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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팡동이 Jul 27. 2021

볼리비아 사람들은 어디에 살고있나요

산티아고, 칠레



Donde viven los bolivianos en chile?

볼리비아 사람들은 칠레 어느 지역에 살고 있나요?

구글에 볼리비아와 칠레 같은 단어들을 함께 검색해보면 나오는 문장이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물어봤기에 상위에 링크되는 질문들. 그 밖에 재밌는 질문들을 몇 개 더 이야기해 보자면 


볼리비아는 칠레의 일부인가요? 볼리비아 사람들은 왜 칠레에 사나요? 같은 질문들. 



(이민을 실제로 간 적은 없지만) 나를 차지하는 대부분의 감수성(?)은 이민 문화에서 왔다. 일단 많은 친인척들이 80년대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우리 집 역시 그린카드가 있어 몇 번의 미국 이민을 준비했었다.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는 아빠 직장 때문에 중국 북경으로 갈 뻔도 했다.


아마 떠나게 될지도 몰라, 그러니 너도 준비하고 있어. 교복은 아직 사지 말자. 학교에 가서 성적표를 떼어 와야 해. 친구들한테는 알렸니? 슬슬 인사를 나눠야 하지 않겠어?

엄마는 이런 말들을 종종 했다. 


친구들한테 알리지는 않았다. 대신 떠나게 될지도 모르는 나라에 대해 상상했다. 미국이라는 나라와 중국이라는 나라. 그곳은 어떤 곳일까. 이곳과 많이 다르겠지? 여행으로 갔을 때와 얼마나 다를까. 행복할까?


어느 순간부터 사촌들이 겪었던 일들이 내 일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답답하고 무서워졌다. 미국과 중국은 분명 커다란 대륙인데 왜 나는 한 없이 쪼그라드는 느낌을 받았을까. 




옆에서 관찰해 본 바, 외국에서 산다는 건 결코 낭만적인 일이 아니다. 오히려 철저히 그 반대에 있다. 타지에 산다는 건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몇 백배 몇 천배 더 외롭고, 처절하고, 고단한 일이었다. 


칠레 내 볼리비아 대사관 


운명인가 싶을 정도로 어딜 가든 본인들의 땅을 떠나온 사람들과 친해졌다. 그들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집'이라 부를 수 있는 곳을 두 나라에 가지고 있었지만 그 어디도 진짜 '집'인 장소는 없었다. 20대 때, 잠깐씩 아르바이트를 해도 그런 환경에 놓인 친구들과는 어김없이 친해졌다. 어느 순간부터 이상하다고 느껴졌다. 내가 그 감수성을 가진 사람들에 매력을 느끼는 것일까, 그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고 다가오는 것일까. 그들은 둘 중 한 곳을 온전히 떠날 수도, 그렇다고 정착할 수도 없어 보였다. 그렇게 두 나라 사이 어딘가를 부유하고 있었다. 


이 다음 글에 소개할 클라우디아도 그런 친구였다. 볼리비아 사람이었지만 칠레에 살고 있는 사람. 



볼리비아에 가기 위해서는 비자가 필요했다. 하지만 2011년 당시 한국엔 볼리비아 대사관이 없었기에(현재는 있는 것 같다), 볼리비아에 가고 싶으면 칠레 내 볼리비아 대사관에 가서 비자를 받아야 했다. 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황열병 주사 카드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남미에 오기 전까지 체 게바라 루트를 따라 비슷하게 여행하겠다는 생각만 했지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기에 내게 예방접종카드 따위는 없었다.



볼리비아에 꼭 가고 싶은데 어떻게 하지?


클라우디아가 자신과 함께 가보자고 했다. '혹시 동향 사람이고 그러면 통하는 게 있고 그러려나? 그래도 엄연히 한 나라의 대사관인데. 설마.'


일단 내가 먼저 나서 보았다. 최대한 저자세로 밝게 웃으며 비자를  받을 수 없겠냐고 물어보았다. '저 진짜 나쁜 사람 아니구요, 볼리비아에서 아무 문제도 일으키지 않을 게요. 모기가 사는 지역 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을게요.'의 태도. 하지만 대사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필수 서류는커녕 예방 주사도 안 맞아 놓고 비자를 달라고 하는 꼴이니 … 당연했다. 


두 번째 방법을 써야 할 때가 온 것 같았다. 이번에는 볼리비아에서 온 클라우디아가 나섰다. 클라우디아는 스페인어로 대사와 한참 동안 이야기했다. '어떤 재미난 얘기를 하길래 저렇게 웃지? 내 비자는 어떻게 된 거지?'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데 - 대사가 외쳤다. 


"Bueno!" (좋아!) 


'네? 진짜요? 진짜 비자가 이렇게 나온다구요?'


대사는 대신 위험 지역은 가지 않겠다고 약속하라 했다. 우유니 사막과 라파즈는 황열병이 도는 지역이 아니었기에 나는 그러겠다고 했다. 


그렇게 볼리비아 도장이 내 여권에 찍히게 되었다. 




- 그렇게 좋아? 

- 당연하지! 볼리비아를 갈 수 있게 됐잖아. 너무 고마워!

- 직접 가서 보면 더 좋아하게 될 거야. 

클라우디아가 환하게 웃었다. 나는 갑자기 아까 대사와 클라우디아가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궁금해졌다. 


- 근데 있잖아. 아까 대사랑 무슨 얘기를 그렇게 재밌게 한 거야? 


클라우디아는 다시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 아, 볼리비아 사람으로 칠레에 사는 삶에 대해 이야기했어. 좋은 점과 힘든 점 같은 것들 말이야. 그 사람도 나도 칠레에 사는 볼리비아인이잖아. 


한 명은 중년의 대사였고, 다른 한 명은 20대 후반의 치의대생이었지만 둘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칠레에 사는 볼리비아 사람. 나이도, 성별도, 직업도 달랐지만 누구보다 서로를 잘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클라우디아의 (그 당시) 남자 친구인 디에고 집으로 향했다. 바비큐 파티가 있다고 했다. 디에고의 집에 가니 클라우디아와 디에고의 친구들이 모여 있었다. 모두 볼리비아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칠레 산티아고의 한 아파트. 그곳에 그렇게 볼리비아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바비큐 굽기

직업은 다양했다. 치의대생인 클라우디아부터 IT 산업에서 일하는 디에고, 경영학 박사를 공부하고 있는 친구, 핸드폰을 파는 친구 등 누구 하나 같은 직종이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볼리비아 사람'이라는 공통점 하나 만으로 그곳에 주기적으로 모였다. 볼리비아에서 마시는 술을 챙겨 오고, 모든 음식에 뿌려 먹는다는 볼리비아산 향신료도 들고 왔다. 칠레에서는 인기가 없지만 볼리비아에선 모두가 먹고 마시는 거라 했다. 그들은 그렇게 산티아고에서 볼리비아를 떠올리고 있었다. 


바비큐 나르기

나는 궁금했다. 왜 그 큰 결심을 하고 본인들 나라를 떠나와 놓고 또다시 볼리비아 사람들과 어울리고, 볼리비아식으로 삶을 사는지. 왜 칠레에 적응할 생각을 안 하는지. 내가 본 이민자들과 이민 문화는 대부분 비슷했다. 친척들부터 친구들까지 예외는 없었다. 그리고 난 이게 늘 궁금했다. 




20대 나이로 미국을 간 이모, 이모부, 외삼촌, 외숙모, 고모, 고모부들은 두말할 것 없이 한국 사람들하고만 어울려 지냈다. 이렇게 살면 하루 종일 영어를 쓰지 않는 날도 있겠다, 싶었다. 종교가 없어도 한국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교회에 나갔다.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살았던 곳에 대한 관성도 많이 남아있고, 언어 장벽도 높고, 감정적으로도 많이 외로울 테니까. 


이해가 잘 안 가는 지점은 사촌들이었다. 그들은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과 비슷한 한국계 교포 2세들과만 어울려 지냈다. 이 지점을 이해할 수 있었던 건 스무 살이 지나서였다. 사촌들이 교포들과만 어울려 노는 이유는 '정서'가 비슷했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밤낮 구분 없이 열심히 일하는 이민자였고, 집에서는 무조건 한국어를 사용해 대화해야만 했다. 영어가 모국어인데도 불구하고 한국어를 잘 못하면 문제 되는 상황이 많이 발생했다. 부모님은 영어가 서투르니 - 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자식들이 한국어를 배워야 했다. 한국 음식을 먹으면서 자랐고, 한국의 예의범절도 배웠다. 자신들만 아니었음 한국에 돌아갔을 부모님의 희생을 보며 자라난 이들은 한국에 살고 있는 또래들보다 더한 압박과 부담, 외로움 같은 감정들을 느꼈다. 누군가는 부모의 기대 이상으로 자라났고, 또 다른 누군가는 정 반대로 자라났다. 하지만 그들을 이루는 정서의 뿌리는 같았다. 


자신들이 경험한 특유의 감정들을 온전히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은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한국계 미국인들 뿐이었다. 이민 1세 부모를 둔 2세대들에게 그건 생존하기 위해 내리는 선택 같아 보였다. 




그날 밤, 볼리비아 사람들이 산티아고의 한 아파트에 모여있다는 걸 칠레 사람들은 알고 있었을까? 아무 관심도 없지 않았을까?


"볼리비아 사람들은 칠레 어느 지역에 살고 있나요?"

"한국 사람들은 LA 어느 지역에 살고 있나요?"

"몽골 사람들은 한국 어느 지역에 살고 있나요?"


떠나온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떠나온 곳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리고 '만약'이라는 단어를 대화에서 많이 사용한다. '만약 볼리비아를 떠나지 않았다면…', '만약 내가 칠레 사람이었다면 …', '만약 그때 다른 선택을 내렸다면 …'등의 말들. 심리학에서 가장 불행해지기 쉬운 지름길이라 말하는 사고방식. 


내가 바꿀 수 없는 영역을 상상해 보는 일. 과거를 추억하는 일. 어리석다는 걸 알면서도 할 수 밖에 없는 일.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일. 그리고 그때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감정. 노스탤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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