며 타인을 배려할 줄 모른다, 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여행의 가장 커다란 목적 중 하나는 몰랐던 세상과의 소통인데- 그들은 소통을 하는 방법도 모를뿐더러 의지 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남녀 모두 의무적으로 2~3 년 동안 복무하게 되는 군대. 그 군생활이 얼마나 개개인을 폐쇄적이고 획일화된 존재로 변모시킬 수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곳에서 얼마나 많은 좌절을 겪고 나왔을까. 한편으로 안타깝기도 했다.
나탈리아는 온, 오프라인 상으로 팔레스타인 독립을 열렬히 지지하는 아이였다. 우리가 처음 만난 그날도 나탈리아는 "I LOVE PALESTINE"이라는 티셔츠를 입고 호스텔을 돌아다녔다. 여기저기서 째려보고 수군대는 이스라엘 여행객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내가 이 티셔츠를 입어서 쟤들이 날 벌레 보듯이 쳐다보는 거야. 기분 참 뭐 같네."
"신경 끄라해. 난 아까부터 네 티셔츠가 참 마음에 들었어."
"너도 이게 마음에 들어? 내 잠옷이야. 멋지지? 원한다면 다음에 그곳에 갈 때 네 것도 사다 줄게."
기분이 많이 안 좋았는지 나탈리아는 내게 1층으로 내려가 맥주를 마시지 않겠냐고 먼저 제안했고, 그것이 우리가 친해질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대부분이 욕뿐인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던 나탈리아는 시니컬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게만큼은 정이 넘치는 아이였다. 함께 온 몸에 문신을 새긴 남자 친구는 상파울루에 있는 대학에 다닌다고 했다.
"우리 관계는 조금 이상해."
"왜?"
"장거리 연애이니 만큼 서로에게 다른 사람이 생기면 쿨하게 헤어지기로 했거든."
"뭐, 그럴 수도 있지..."
"근데 우린 지금 5년째 연애 중이야."
우리는 맥주를 마시며 많은 대화를 나눴다. 어떤 삶을 살다 이 곳까지 오게 되었는지, 이스라엘이 얼마만큼이나 싫은지, 우리는 왜 팔레스타인을 끝까지 지지해야 하는 것인지... 벽에 나란히 기대앉아 이야기를 하였다. 그렇게 계속 이야기하다 보면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 믿었다. 23살에게 그런 것들은 전부나 다름없었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