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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팡동이 Jul 25. 2021

직접 가 보지 않는 이상 알 수 없잖아

산티아고, 칠레


어릴 때부터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이 있다.


"난 도시가 싫어. 이다음에 꼭 시골로 내려가 살 거야."


서울 친구들은 내가 시골에 사는 게 잘 어울린다고 했다. 반면 지방 친구들은 내가 시골과 잘 맞지 않을 거라 했다.


- 왜 안 어울려? 그런 한적하고 평화로운 삶이랑 내가 왜 안 어울려!

- 너 시골에서 살아본 적 있어?


맞다. 나는 도시를 떠나본 적 없는 사람이었다.




카르멘


부에노스 아이레스 이후 정말 오랜만에 도시로 돌아왔다.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도시의 냄새, 도시가 주는 에너지. 그리고 도시에 사는 사람들.


2011년 당시 남미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유럽인들이었다. 칠레 산티아고에서 만난 카르멘도 독일에서 온 친구였다. 스페인어권 이름을 가진 독일 사람.


카르멘은 남미를 여행한 뒤,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를 가는 친구였다.


산티아고의 호스텔. 큰 방에 투숙하는 사람은 카르멘과 나, 우리 둘 뿐이었다. 카르멘은 밤 문화를 좋아하는 친구가 아니었고, 나 역시 많이 지친 상태였기에 우리는 방 안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대부분 여행자들 간 대화가 그러하듯 이미 지나온 여정과 앞으로의 계획 같은 것들.


여행 중 만난 독일 사람들은 대체로 차분하고 따뜻했다. 그래서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카르멘 역시 정적이고 다정한 친구였다. 우리는 산티아고에 오래 머무를 예정인 만큼 스페인어 강좌를 알아봤다. 남미를 여행하는 사람들 사이엔 한 가지 특이한 문화가 있었다. 마음에 드는 도시를 만나면 그곳에서 스페인어 강좌를 듣는 것. 일단 가격이 비싸지 않았고, 2주 정도 들으면 아주 기본적인 스페인어 "여행" 회화는 가능했다.


브라질을 제외한 대부분의 남미 국가들이 스페인어를 사용하기도 했고, 언어 자체가 가지는 실용도나 중요도도 높았기 때문에 그런 코스들은 인기가 좋았다. 한번 배워 놓으면 여행 내내 써먹을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스페인어 강좌를 알아보러 다녔다. 아예 날을 잡고 움직인 날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 일정에 맞는 수업을 찾을 수는 없었다. 결국 우리는 기념품을 사고 산타루시아 언덕에 올랐다.


산타루시아 언덕 (산티아고, 칠레)


- 호주에 가서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할 거야.

- 호주가 그래픽 디자인으로 유명한 나라인 줄 몰랐어.

- 유명한가? 잘 모르겠어.

- 근데 왜 호주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하려 하는 거야?

- 난 늘 호주가 어떤 곳인지 궁금했고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해 보고 싶었어. 그러니 호주에 가서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하는 삶을 계획해 보는 거야.


내가 자란 문화에선 동기, 목적, 계획 같은 것들이 중요하다.


그걸 왜 하려고 하는데? 왜 굳이 거기까지 가야만 하는데? 충분히 알아봤어? 그러다 실패하면? 그다음 계획은 세워 놓았고?


작업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지원금을 한 번 받으려면 내가 이것에 대해 얼마만큼 많이 생각했는지, 이 돈을 왜 꼭 받아야 하는지, 받은 돈으로 어떤 결과물을 낼 것인지 등등을 빼곡히 적어 내야만 했다.




그냥 그러고 싶어


가장 본능에 충실한 말이었다.


- 가봤는데 마음에 들지 않으면?

- 그럼 돌아오면 되지!


카르멘이 웃으며 말했다. 카르멘의 그 말이 당시에는 굉장히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맞다. 카르멘은 호주에 가는 거지 돌아오지 못하는 어떤 곳으로 향하는 게 아니잖아?'


그런데  이런 생각도 들었다. '호주가 생각만큼 매력적인 곳이 아니라면? 그동안 들인 시간과 돈은?'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직접 실행에 옮겨 보지 않는 이상 평생   없는 것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르멘은 그렇게 호주로 떠났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가끔 카르멘 생각이 났다. 하지만 카르멘은 SNS를 없앤 상태여서 소식을 들을 길이 없었다.



카르멘에게 호주는 독일에서 상상하던 그 느낌 그대로 존재하는 나라였을까? 카르멘은 워킹 홀리데이를 하며 호주를 더 좋아하게 되었을까? 아니면 지긋지긋하다고 느껴져 뒤도 안 돌아보고 독일로 떠나왔을까.


 가지 분명한  - 자신이 호주와  맞는 사람인지 아닌지 직접 가봤으니   있었다는 . 그래픽 디자인도 배워 봐야 적성 맞는지 아닌지   있다는 . 모든 시도와 노력을  봤지만 '아니었구나' 생각이 들면 - 경험 값을 가지고 돌아오면 된다는 . 그리고 나에 대해 하나  알게 되었다고 웃으며 말하면 된다는 .


내가 카르멘을 통해 배운 건 아직도 내 삶에 유효한 큰 가치로 남아있다.


나무 아래서 기타를 고치는 남자 (산티아고, 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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