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 살기를 꿈꾸는 스페인 사람

리우 데 자네이루,브라질

by 팡동이







리우에 가자마자 사귄 친구는 스페인에서 온 마리네이다.


나보다 대여섯 살이 많은 마리네는 내가 가려는 루트를 이미 다 여행하고 반대방향으로 거슬러 올라 온 배낭여행객이었다. 따라서 브라질이 남미 여행의 마지막 국가였고, 멕시코를 거쳐 스페인으로 돌아가는 일만 남겨놓은 상태였다.


남미를 여행하다 보면 내가 가는 루트를 비슷한 속도로 가고 있는 친구들도 있고, 한 나라에 올인하는 친구들도 있고, 같은 루트지만 나와 정반대로 올라오고 있는 친구들도 있다.


커다란 남아메리카 대륙 안에서 어떤 나라와 도시를 선택해 여행하고 있는지 듣다 보면 그 사람의 성향도 어느 정도 파악이 가능했다. 브라질만 여행하는 사람, 브라질만 빼고 여행하는 사람, 대자연을 중심으로 여행하는 사람, 소도시를 중심으로 여행하는 사람, 아르헨티나를 유난히 좋아하는 사람, 페루와 볼리비아 같이 인디오 문화가 강한 나라를 좋아하는 사람 등등.




마리네는 잔잔하게 계속 끓고 있는 주전자 같은 친구였다. 내가 만난 대부분의 스페인 사람들은 굉장히 수다스럽고 엉뚱하며 유쾌했다. 여행도 무리 지어 다니는 것을 선호하고.


하지만 마리네는 달랐다. 굉장히 조용하고 독립적이었으며 - 고집도 강했다. 속이 단단하다는 걸 조금만 대화해 봐도 알 수 있었다. 그 독하다는 말보로 레드는 쉴 새 없이 피면서도 술은 또 잘 마시지 못했다.


마리네는 태어나 처음으로 유럽 밖을 나와봤다고 했다. 남아메리카 대륙을 첫 여행 장소로 정한 이유는 뭐였을까?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는 데서 오는 안정감도 컸으리라. 마리네는 브라질에서도 스페인어를 사용했다. 포르투갈어 사용자는 스페인어를 잘 알아들을 수 있지만, 스페인어 사용자는 포르투갈어를 잘 알아들을 수 없다고 알려준 사람도 마리네였다.


남미를 여행하며 놀란 사실은 생각보다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역을 떠나본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 마리네 역시 이번 여행이 어쩌면 본인 인생에 오랫동안 없을 무언가라는 걸 아는 사람처럼 보였다. 하나라도 더 보고, 더 많이 느끼려 굉장히 애를 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공부하 듯 여행했다. 그러다가 소매치기를 당하고 돌아온 날도 있었다. 아침에 홀로 이파네마 해변을 걷는데 한 브라질 소년이 다가와 자신의 가방을 낚아 채 갔다고. 다행히 여권과 돈은 숙소에 있어 손해가 크지는 않았지만 마리네는 한참 동안이나 화를 가라 앉히지 못했다. 이럴 땐 또 스페인 사람 같네, 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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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네는 스페인 상황이 너무 안 좋아지고 있다며 영국에서 베이비시터로 돈을 벌 계획이라고 했다. 호스텔에서도 틈만 나면 영국의 채용 공고를 살펴보고 있었다.



전 날 파티로 호스텔 사람들 대부분이 뻗어있던 그날 아침.

아르헨티나로 향하는 버스 시간 탓에 조용히 짐을 싸서 방을 빠져나오는데 마리네를 만났다. 공부하 듯 여행하는 마리네는 아무리 늦게까지 놀아도 늘 아침 일찍 일어났다. 그날도 마리네는 이미 아침 식사를 마친 뒤, 뜨거운 차를 마시고 있었다.


"가는 거야? 오늘은 날이 맑아서 예수상을 보러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오늘은 정말 떠나야 해. 더 이상 미뤘다가는 브라질만 여행하고 한국으로 돌아갈 것 같거든."

"맞다! 나 너한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 나 영국에서 일하게 되었어! 스페인으로 돌아가면 곧바로 영국으로 갈 것 같아. 너무 신나고 또 기대돼! "


문 앞에서 환하게 웃던 마리네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한 여름, 손에 꼭 쥐고 있던 뜨거운 찻잔도. 모든 게 '마리네'다웠다. 그래서 웃음이 났다.


브라질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치 모든 게 생생하게 기억난다.


참 이상하리 만큼 생생하다. 그 모든 일들이 이토록 또렷이 기억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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