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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ymilk Jun 19. 2016

나는 故유재일의 딸이다

아빠, 보고싶어요.

동생의 생일이었기도 한 오늘은 공교롭게도 미국에서는 아버지의 날Father's Day이다. (6월의 셋째 일요일) 우리가족은 다같이 점심식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전봇대 줄이 얼기설기 하늘을 어지럽히는 동네 어귀엔 그냥 지나치기 힘든 유명 빵집이 하나 있다. 나는 활짝 열린 문을 통해 퍼지는 그 달콤하고 부드러운 냄새를 맡는 것을 좋아한다. 빵 냄새는 왠지 사람을 너그러워지고 행복해지게 한달까? 오늘도 평소와 다름없이 천천히 숨을 쉬며 걸어오는데, 그 빵집문턱에서 빵을 한봉지 가득 사들고 나오는 중년 남성이 내 눈에 들어왔다.




나보다 한 세 걸음 차이로 앞서서 걷는 그와의 어정쩡한 거리 차이만 아니었다면, 아마 별 신경은 쓰지 않았을 거다. 대신, 지나칠 수도 없는 비좁은 길 탓에 나는 그를 찬찬히 살피며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고 걸어야 했다. 대한민국 평균 중년 남성 체격이 그렇듯, 동그란 머리통에 살짝 앞으로 구부러진 목과 어깨, 양쪽 끝이 닳은 구두와 그리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걸음으로 걷는 뒷모습이었다.



나와는 아무 상관 없는 이 장면은

주말마다 빵을 한 봉지씩 사오시던 아빠 모습이 오버랩 되며 입가에 쓴웃음을 번지게 했다.




어쩌면 아빠는, 기분 좋은 빵 굽는 냄새에 용기내어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삶은 지나가지만, 기억은 매개체를 통해 살아있는 것만 같다.




삶은 긴 이별의 과정이라고 누가 그랬던가.


언제부턴가 사람이든, 장소든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반복되며 익숙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누군갈 만난다는 것이 기대된다면

우리 몸속에 아픈 이별들을 반드시 이겨낼 수 있는 DNA가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바닥까지 기운이 쳐지고 힘든 날, 포기하고 싶어질 때, 내가 세상 못난 루저 같아서 꼼짝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을 때


조용히 되뇌어본다.


나는 우리아빠의 자랑스런 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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