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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ymilk Apr 28. 2016

디톡스 3일 체험기

남는 것은 무엇인가. 먹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회사 동료의 권유로 디톡스를 3일간 해보기로 했다. 여름도 슬슬 다가오는데 다이어트, 해독, 건강 모두 탐나는 아이디어이지 않은가! 3일동안 하루 6병, 하루 3시간 간격으로 주스를 꾸준히 마시는 프로그램이다. 다행히 회사 근처에 매일 착즙해서 배달해주는 곳이 있어 야심차게 도전해 보았다. 참고로 나는 사회생활 5년차인 평범한 직장인이며, 디톡스를 해본 경험은 없다. 술담배는 하지 않지만 평소에 과식과 특히 육식을 즐긴다. 유산소운동? 지하철에서 계단 오르는 게 전부다. 산책? 싫어한다. 그동안 아프리카 출장은 패기로 다녔다고 봐도 무방하다 ^^; 암튼, 별 생각 없이 도전한 디톡스 체험기가 궁금하다면 내 글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당근, 사과, 파프리카, 레몬이 들어가는 오전7시 주스. 몸도 기분도 업!


Day 1 .<괜찮아요 많.이.놀.랐.죠.?>


7:00am 의욕이 넘쳐! 그런데 몸이 무겁다..

평소 아침식사를 주스나 과일로 해왔기에 별 무리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복병은 '노 커피'에 있었다. 디톡스 기간에는 모든 씹는 음식을 비롯, 과일과 커피도 마실 수 없다. 위를 쉬게 해주고, 몸의 자생능력을 되찾자는 것이 취지이기 때문이다. 오전부터 커피를 안마셔서인지 머리가 멍하고, 의욕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12:00pm 나는 난데 내가 아니야

이상행동 몇 가지가 나타났다. 점심시간에 서점에 들렀다가 보던 책을 계산을 하지 않고 실수로 들고 나오고, 단어 몇 개를 틀리게 말하기도 했다. 다행히 이날 업무는 많지 않았지만, 수다스럽던 내 입은 왜인지 무겁게 닫혀있었다. 밤을 샌 다음날처럼, 몹시 피곤할 때 나오는 실없는 웃음이 실실 흘렀다.


3:00pm 먹방은 제발 그만해요
나는 내가 하루에 그렇게 수많은 '먹방'과 접하는지 몰랐다. 중간 중간에 체크하는 sns(특히 인스타그램은 시간대와 상관없이 사람들이 어제 저녁으로 먹었던 것, 여행가서 먹은 것, 오후 간식, 다음에 같이 먹으러 가자는 해시태그 등... 24시간 푸드 포르노그라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TV프로그램 광고 등에서 접하는 '음식' 의 유혹이 너무나 괴로웠다. 또 우리세대 문화는 얼마나 먹는 것을 권하고 찬양하는가. 탄자니아 출장 준비로 세계테마기행 탄자니아 편을 보고 있었는데, 그곳에도 야시장에서 피자 구워먹는 씬이 있었다. 으악! 밥도 못 먹고, 커피도 못 마신 오후 1-4시가 가장 힘들었다.


오후 네시가 되자 디톡스가 끝나면 먹고 싶은 것을 적기 시작했다. 탕수육, 한우 같은 건 아예 넘볼 수 없었는지 펜이 지나간 자리에는 다소 소심한 메모가 남겨져 있었다.

[참크래커 에이스 맥스봉 소세지 피타칩 집에있는 구아카몰리칩 커피한모금 그중에 가장먹고싶은건 컵라면...]


6:00pm 드디어 퇴근이다!

디톡스는 디톡스라도 퇴근은 퇴근, 하루종일 디톡스주스와 함께 온 차를 마셔서 그런지 엄청 배가 고프기보다는 배를 깨끗이 비워 낸 느낌이었다. 눈밑떨림 현상이 잠시 있었지만 정신승리했다는 자부심과 함께 (저녁약속도 없는 겸)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250ml, 400ml 중에 선택할 수 있었다. 나는 작은 사이즈로 하고 점심 한 끼 정도는 먹으려는 심산(?)이었으나, 첫날은 무사히 해냈다! (출처: 힐링포션)


Day 2. <느리게 가는 하루>


일찍 잤는데도 불구하고 알람과 동시에 눈을 떴다. 몸이 살짝 일어나기 힘들 정도로 무겁게 느껴졌지만, 몸무게를 재어 보니 2키로가 빠져있었다. 그것도 하루만에!!!! 음... 내가 하루에 2kg만큼이나 밥을 먹는 사람이었던가, 잠시 반성이 밀려왔다. 피부를 살펴보았는데 체중이 급격히 감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딱히 푸석해지지는 않았다. 에너지레벨도 일어나 활동하니 되찾았다. 성과를 눈으로 보고 나니 꼭 성공하리라!!! 파이팅을 되새겼다.


색색깔의 주스 때문인지 화장실 갈 때마다 호기심에 꼭꼭 체크를 했는데, 소변이나 대변 색깔이 평소와 다르지는 않더라. (?) 꼭 초록색 주스를 마시면 약간 초록빛일 것 같았는데...


2:30pm 밀가루 금단현상
오전은 회의로 어찌어찌 평화롭게 지나갔으나 오후부터 미친듯이 허기가 졌다. 특히 외근 때문에 2번 주스를 마시지 못해서 사무실에 돌아와서 2,3을 천천히 마셨다. 과자, 빵, 밀가루가 넘나 땡겼다. 음식을 씹어삼키는 그 쾌감이 그리웠다. 커피 안마시는 건 이제 괜찮았다. 오전에 주스를 못 챙겨가서 탄산수 (라임맛)를 마셨는데, 그에 자극된 혀 때문인지 주스가 한층 더 맛없게 느껴졌다. 옆팀 동료가 김밥을 사들고 들어왔는데 딱!!!! 한개만 먹고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어머 너무 맛있겠따! ㅠㅠ 케일, 샐러리가 잔뜩 들어간 2번 주스와 파인애플로 맛을 낸 3번 주스.


다이어트나 금연할 때도 마찬가지겠지만, 생활의 변화를 주려고 할 때 수반되는 것 중에 하나는 그것을 주변에 알리고 설명하는 일이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디톡스가 뭔지는 알지만 뭐에 좋거나 왜하는지 잘 몰랐다. 각종 간식, 점심, 저녁 약속을 '저 3일동안 주스만 마셔요'로 거절하자 도대체 왜냐는 되물음이 많았다. 간헐적 단식이라는 책도 있었는데... 음식을 못 먹는다는 동정을 받기도 했다. 나의 이모는 암을 단식과 유기농식, 명상으로 극복한 '단식 수혜자'다. (유방암 3기 진단, 수술 후 2~3년 동안 단식과 수련을 통해 현재 완치 상태) 나는 한번쯤 해볼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람들은 쉽게 수긍하지 않았다. 밥을 안 먹으면 일을 못하고, 오히려 신경이 예민해져 화를 돋군단다. 나도 시작하기 전에 그렇게 생각하긴 했지만, 막상 해보니 그닥 예민해지는 것 같지는 않았다. 외려 힘이 빠져 실실 웃고, 몸이 가벼워져 경쾌한 기분이었다. 해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것 아닐까.


하지만 식탐은 끈질겼다. 계속해서 먹고 싶은 음식들이 눈앞에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누가 하라고 한 것도 아닌데 굳이 끝까지 해야할까 싶었다. 주스가 비싼 것만 아니었다면 금방 포기했을수도 있다. 한병에 7500원쯤 하는데 포기하기엔 너무나 아까웠다. 처음엔 점심정도는 먹으면서 가볍게 하려고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잘하고 싶어졌다.


둘째날도 겨우 성공! 이번에 알게 된 코코넛 주스인데, 아프리카 현지에서 먹는 것 만큼은 아니지만 꽤나 맛있었다.


Day 3. <한없이 다운되는 하루>


드디어 대망의 마지막날! 날씨도 꾸리꾸리했지만 기분이 너무나 저조하고 우울함이 밀려왔다. 의욕도 없고 무감각해졌다. 먹던 것 또 먹는 것도 지겨워졌다. 마음은 울적하고 한없이 심술이 난 상태였다. 먹지를 못하니까 사람을 못 만나고, 사람을 못 만나니 외롭고 따분해졌다. 전날 저녁은 차 약속으로 만나 즐거운 수다를 떨었지만, 뭔가 맛있는 것을 같이 꾸역꾸역 쑤시고, 부른 배를 두들기며 느끼는 강한 동지애가 그리웠다. 먹는 다는 것, 얼마나 우리 일상에 큰 부분인가. 반대로 또 우리는 얼마나 아무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task를 처리하듯 식사를 하고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제3자의 눈으로 보게 되니 약속을 잡고, 메뉴를 고르고, 사진을 찍고, 기억하는 그 일련의 과정이 하나의 sophisticated art이면서 동시에 얼마나 사치스러운 일인가 싶더라. 씁쓸함을 느끼며 나의 디톡스는 이렇게 끝이 났다.


아무리 혼밥, 혼술이 점점 일상화 되어간다지만 식사를 한다는 것은 단순히 먹는 것 그 이상임이 분명함을 이번 디톡스 체험을 통해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혼자든 둘이든, 밥을 먹으면서 배를 채우는 그 이상의 보상을 느끼는 것이다. 같이 운동하고 굶는 것도 함께 먹고 마시는 것처럼 일상화 되면 얼마나 좋을까? 꼭 트레이너 같은 몸매가 아니어도 공원에 나가 한바퀴 뛰고, 스판덱스 입지 않아도 자전거를 함께 탈 수 있다면. '건강한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는 것이 좀더 경제적으로 부담 없고 도전하기에 벽이 낮아진다면 하는 생각이다. it was nice detoxing for three days.


비웠으니 채워야지. soulfood인 햄버거로 3일차 저녁을 마무으리! 물론, 조금씩 일상생활로 돌아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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