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에르토 몬트, 칠레
여행을 다니다 보면 참 많은 동상과 조각상들을 보게 된다. 독립 영웅부터 역대 왕이나 대통령, 군인, 그리고 그 나라가 자랑하는 운동선수, 예술가들까지. 신화 속 주인공들이나 영화 속 인물들도 자주 보인다.
솔직히 말하면 난 이런 것들에 큰 관심이 없다. 이 인물이 누구인지, 무슨 일을 했는지, 만든 작가는 누구인지 따위를 크게 궁금해하지 않는다.
푸에르토 몬트의 바다를 바라보는 연인.
푸에르토 몬트를 여행할 때 이 조각상을 보러 몇 번씩 바다에 나갔다. 바다를 등 뒤에 두고 이들을 바라보는 게 참 좋았다. 보고 있으면 궁금한 점이 수 십 가지씩 생겨났다. 이들은 누구인지, 어떤 사연으로 이곳에 이렇게 앉아있는지. 촌스럽고 못 생긴 조각을 이토록 거대하게 만든 작가는 또 누구인지 너무너무 궁금해졌다. '사랑이 정말 이런 거라고?' 혼자 생각하며 웃었다.
그래서 사랑이 뭔데?
남자와 여자는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본다. 손을 잡고는 있지만 알 수 없는 우울과 슬픔, 분노까지 느껴진다. 떠나온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워하는 대상은 각자의 고향일 수도 있고, 서로에게 처음 품었던 마음일 수도 있고, 지나온 시절일 수도 있겠지. 어쨌거나 둘은 지금 굉장히 먼 곳까지 온 것 같다.
먼 곳까지 오게 된 연인은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구글링을 조금 해보니 작가에 대한 정보가 나왔다.
작가는 더 넓은 세상이 보고 싶어 최소한의 경비를 마련해 남미 여행을 떠난 사람이었다. 칠레 푸에르토 바라스에서 산티아고까지 히치하이킹을 했고, 볼리비아에서는 거의 죽을 뻔한 고비도 넘겼다. 라파즈에 위치한 병원에서 회복한 뒤, 그는 페루 쿠스코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한 에콰도르 여성을 만났다고 했다. 둘은 마추픽추를 함께 여행하고 리마(페루의 수도)와 키토(에콰도르의 수도)에 갔다. 작가는 (도시 때문인지 에콰도르 여성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키토에 더 머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오래 머물기 위해선 돈을 벌어야 했으므로 직업도 찾았다. 시멘트 다루는 일을 특히 잘했는데 - 그에겐 조각가 이후 두 번째 직업이 생긴 셈이었다.
2년 동안의 여행 후, 작가는 집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족들이 기다리는 곳이자 이 모든 여정의 출발점인- 푸에르토 바라스로.
여행에서 돌아온 작가는 이 작품을 만들었다. 쿠스코도, 키토도, 푸에르토 바라스도 아닌 - 푸에르토 몬트의 바닷가. 그곳에 연인의 형상을 한 거대한 조각을 세웠다.
작가의 여정 자체가 사랑에 대한 한 편의 시처럼 느껴졌다.
사랑은 언제나 강렬하고 아름다워야 된다고 생각해. 난 80살 노인이 돼서도 네 손을 잡고 설렐 자신이 있어.
다니엘이 종종 하던 말이다. 이상하게 이 말을 듣고 있으면 화가 났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당시 내 안에 커다란 불안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사랑'을 다르게 이해하고 있구나, 에서 오는 불안. 다니엘은 사랑을 행복하고 평화로운 감정으로만 이해하고 있었다. 사랑이 동시에 가져다주는 쓰림이나 불안, 분노, 무기력, 멜랑콜리한 감정들은 포용할 줄 모르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난 우리가 싸우는 게 너무 싫어.
꼭 헤어질 것만 같아 불안해져.
내게 싸움은 상대를 이해하는 방식이었다. 치열하게 싸운 뒤 '이젠 너를 이해할 수 있어'라고 말하는 것만이 진심이라 느껴졌다. 나머지는 다 위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갈등과 언쟁을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다니엘은 그걸 사랑이라 믿지 않았다.
반면 나는 다니엘이 하는 모든 표현들에 불안을 느꼈다. 얼마만큼 사랑하는지, 얼마만큼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는지 등에 대해 말해 줄 때마다 나는 되려 무서워졌다. '사랑이 쌉싸름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넌 나를 떠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일은 실제로 일어났다.
이별 후 할머니에게 '사랑'이란 것에 대해 묻고 싶어 졌다. 지인의 결혼식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랑의 결실이 결혼이면 - 결혼까지 가지 못한 세상의 모든 관계들은 결국 사랑이 아니었거나 실패한 사랑이라는 소리인가?
할머니에게 사랑은 할아버지였는지. 아니면 그전에 사랑하던 사람이 따로 있었는지. 결혼과 사랑은 별개인 건지. 내가 나중에 결혼하고 싶은 사람을 만나보면 이 차이점을 알게 되는지. 뭐 그런 것들을 묻고 싶었다.
동시에 수많은 사랑 영화들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평생 한 사람 만을 사랑한다거나, 죽어서 이뤄진다거나, 돌고 돌아 결국 만나고 마는 관계를 사랑이라 이야기하는 영화들. 결국 우리 모두는 그런 판타지 아래 사랑을 '교육'받은 거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들 위대하고 고결한 어떤 가치를 사랑이라 믿으며 손에 쥐고 싶어 했다. 결혼으로, 죽음으로, 운명으로.
사랑은 그런 게 아니야!
이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사랑의 본질이 다른 지점에 있다고 믿는다. 사랑의 위대함은 예쁘고 아름답고 영원한 데서 오는 게 아니라 그 모든 것들 곁에 존재하는 슬프고 두렵고 씁쓸한 감정, 그리고 유한한 시간- 그 안에 존재한다. 사랑은 꿈이 아닌 현실 속에 살아 숨 쉬는 것이므로. 생명력을 가진 것들의 숙명은 결국 죽음과 이별이므로.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에는 거기에 있으므로.
다시,
울적하고 못생긴 조각을 보며 사랑을 떠올리는 일.
며칠 전, 사진을 보며 이제 내게 남아있는 일은 이런 것들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생각보다 기분이 괜찮았다. 웃음도 났다. 한 가지 궁금증도 생겼다.
그날 밤, 귀갓길에 못 참고 할머니에게 전화해 물어봤다면 명쾌한 답을 내려 주셨을까? 아니면 펑펑 우는 나를 그저 기다려 주셨을까. 갑자기 할머니는 내게 무슨 말을 해줬을까, 궁금해졌다.
그러다 할머니의 부채질이 떠올랐다. 오래전 - 어린 손녀딸에게 할머니가 해 주던 부채질. 무서운 꿈을 꾸거나 밖에서 다치고 돌아오는 날이면 할머니는 나를 무릎에 눕혀 놓고 부채질을 해주셨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슬픈 일이 뭐였는지 금방 까먹을 수 있었다. 할머니 집에 아이스크림이나 사이다가 있는지 물어봤다. 그냥 그거면 됐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울적하고 못생긴 조각상을 보는데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내 안에 풀리지 않았던 질문이나 감정들도 그렇게 위로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 그거면 됐지.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