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딘가 좀 부족한 사람이다.
쉽게 다른사람들과 어울리지도 못하고
어떤말을 어떻게 해야할지도 몰랐다.
사람과의 관계를 TV드라마와 책에서 배워서
한편으로는 이상하게 외곡되고,
한편으로는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이상한 상황들 투성이었다.
TV에서 해주는 영화 프랑켄슈타인을 보았다.
프랑켄슈타인은 사람이 아니였다.
사람의 욕망이 낳은 괴물이었다.
여러사람의 인체를 바늘로 꿰어서 만든 살아있지만
사람의 형체라고 할 수 없는 것이었다.
프랑켄슈타인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나의 마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저기 찢기고 뜯겨나간 마음들을 억지로 붙여놔서
원래의 형체를 알아볼수 없는 바로 나였다.
나는 한때 상처를 빨리 지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음에 수도 없이 난 상처를 제대로 치유하지 않고
억지로 붙였다.
마음속에 깊은 흠집을 남기고 가는 것들이 견딜수 없이 부끄러웠고,
그런 기억을 꺼내놓으면 다른사람들이 나를 피할까봐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나의 마음을 외면했다.
아픔 기억은 모두 마음 깊숙한 서랍에 넣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살았다.
그래서 지인들은 모두 내가 명랑하며 마음이 강한사람인줄 안다.
하지만 나는 강하지 않았다.
그저 아픔을 모른척하는데 익숙한 사람이었을 뿐.
지인들과 온힘껏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돌아서면,
세상이 더 적막한 느낌이 밀려온다.
조각난 마음사이에서 온갖 아픔들이 비집고 나오려고 한다.
아직 선명하게 남아있는 상처들이 쓰라리다. 그때마다 나는 나에게 물었다.
"언제쯤 괜찮아질 수 있을까?" 어느책 한 구절이 생각난다.
"꼭 괜찮아지지 않아도 돼. 그자체로도 나니까.
나를 사랑해주고 나를 꼭 끌어안고 살면 돼." 그말이 내게 깊이 박혔다.
상처는 빨리 없애는게 아니라
내가 나를 사랑해주며 치유의 과정이 필요한 것이었다.
사랑을 다른사람에게 바라는 것이아니라
내가 나를 사랑해주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라지지 않는 흔적처럼
그 아픈 나를 품고 살아가는 일이 진짜 어른스러운 태도 인지도 모른다.
상처는 나를 아프게 했지만,
동시에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였다.
상처없이 익어가는 사람은 없다.
마음도, 사람도, 사랑도 상처를 통해 조금씩 익어간다.
잘 익은 열매가 되기까지는 뜨거운 햇볕과 폭풍우를 견텨야 하듯이,
사람이 단단해 지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아픔을 견뎌야 하는것이다.
그 시간을 지나온 사람은 누군가의 상처를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다만 가만히 곁을 지켜준다.
"나도 그랬어. 너만 그런게 아니야."
조용히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나는 이제 그렇게 살고 싶다.
이픔을 숨기지 않고 천천히 들여다보며 그 상처를 품고 사는 법을 배우고 싶다.
나를 사랑하고 싶다.
누군가 나처럼 아픈 사람이 있으면 이렇게 얘기해 주고 싶다.
"상처는 너를 약하게 만드는게 아니라
네가 조금 더 깊은 사람이 되게 하려는 거야.
너를 믿고 지금까지 버텨온 대견한 너를 사랑해줘."
상처는 무척 아프고 힘들지만 그것은 삶을 익어가게 만드는 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