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거의 없다.
그런데 진짜로 잊고 싶었던 기억은 왜 점점 또렷해지는 걸까?
너무 수치스럽고 끔찍해서,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내 어린 시절.
잊고 싶은 마음과는 반대로, 그 장면들은 내 안에서 자꾸 되살아난다.
마치 내가 살아 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끝없이 고개를 들며 다가온다.
그 기억들은 오랜 시간 나를 따라다녔다.
대인기피, 불면증, 불안장애, 우울증, 자신감 결여, 비관적인 사고, 깊은 자기혐오.
삶은 늘 나에게 너무 무거운 짐이었다.
짊어진 채로는 도저히 걸을 수 없지만, 또 내려놓을 수도 없는 짐.
내 디폴트값은 언제나 ‘깊은 우울’이었다.
나는 내 삶을 온전히 살아내지 못했다.
남들처럼 웃고 떠드는 일상이, 나에겐 도달할 수 없는 풍경처럼 멀게 느껴졌다
누군가는 이 우울한 글이 싫을 수도 있다.
누군가는 나의 고통과 상처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또 누군가는 읽는 내내 내가 겪은 일들에대해 불편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사실은 나도 그랬다.
나조차 내가 겪어야 했던 일들을 이해할 수 없었고,
내가 겪은 일들이 몸서리 쳐질 만큼 싫을 때가 많았다
그래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오래도록 침묵했다
말하면 부서질 것 같고, 꺼내면 다시 그 안에 잠길 것 같아서.
하지만 이제는 말해보려 한다.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도 아니고,
사람들에게 이해를 받기 위해서도 아니고
값썬 동정을 바라서도 아니다.
이 책은 내 상처를 회복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가슴에 가득 차있는 고름들을 굵어내지 않고서는
살아낼 수가 없어서다. 잔뜩 고여있던 눈물을 닦고 온전한 내 삶을 살아내기 위해서이다.
온통 아팠던 나를 치유하고자 하는 시도이며,
나를 옥죄던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작고 조심스러운 몸짓이다.
나의 삶에, 나 자신에게, 처음으로
진심으로 다가가는 시도이기도 하다.
이제 나는 나를 잠식했던 수치스러운 기억과 마주하고, 그것을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려 한다.
그리하여 빛나는 50대를 만나기 위함이다.
당신도 혹시,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기억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세상과 단절된 채 마음속 깊은 겨울을 버티고 있다면.
이 글이 당신에게 작은 온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 이야기는 내가 겨울을 견디며 살아냈던 증거이고,
또 누군가의 겨울에 닿기를 바라는 작은 불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