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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작은 순간과 사소한 것들

by 담은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것들.

평범하게 살아야 할 때 필요한 것들.

집, 차, 돈, 예쁜 외모, 좋은 옷, 뛰어난 재능, 여유로운 삶.

그런 것들은 나와는 먼 것들이었다.

20년을 맞벌이하며 열심히 살아도 나아지지 않는 집안 형편,

시간에 쫓겨 돌보지 못해 망가진 몸매, 출근용으로 무난한 싸구려 옷,

무능하고 숨 쉴 틈 없이 바쁜 삶이 내겐 전부였다.


언제나 부족하다고 느껴 결핍을 메우기 위해서

허덕이며 내 삶과 싸우며 살았다.

남들보다 뛰어난 무언가를 갖기 위해 투쟁했지만,

결국 남은 건 허무함과 무능력함뿐이었다.


어느 날 아침, 막내를 등원시키다가

넘어져발뼈가 부러져 수술을 해야 했다.

수술 후 침대에 누워 하얀 천장을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지자,

나는 내 삶에서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순간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아침에 눈을 떠 창가를 바라보며 느꼈던 따뜻한 햇살.

커튼 사이로 스며든 햇빛이 눈꺼풀 위에서 살며시 내려앉던 감촉.

그 햇살 아래에서 마시던 한 잔의 커피가 유난히 그리웠다.

코끝을 간지럽히던 고소한 커피 향과 입술을 타고

흘러들어오는 쌉쌀하고 부드러운 맛.

창밖에서 들리던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와

새들의 작은 노랫소리. 모든 것을 스스로 할 수있고,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는 움직임까지.


평범한 일상을 보낼 수 없는 상황이 되서야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귀중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수술 후 나는 간병인의 도움을 받아 겨우 움직일 수 있었다.

다리를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불편함인지 절실히 느꼈다.

발을 땅에 딛고 마음껏 걷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스스로 물 한 잔을 따라 마시는 일이 얼마나 귀한지 깨달았다.


병원에서 퇴원하던 날,

나는 집 앞 작은 골목을 목발을 짚고 천천히 걸었다.

발바닥에 닿는 아스팔트의 온기가 따스하게 느껴졌다.

미세하게 흔들리는 꽃잎을 바라보며 손끝으로

그 부드러운 결을 만져보았다. 바람이 볼을 살짝 스치자,

나는 비로소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나뭇잎의 싱그러운 초록색과 하늘의 맑은 푸름이 눈에 들어왔고,

공기마저 달콤하게 느껴졌다.

그 후로 나는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애쓰지 않았다.


대신 내가 가진 것을 세심하게 바라보고 감사하는 연습을 시작했다.

아침마다 창문을 열고 공기를 크게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득 채우는 상쾌한 기분을 느꼈다.

빗방울이 창문을 톡톡 두드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마음을 적셨고,

빗속을 걷다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발끝으로 전해지는 촉촉한 땅의 감촉도 즐겼다.

늦은 저녁, 주방에서 달그락거리며

천천히 커피를 내리는 일도 좋아졌다.

물이 끓는 소리, 찻잎이 뜨거운 물속에서 서서히 우러나는 모습,

그리고 뜨거운 커피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손끝에서

전해지는 따뜻함을 음미했다.

혀끝에 맴도는 커피의 은은한 향과 맛이

조용히 나에게 위로를 건넸다.


어느 날은 거울 앞에 서서 한참 동안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모습이었지만, 이 모습 그대로가 나였다. 헝클어진 머리,

눈 밑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기미, 핏기 없는 입술.

나이가 들어가며 변해가는 내 얼굴을 차분히 바라보았다.

나는 부족한 나를 인정하고 안아주기로 결심했다.

삶의 아름다움은 언제나 작고 사소한 순간 속에 숨어있다.

매일의 작은 순간들이 나를 살아 있게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순간에 감사하는 마음이

내 삶을 조금씩 더 충만하게 만든다는 것을.

오늘도 나는 내가 가진 작은 것들을 소중히 여긴다.

아침에 눈을 떴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한다.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의 미소와 다정한 인사에 감사하고,

저녁이면 조용히 내 곁을 지켜주는 사람들의 존재에 감사한다.


어쩌면 삶의 행복이란 바로 이 작은 순간들 속에 숨어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가진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

소소한 일상의 기쁨을 놓치지 않는 태도가

우리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만든다.

나는 앞으로도 이 작고 소중한 순간들을 더 많이 발견하며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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