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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ymilk Dec 16. 2015

나는 컨설턴트였다

악착같이 버티고 전의를 불태우던 그 치열한 날들이여.



지금은 '생명을 살리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거창한 NGO업계에서 마치 썰물이 빠져나간 해변에 널려있는 수만개의 불가사리 중 하나 같은 미약한 존재로 살아가고 있지만, 올해 초까지 내 명함에는 컨설턴트라고 적혀있었다. 컨설팅에도 많은 종류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언론컨설팅, 소위 Pulblic Relations라고 하는 분야에서 2년간 전투적으로 일했었다. 하루 평균 12-15시간 근무, 크리스마스 날도, 12월의 마지막 날에도 나는 일했다. 가족과 친구들은 뜨악했다. 그딴 회사가 다 있냐며 욕했다. 하지만 언론/방송업계에서는 빨간 날이 큰 의미를 지니지 않았다. 심할 때는 3일에 10시간 뿐이 못 자는 일이 놀랍지도 않게 찾아오긴 했지만, 그 업계도 적응하고 보니 그러려니 됐었더랬다. 그때는 사원증이 생명줄처럼 느껴졌고, 온갖 폭언과 모욕을 참아내느라 온몸이 부들부들 떨릴때에도 희한하게 전력을 다해 메모리를 매일 아침 리셋시키며 끈기있는 생명의 귀감이 되고자 했었다. 늘 눈치를 봤고, 모든 일은 손에 들어오는 대로 숨도 못쉬고 ASAP로 처리했으며, 이메일 하나를 쓸 때에도 받는 사람이 1)질문이 없게끔 포괄적으로, 그러나 2) 시간을 많이 뺏으면 안되니 짧고 빠르게 쓰는 것이 습관이 되어야 했다. 아침 7시반에 출근하면 40분동안 종합일간지 3개, 경제지 2개, 영자지 3개를 빠르게 스캔해 필요한 기사를 뽑아냈으며 분기별 언론활동 리포트, 보도자료, 기자간담회 등 각종 일과 일 사이에 치이며 사투를 벌이고 퇴근하면 집으로 달려가 잠자기 바빴다.


그런 생활을 버티는 방법은 보통 격한 음주 또는 미친 먹방 혹은 둘 다다. 백화점에 가서 쇼핑을 하거나 비싼 휴가를 다녀오는 방법은 시간적으로 물리적으로 너무 귀찮고 불가능했다. 왜 그런 회사에 들어갔냐고 묻는 이들도 있었다. 장기적이고 거창한 목표는 없었다. 그냥 이십대 때 한번 치열하게 살아보고 싶었다. 그리고 연봉이 높았다.


일은 그저 그랬다. 보람 있을 때도 있었고, 정말 진저리 날 때도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회사에 닮고 싶은 선배가 하나도 없었다. 그때부터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내 3년 뒤, 5년 뒤 모습이 저건데... 그걸 뛰어넘거나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기엔 나는 점점 몽당연필처럼 닳아가고 있었다. 단순히 일만 많이 하는 게 아니라, 삶에 다른 걸 채울 시간도 에너지도 없었다. 취미도, 친구도, 가족도, 영화도, 음악도, 아무것도. 그냥 회사 집 회사 집. 그렇게 2년을 지나보내고 정이 뚝 떨어져 단박에 퇴사해버렸다.


모르긴 몰라도 나는 그 시간을 군대에 다녀온 시간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곳을 졸업하고 나니, 세상 못할 게 없는 느낌이었다. 나의 순수한 영혼은 그곳에서 서서히 죽어간 것이 분명하고 지금도 어떤 에피소드들은 피를 거꾸로 솟게 하고 자려다가도 이불킥을 날리게 하지만 후대에까지 전설처럼 전해질 것은 확실하다. 6개월 후에 NGO로 이직하고 180도 다른 모습의 삶을 살고 있다. (언제부터 회사가 이렇게 인간적이었나?사람들이 엘레베이터에서 인사를 한다.) 그 때의 나는 완전히 없던 것처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는 않다. 아마 그 강렬한 경험은 평생 DNA에 일부 저장되었을 게 분명하다. 그 아침마다 반복되던 루틴도 몸에 배어있다. 외국계 금융권 회사들이 주요 고객이었기에 지금도 나는 경제지 증권면을 가끔 본다. 은행 금리나 부동산, 대기업 관련 소식이나 정치권 소식도 남일 같지 않다. 막상 지금 일하는 곳에서 이런 것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한마디로 대부분의 그들과 내가 구별되는 점이 바로 내가 지나온 길 때문이다. 그때는 내가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할 것이라 전혀 생각치 못했다. 막연한 동경 뿐이었다.


하지만 단 한가지 꼭 알고 있었던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모든 것은 과정이며 지나간다는 것이었다.


사람도, 일도, 그 지긋지긋한 야근들도.


'일'에 대해 너무 많이 생각하기 시작하면 더 이상 '나'는 보이지 않게 된다. '일'은 '나'를 궁극적으로 이루고 싶은 꿈에 다다르게 해주기 위해 존재해야 하는 것인데, '내'가 '일'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되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일'은 지나간다. 어떤 상황이 와도, '나'는 '나'다.



지금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지 우리의 시야 밖에는 심하게 세분화되어 있고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세상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다만 그 많은 일들 중에 지금 이 일을 하게 되었으니 그 누구보다 치열하고 진정성 있게 매진하는 것이 맞는것 같다. 대체 불가능한, 나만의 방식과 나만의 색깔로. 지나가는 시간이기에 더욱 화려한 색깔로 칠하고 싶다. 삶의 모든 순간은, 딱 한번 뿐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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