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묘 키우기 9년 차의 관찰일기
Ep 01. 안녕 찡찡아?
그 녀석이 우리 집으로, 정확히 내가 미국 오리건 주에서 대학을 다닐 때 자취하던 집으로 오게 된 것은 2008년의 일이었다. 친구가 이웃집에서 새끼를 많이 쳤다면서 고양이 한 마리를 얻어다 주었다. 아주 까맣고 이뻤다. 그리고 쉴 새 없이 야옹거렸다. 나는 난생처음 고양이 목욕이란 것도 시켜주고 발톱도 깎아주며 정성스레 길렀다. 고양이는 넓디넓은 집에서 잘 곳도 많은데 이틀이 지나서부터는 내 침대 위에 올라와 발치에서 웅크려 자기 시작했다. 그렇게 미국 어느 시골집에서 태어난 고양이는 한국인 대학생 주인을 만나 '찡찡이'가 되어 갔다.
Ep 02. Ignorance is bliss
그 녀석은 여간해선 잘 아프지 않았고 쑥쑥 컸다. 대신 밤이 되어서야 돌아오는 주인을 카펫으로 된 계단에서 혼자 오래도록 기다렸다. 병원에 갔었던 건 딱 한번, 6개월이 되어 중성화 수술을 받을 때였다. 무지는 최고의 행복이라 했던가, 망각의 동물은 며칠 아파했지만 다시 정상생활을 되찾았다. 내가 본인의 운명을 평생 (?) 바꾸어 놓았다는 것을 알까. 때문인지 유아처럼 늘, 오직 인생의 즐거움은 먹는 것으로만 알고 산다.
Ep 03. 생애 첫 비행기를 타다
바야흐로 2010년 3월, 서부에 있는 대학을 졸업하고 동부에 인턴십을 하러 가게 되었다. 이민가방 두 개와 고양이 케이지 하나를 들고 워싱턴 디씨로 가는 알래스카 항공 비행기를 탔다. 대학생활이 끝나고 사회생활로 첫 발걸음을 내디뎠던 날, 우리는 돌아갈 수 없는 집으로부터 비행기로 6시간 떨어진 공항에 내렸다. 아주아주 낯선 집에서 두려움 반, 기대 반으로 잠을 잤다. 집이 아닌 곳에서 처음 자는데 녀석은 귀찮게 밤새 울지도, 배변을 아무 데나 하지도 않았다. 공기가 낯설었을 테지만, 집이 그리웠을 테지만 우리는 서로 의지하며 새로운 도시에 적응해 갔다.
Ep 04. 낯선 나라 한국에 왔어요
그리고 다시 1년 뒤. 미국에서의 생활이 끝나고 이젠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 찡찡에게는 낯선 나라였고, 너무너무 먼 나라였다. 워싱턴에서 인천까지 직항은 약 16시간. 이미 다 정리하고 닫은 은행 계좌 때문에 마일리지로 동물 운반에 대한 비용을 치르고 짐칸에 찡찡이를 실어 보낼 때, 긴 비행을 견디지 못해 생길 수 있는 최악의 경우까지도 생각했었다. 엄마는 극구 두고 오라고, 누구 주고 오라고 했지만 찡찡이는 내 가족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엄마가 우리 집에서 찡찡이를 젤로 아낀다. 오리건처럼 창 밖을 내다보면 버드나무가 있지도, 워싱턴처럼 룸메이트의 개가 귀찮게 쫓아다니지도 않는 이곳. 고층아파트 생활에 잘 적응하려나 했던 내 걱정을 비웃듯, 녀석은 오히려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을 즐기는 듯 보인다.
Ep 05. 그냥 다 됐고, 잠이 최고야.
고양이랑 산 지 어언 9년, 조금씩 닮아가는 면 중에 하나는 잠을 사랑한다는 거다. 스트레스를 받아도, 우울해도, 주말 오후에도 우리는 잠을 잔다. '귀찮다'는 말이 얼마나 무섭고 모든 것을 무기력화하는 말인지 알지만, 잠이 주는 그 꿀맛은 너무나 달콤하다. 이제는 늙어서 하루에 반 이상은 자는 것 같은 찡찡이. 개처럼 산책을 할 수도, 앉아! 라며 훈련을 시킬 수도 없지만 동등하고 도도한 우리 관계가 나는 여전히 좋다. 사랑해 찡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