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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겨울마음

by 담은

나는 여름에도 전기장판을 켠다.
낮 기온이 30도를 훌쩍 넘는 날에도
누운 이불 아래로 은근한 온기를 느껴야 겨우 잠이 든다.
가족들은 더운 날씨에 왜 그러냐며 핀잔을 주지만,
마음이 시리면 몸도 시려오는 것일까.

언젠가부터 내 안은 늘 겨울이었다.

햇빛이 아무리 밝아도,

어딘가 마음 한쪽은 늘 서늘했다.

온기라고는 한 번도 찾아온 적 없는 외로운 마음.

마음이 시리면 몸으로도 나타는 것일까?


언젠가부터 내 안엔 겨울이 살고 있었다.
햇살은 창밖에만 머물고,
내 마음속은 늘 음지였다.


나에게 돌아올 사랑 같은 건 없었다.
차가운 말투, 빈정거림, 윽박지름, 위협적인 침묵.
엄마의 눈빛은 늘 허공을 맴돌았고,
아빠의 말은 칼처럼 날카로웠다.
내가 손을 내밀면 돌아오는 건 냉대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뭐든 혼자 해결해야 했고,
가질 수 없는 걸 바라면 다친다는 것도 배워야 했다.

온기를 배우지 못한 나는, 사랑이 두려운 사람이 되었다.
사랑받고 싶었지만 누군가 다가오면 내 마음은 늘 먼저 도망쳤다.
마음이 시리면 사랑이 고파진다.
하지만 그 온기에 마음이 데일까 두려웠다.

사랑은 뜨거워서 아프고, 다정함은 익숙하지 않아서 낯설다.

온기를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은
사랑을 의심하는 법부터 배운다.
“저건 진짜일까?”
“나한테 왜 그러는 걸까?”
“언제 식을까?”
불안은 마음보다 빠르게 문을 닫는다.


겨울 호수처럼 얼어붙은 마음.
표면은 차갑고 단단히 얼었지만,
그 밑에는 여전히 사랑을 원하는 물결이 있다.
가끔은 문득 건네는 다정한 눈빛,
아무 이유 없이 웃어주는 미소가
마음에 작은 꽃봉오리를 틔운다.

하지만 그 봄은 오래 머물지 못했다.

온기를 견뎌본 적 없는 마음은

낯선 다정함에 당황한다.
“부모도 날 사랑해주지 않았는데,

누가 날 진심으로 사랑해 주겠어?”
“저 사람도 언젠가 아빠처럼 변하겠지.”
그런 불안은

내 안의 봄을 스스로 내쫓게 만든다.

늘 다시 돌아가는 곳은 차갑고 황량한 겨울이었다.


나는 다시 전기장판을 켠다.
아직도 내 안에 서러운 겨울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사랑을 원하면서도,

움츠리는 마음.
그 뜨거움에 또 데일까봐 주춤하는 마음.
그 모순의 언저리에서

나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두 마음사이에서 헤맨다.


사랑은 뜨거워서 아프고,

사랑을 몰라서 그립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봄은 누군가가 데려오는 계절이 아니라

내가 용기 내어 마음의 창을 열 때

비로소 찾아오는 계절이라는 것을.


사랑이 오면,

이번에는 아주 천천히,

두 손으로 문을 열어볼 수 있기를 바란다.

사랑은 용기 있는 사람에게 찾아온다.


언젠가 그런 날이 오면

나는 더 이상 시린 마음을 움켜쥐고

잠들지 않아도 될 것이다.

사랑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리고 믿게 될 것이다.

역겹도록 시렸던 마음을 녹이는 온기는

누구의 것도 아닌,

내가 나를 사랑하는 따뜻함이었다는 것을.


마음이 시렸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사랑을 절실하게

갈구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이 글을 읽는 누군가의 마음도

나처럼 시리다면,

나의 온기를 조금 나줘주고 싶다.

이 따뜻함이 당신의 마음의 마중물이 되기를.

그래서 언젠가는

당신도 다신의 겨울을 지나

스스로를 따뜻하게 품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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