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ymilk Jul 12. 2016

좀 더 느리게, 감사하며 살아요

중남미 작은나라 과테말라 출장기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를 잇는 작은 허리 안에 안티구아Antigua 커피로 유명한 과테말라Guatemala 가 있다.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동부에서 같이 지냈던 룸메이트가 과테말라에서 온 애였는데 그녀의 핸드폰은 수 시간이 멀다하고 삐삐거리곤 했다. 알고보니 과테말라에 지진이 나면 알림이 오는 것이었다. 그 생각이 나서 가기 전부터 나도 지진앱을 깔고 지켜보았는데, 크고 작은 지진이 연안에서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거기다 지카 바이러스 유행국 중 하나로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는 상황. 만반의 준비를 하고 비행기에 몸을 실으며 처음 가보는 중남미는 어떨까, 몹시 설레었다.


영국은 EU를, 나는 한국을 잠시 떠났다. 나를 잊지 말아줘...




미국 아틀란타 공항에서 애매하게 8시간쯤을 경유하고 세시간 반 더 날아 도착한 과테말라의 첫 인상은 놀랍게도 미국과 크게 다름 없는 생활 수준이라는 거였다. 수도인 과테말라시티Guatemala City에서는 잘 닦인 도로와 높은 건물들, 외제차의 행렬이 이어졌고 도미노피자, 할리데이인 등 미국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풍경이 펼쳐졌다. 아동 노동, 조혼 등에 대한 공부를 하며 왔는데, '여긴 그냥 미국이네'라는 생각이 들 정도... 차로 네 시간을 달려 도착한 온두라스 국경 접경지역 치키물라Chiquimula 에도 마트와 영화관을 갖춘 '몰'이 있었다. 물가도 한국과 비슷해 저녁 한끼에 9천원, 음료가 5천원 정도. 아프리카에서 쫄쫄 굶고 어딜가나 열악한 상황이던 '절대적 빈곤'만 보다가 부패한 정부, 빈부 격차 문제, 기후 변화 등으로 인한 '상대적 빈곤'의 현실을 이해하는 데는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왼) 우리가 묵었던 숙소에는 한 방에 에어컨, 티비, 싱글침대 두 개, 화장실까지 딸려있다. 숙박비는 하루 30불 정도, 현지 집 월세 수준이다.

(오른) 호코탄Jocotan 시내로 나가 골목을 달리다보면 마을 바로 옆 쓰레기단지가 구성되어 있고, 음식물 쓰레기를 주워먹는 소들과 페트병을 주워 생계를 잇는 사람들이 뒤엉킨 모습을 볼 수 있다.

호코탄 시내 상권.


겉보기에 과테말라가 '의외로' 미국스럽다면 사람들은 '역시나' 남미사람들 답다. (*지리상으로는 미국,캐나다,멕시코가 북미, 엘 살바도르 등 작은 나라들이 중미, 브라질 밑으로 남미 이지만 경제수준, 언어/문화권 등을 고려해 '미국 밑으로' 라틴아메리카를 '남미'라고 썼다.) 사람들은 유난히 여유롭고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 대부분 6-7시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고 오후 세네시면 일과를 끝내고 쉰다. 농업 국가의 특징이 그렇듯 대형 농장을 소유하고 있지 않는 한 안정적인 수입원이란 없다. 커피 수확 시기인 11월~2월을 제외하고는 소소한 일거리를 찾아 하루 먹을 걸 마련해 하루를 사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도 휴식은 이 나라 사람들에게 당연하고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스페인 등 일부 유럽국가에서 갖는 시에스타 (오후 낮잠시간)는 없지만, 일찍 일을 끝내고 돌아와 가족들과 뽀뽀를 나누고 쉬는 시간을 갖는다.


나무를 옮기는 일을 끝내고 아들들과 음료수 한잔의 여유를 즐기는 스테파노 씨.


또한 남미 사람 하면 생각나는 것이 격정적인 허그와 스킨십, 활발함, 열정적, 춤 등인데 유난히 감정표현에 적극적이고 풍부한 이분들의 표정과 몸짓은 TV만 틀어도 알 수 있다. 한국의 아침연속극, 얼마 전 내린 '눈썹 신공들의 영화' 미 비포 유 (Me Before You) 저리가라 할 정도로 과장된 표정연기와 대담한 스토리전개로 요약될 수 있는 드라마 '텔레노벨라telenovela'가 그것이다. 감정에 충실하고, 타인의 감정에 너그러우며 순간을 아낌없이 표현하는 것... 삶을 좀더 사랑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아닐까.


드라마틱한 배경음악, 과한 클로즈업, 대담한 전개... 우리나라에 '드라마'가 있다면 남미에는 '텔레노벨라'가 있다.


이야기가 좀 샜지만 다시 본업(?)으로 돌아와서, 과테말라의 삶의 질에 대해 얘기하자면 앞서 미국과 매우 흡사한 풍경이라는 언급을 했는데 한가지 다른 점이 시야에 산이 들어오는 것. 과테말라는 환태평양 나라로 국토의 70%가 산이다. 작은 나라에서 경작할 땅이 적다는 것은 그만큼 먹을 것이 부족하다는 얘기가 된다.


언뜻 보기엔 행복하고 즐거운 세상 같지만, 과테말라는 만성적 영양실조를 앓고 있다. 어렸을 때 균형잡힌 식사를 하지 못하고 또띠아와 검은콩만 먹고 자란 아이들은, 비만이 일찍 오거나 뇌가 제대로 발달하지 못해 반응이 느리고 이해력이 얕다.  "갖고 싶은 것 없어?" "...잘 모르겠어요."


푸르지만 경작할 것이 없는... 과테말라에는 비가 필요하다.


현지 기온은 25~36도. 높은 습도를 고려하면 체감온도는 40도쯤 되는 것 같다. 적도 근접국의 위엄! 에어컨 없이는 아무것도 못할 것 같지만 하루종일 일을 해야해도 불평 한 번 해본적 없는 사람들. 눈만 마주쳐도 꺄르륵대고, 말을 걸면 수줍어서 몸을 배배 꼬기도 하고 도망가는 순수한 아이들. 처음 만난 남미 사람들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그리고..

어쩌면 행복이란, 삶의 파도를 느리게 탈 줄 아는 여유를 갖고 감사의 마음으로 순간순간을 살아갈 때 아침을 나서는 집 문턱 앞에 와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 - 카페에서 쉬어가기, 이색 교통수단 타기, 구름 지나가는 것 쳐다보기... 모두 감사하고 행복한 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