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팡동이 Jul 20. 2021

네루다 네루다 파블로 네루다

푸에르토 몬트, 칠레

  



- 난 파블로 네루다가 너무 좋아. 한때 내 꿈은 그의 고향 칠레로 날아가 그 자손들 중 하나와 결혼해 네루다라는 성을 내 이름 뒤에 붙이는 거였어. 그럼 네루다와 나 사이, 아무런 연결 고리가 없는 이 세계가 그와 나를 중심으로 둥글게 돌 것만 같았거든.

- 근데 너 그거 알아? 네루다는 필명이었어. 리카르도 네프탈리 레예스 바소알토라는 딱딱하고 정직한 느낌의 이름이 그의 본명이었지. 낭만을 노래하던 그에게 다소 어울리지 않는 느낌의 이름이라고 생각했어.


칠레를 가야 했던 이유에는 두 가지가 있었다. 먼저 2008년, LA에서 만난 헥토르와 클라우디아 커플. 그리고 파블로 네루다.  


지금도 네루다를 좋아하지만 - 20대 초반 네루다를 좋아하던 마음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칠레에 꼭 가야만 하는 이유도 분명했다.


파블로 네루다.




대부분의 남아메리카 작가들은 정치적 탄압을 피해 유럽이나 미국, 다른 남미 국가에서 사는 삶을 택했다. 타지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며 떠나온 곳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판타지로 가득한 남미의 이야기들은 읽을 때는 재밌고 신이 났지만 다 읽고 나면  마음이 한없이 가라앉았다.


식민 지배와 독재 정권, 마약, 가난, 그리고 내전 등. 내가 보고 느낀 남미는 스펀지 가득 눈물을 머금은 땅이 분명했다. 축축하고 무거웠다. 손가락으로 누를 때마다 눈물을 쏟아내는 것 같았다.


말이 되는 일들보다 말 안 되는 일들이 수백 배, 수 천배 많아 보였다. '상식'이라는 것은 사전에만 존재하는 단어일 뿐 -  삶 안에서는 보이지도, 통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특유의 아름다움이 발생하는 지점도 있었다. 지옥 같은 현실을 지옥처럼 살아내지 않는 사람들의 태도. 그 태도가 그러했다.   


'매직리얼리즘'이라는 말도 여기서 오지 않았나 싶다. 고되고 퍽퍽한 현실을 남미의 작가들은 있는 그대로 그려내지 않았다. 본질은 정확히 꿰뚫어 보되 유머와 낭만 그리고 마법을 추가시켰다. 이는 남미 사람들의 생활 방식과 동일했다. 웃을 일들은 끊임없이 생겨났다.


이 상황에서 이렇게 웃는다고?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무엇이 진심인지 헷갈렸다. 나중이 돼서 알게 된 사실은 둘은 굉장히 붙어있다는 것. 둘을 나누는 건 무의미하다는 것. 둘은 모두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는 것,이었다.


삶이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사람들은 춤을 추고 노래했다. 슬프면 슬플수록. 고통스러우면 고통스러울수록 더 크게 노래하고, 미친 듯이 춤을 췄다.


어떤 땅에서는 그것만이 유일하게 살아있을 수 있는 방법 같아 보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