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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다정함은 어디에서 오는가?

by 담은

나는 아이가 셋이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내가 자란 것처럼 슬프게 키우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이 눈치를 보며 자라지 않기를 바랐다.

움츠리고, 조심하고, 혼날까 봐 숨죽이며 사는 삶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나는 아이들을 잘 키우고 싶었다.

더 따뜻하게, 더 다정하게.


그런데 아이의 눈을 마주 보고

무언가를 말하려고 입을 여는 순간마다

나는 어김없이

내 과거의 언어와 마주해야 했다.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거나

피로가 쌓인 어느 날,

짜증이 올라오는 그 찰나면


불쑥불쑥,

아주 오래된 말들이

나도 모르게 목을 치고 올라온다.


“또 시작이야?”

“너는 그것밖에 못 해?”

“똑바로 못 해?”


그 말은,

어릴 적 내가 가장 듣기 싫었던 말이었다.

그런데 지금,

사랑하는 내 아이들에게

그 말을 하고 있는 사람이 나라는 사실이

숨이 막히도록 괴롭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

그런 말을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마음보다 말이 빠르고,

그 말은 나보다 더 먼저 움직인다.



말은, 늘 마음보다 빠르다.


서운함이 오기도 전에

상처가 되고,


미안함이 오기도 전에

눈물을 만든다.


그럴 때면

아이를 안아주고 싶은 마음보다 먼저,

스스로를 끌어안고 싶은 마음이 든다.


나는 정말,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군가의 실수 앞에서

“괜찮아.”라고 따뜻하게 말해줄 수 있는 사람.

어린 마음의 떨림을

놓치지 않고

다정히 어루만져줄 수 있는 사람.


하지만 그 다정함은

차가운 내 안에는 없는 것만 같았다.



어릴 적의 나는

늘 말을 조심해야 하는 아이였다.


잘못 꺼낸 말 한마디에

공기가 얼어붙었고,

눈치를 보지 못하면

혼이 났다.


나는 말보다 눈빛을 먼저 읽는 아이였고,

감정보다 침묵을 선택하는 편이 편했다.


‘말 한마디로 다정해진다’는 말을

나는 믿지 않았다.


그 한마디를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런 내가,

지금은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사랑하는 아이들.

다정함을 온전히, 마땅히 받아야 할 아이들.


하지만 아이들 앞에 서면

나는 자꾸 작아진다.


내 말이 또 뾰족하지는 않을까,

내 눈빛이 아이를 움츠리게 하지는 않을까,

내가 무심코 꺼낸 말들이

아이의 마음 어딘가를 서늘하게 만들지는 않을까.


아이를 꾸짖고 돌아선 밤이면

불 꺼진 거실 한구석에 앉아

나 자신에게 조용히 묻는다.


“나는 왜,

다정한 사람이 되는 게 이렇게 어려울까.”



요즘 나는

다정한 언니들을 자주 만난다.


그 언니들은 말할 때

말끝에 노래가 실려 있다.


뜨겁지 않게,

하지만 분명히 따뜻하게.

억양은 노래처럼 부드럽고,

문장의 마침표에는

늘 애정이 담겨 있다.


“그래, 네 마음이 그렇구나.”

“그럴 수도 있지. 나도 그런 적이 있어.”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

“살다 보면 그런 날도 있는 거야.”



나는 가만히 듣기만 해도

마음이 고요해진다.


그 말들 속에는

그 언니들이 지나온 삶 전체가 담긴 것 같아

감히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조심스러움마저 느껴진다.


그 언니들을 보며 나는 배운다.


“다정함은,

조금 더 애틋하게 봐줄 때 시작된다는 걸.”



그런 다정함을

나는 이제야 배우고 있다.


아이에게 말하기 전에

내 마음부터 다독이는 연습.

아이들이 울 때

“그만 울어.”라고 윽박지르는 대신

“많이 속상했구나.”라고

마음을 헤아려보는 연습.


그 연습은 여전히 낯설고,

어쩔 땐 부끄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 어색한 연습 속에서

나는 조금씩,

다정하기로 했다.



다정함은 어디에서 오는가.


나는 이제 안다.

그것은 부모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아

단단해진 마음에서 시작되기도 하지만,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도

다정함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을.


다정하고 싶다는 마음.

그 마음 하나가

오래 쌓이면

조금씩 길이 되고,

천천히 말이 된다.


어쩌면 나는 지금

내 어린 시절의 나를

비로소 안아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에게 다정하고 싶은 내 노력은

곧 내 안의 상처 입은 나에게 보내는

늦은 위로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조금 느려도 괜찮다.

서툴러도 괜찮다.


내가 아이에게 건네는 서툰 다정함이

그 마음 어딘가에 뿌리를 내릴 것이다.

작은 씨앗처럼,

그 아이의 마음속에서

따뜻한 싹이 트게 될 것이다.



다정함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감정이지만,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감정은 아니다.


그러나

다정해지고 싶다고 느끼는 사람은

마음이 가장 애달프고 간절한 사람이다.


그 마음이 있다는 것만으로

당신은

아주 먼 길을

조용히,

그러나 꿋꿋하게 걸어온 사람이다.



그러니

너무 아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무 자신을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내 작은 다정함을,

당신에게 나눠주고 싶다.


그 다정함이

당신의 하루 어딘가에

조용히 스며들기를.


그래서 언젠가

누군가의 마음을

온전히 덮어줄 수 있을 만큼

따뜻한 언어로 가득한 하루를

당신도 맞이하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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