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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ymilk Jun 06. 2016

가족채팅방 알림을 켰다

가깝지만 멀리있는 그들에게 좀더 관심을.

우리집은 그렇게 서로를 살뜰히 챙기고 정이 넘치는 가족은 아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단 한번도 '집에 몇시까지 들어와!'는 얘기는 부모님으로부터 듣지 못했다. 오히려 어린 마음에 서운한 내가 슬금슬금 일찍 알아서 들어오는 편이었다.


고등학교 때 혼자 유학을 떠났을 때도, 가족과는 한 달에 한번 통화로 생사를 확인하는 것이 전부였다. 마침 동네에는 나처럼 유학을 온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네는 부모님이 집전화를 깔아놓고 매일 현지 시각 밤 9시에 맞추어 전화가 왔었다. 전화 안 받으면 난리나고, 근처 사는 외삼촌이 출동할 태세가 늘 갖춰져있었다. 저런 관심이 숨막히겠다 싶으면서도 내심 부모님 걱정을 온몸에 티나게 받는 것이 부럽기도 했다.


어른이 되어 그래도 서로 어디서 뭐한다 쯤은 알려줍시다, 라고 구두로 언약한 우리가족은 그룹채팅방을 만들어 오늘 저녁은 집에서 먹을 건지, 택배가 곧 오는데 누가 집에 있는지, 다음달 집안 행사는 참석 가능한지 등등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대체로 'ㅇㅇ'과 'ㄴㄴ'가 오고가는 단답식 대화속에, '덜 중요한 방'이 된 그 방 알림은 꺼놓게 되었다. 업무 중에 자꾸 알림이 울리면 불편해서였다.


어쩌다 쓰는 방이었지만 뭘 물어도 바로 답이 안오기에 점점 대화는 줄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엄마랑 있는데 엄마 핸드폰으로 카톡이 줄줄이 오는 소리가 났다. "뭔일이야?" 라고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엄마에게 물었는데, 알고보니 밖에서 동생이 지 급한 일로 여러차례 보낸 거였다. 별 내용도 아니었는데 엄마는 아들이 보냈다고 신나하는 게 너무 티가 났다. 반면에 조용한 내폰이 슬그머니 미안해진 나는 그때부터 알림을 켰다. 그리고 곧 '시원찮은'일에도 열성적으로 답하기 시작했다. 그렇게라도 이야기하지 않으면, 가족끼리 대화하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재미없는 회사 방 카톡에는 각종 이모티콘으로 리액션 도배를 해놓으면서, 가족들이 보낸 톡으로는 시종일관 단답만, 용건만 간단히 이야기하는 게 잘못되었지 싶었다. 어디선가 읽은 재미난 짤도 보내고, 줌마스럽지만 따뜻한 글귀나 사진도 보내봤다. 고양이를 키우는 우리가족이기에 귀여운 고양이 에피소드나 사진도 보내면서 함께 웃기를 호소했다. 별 반응은 없었지만 어디선가 흐뭇하게 번지고 있을 미소를 생각하니 좋아서 열심히 퍼다 날랐다.


그로부터 얼마 뒤, 어머니 생신이었다. 나는 손편지를 적어 그리 비싸지는 않은 선물과 함께 전달했다.


그리고 카톡으로 답장을 받았다.


엄마와의 실시간 대화. 내게는 낯선 일이면서 장족의 발전이었다!


올해 초 은퇴하신 어머니께서, 갑자기 몰아닥친 자유시간에 방황하고 우울해하지 마시라고, 대신 당신 인생에 찾아온 삶의 2막을 온전히 만끽하시라고 인어공주가 그려져있는 카드를 골랐었더랬다. (눈이 안좋으시니까 글씨 크게 썼다고 생색도 냈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는 당신의 톡에도 가족채팅방이 있다면, 그리고 그 방 알림이 꺼져있다면,


한번 켜보고, 열심히 업무정신(?)을 십분 발휘해 친목질을 해보는 것을 권한다. 하루종일 따로 떨어져 바삐 살기에 가족들이 어떤 하루 일과를 보내는지, 어떤 재미나는 것을 보며 지내는지, 혹시 힘든 하루를 보내고 있을지, 우리는 잘 알지 못할수도 있다.


우리가족을 하나로 묶어주는 고양이 '찡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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