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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상처의 쓸모

by 담은

나는 늘 어딘가 부족한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했고,
어떤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다.
사람과의 관계를 TV 드라마와 책에서 배웠기에
왜곡된 관계와 어색한 상황이 자주 반복되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찌해야 될지 몰랐다.


어느 날 TV에서 영화 '프랑켄슈타인'을 보았다.
프랑켄슈타인은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은 태어나길 원하지 않았지만,

사람의 욕망에 의해 만들어진 괴물 그 자체였다.
여러 사람의 몸을 바늘로 꿰매어 만들어진,
살아 있지만 사람이라 인정받을 수 없는 슬픈 존재였다.

그의 흉측한 얼굴을 바라보다 문득 깨달았다.
저 모습이 바로 내 마음 같다는 걸.
여기저기 찢기고 뜯겨나간 마음을
억지로 붙여놓아서,
이제는 원래의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는 것이
바로 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때 나는 상처를 빨리 지워야 한다고 믿었다.
수없이 생겨난 마음의 상처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고 무조건 덮었다.
마음 깊숙이 새겨진 흠집이 부끄러웠고,
그 기억들을 꺼내면 사람들이 나를 피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내 마음을 철저히 외면했다.
아픈 기억들은 마음 깊숙한 서랍에 넣어두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살았다.


그 덕분에 사람들은 나를
명랑하고 마음이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결코 강하지 않았다.
그저 아픔을 모른 척하는 데
익숙한 사람이었을 뿐.

지인들과 최선을 다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돌아서면,
세상은 더없이 적막해졌다.
조각난 마음의 틈에서
억눌렀던 아픔들이 비집고 나오려고 했다.
아직 선명하게 남아 있는 상처들이 쓰라렸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에게 물었다.
“언제쯤 괜찮아질 수 있을까?”

그러다 어느 책에서 이런 구절을 보았다.
“꼭 괜찮아지지 않아도 돼.
그 자체로 나니까.
나를 사랑하고, 나를 꼭 끌어안고 살면 돼.”

그 말이 내게 깊이 박혔다.


상처는 빨리 지우는 게 아니라
내가 나를 사랑하며
천천히 치유해 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기대기 전에
먼저 내가 나를 사랑하면 되는 것이었다.
사라지지 않는 흔적을 품고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어른스러운 태도라는 것도 알았다.


상처는 나를 아프게 했지만,
동시에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상처 없이 익어가는 사람은 없다.
마음도, 사람도, 사랑도
모두 상처를 통해 조금씩 익어간다.
잘 익은 열매가 되기 위해
뜨거운 햇볕과 폭풍우를 견디듯이,
사람도 그만큼의 아픔을 지나야 만 단단해진다.


그 시간을 겪어본 사람은
함부로 남의 아픔을 평가하지 않는다.
다만 가만히 곁을 지켜준다.

“나도 그랬어. 너만 그런 게 아니야.”
나는 누군가에게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나는 이제 그렇게 살고 싶다.
아픔을 숨기지 않고
천천히 들여다보며
그 상처를 품고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싶다.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싶다.


그리고 누군가 나처럼 아픈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상처는 너를 약하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너를 더 깊고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어주기 위한 거야.
그동안 너를 믿고 버텨온 너 자신을 사랑해 줘.”

상처는 무척 아프고 힘들지만
그 아픔이야말로 우리를 익어가게 만드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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