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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아무도 없었다.

by 담은

그날 밤의 공기는 유난히 차가웠다.

날카로운 바람이 폐 깊숙이 파고들어 마치 칼날처럼 아렸다.

있는 힘을 다해 뛰고 있었지만,

어둠이 나를 잡아당기듯 길은 끝없이 이어졌다.

심장은 귀밑까지 터질 것처럼 뛰었고,

목은 말라붙어 숨쉬기조차 힘겨웠다. 빠르게 달려야만 했다.

공포가 나를 집어삼키기 전에 경찰서에 도착해야만 했다.

마침내 골목을 돌아 파출소의 불빛이 흐릿하게 눈에 들어왔다.

그곳만이 마지막 나의 희망이었다.



막상 파출소 유리문 앞에 서자 또 다른 두려움이 앞섰다.

안에서 새어 나오는 밝은 형광등불빛은 낯설고 차갑게 느껴졌다.

'들어가서 어떻게 말해야 하지? 경찰아저씨가 도와주지 않으면 어떡하지?

지난번에도 아저씨들이 왔다가 부부싸움이라고 그냥 갔잖아. '


유리문 안쪽은 세상은 너무 조용하고 정돈되어 있었다.

비현실적으로 너무나 평화로운 공간처럼 느껴졌다.

손에 땀이 흥건히 차올랐고, 입술은 바짝 말라 서로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떨리는 손으로 문을 밀었다.

문이 열리는 순간 따뜻한 실내공기가 차가운 얼굴을 스쳤다.

싸한 먼지냄새, 오래된 커피냄새가 코를 찔렀다.


"아저씨... 저기.... 우리 엄마 좀... 살려주세요..."

목소리는 돌덩이에 눌린 듯 겨우 흘러나왔다.

말문이 트이자 두려움과 절박함이 뒤엉켜 울음으로 터져 나왔다.

"아빠가 엄마를 때려요. 엄마가 죽을지도 몰라요. 제발 빨리 가주세요…"

그러나 경찰은 난처하다는 듯이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다른 경찰들이 다 순찰을 나가서 지금 경찰서를 비울 수가 없어요. 일단 집에 가봐요. 부모님 싸움이 끝났을 수도 있어요."

그 순간 머리 위로 얼음같이 차가운 번개가 내리치는 느낌이었다.

'혼자 다시 집으로 가라고? 어떻게 해야 하지? 결국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건가…'

몸이 그대로 굳어 움직일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서서 울음을 삼키는 것뿐이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세상 누구도 우리를 도와주지 않는다는 것을.


파출소 문을 열고 나오자, 찬바람이 다시 내 얼굴을 때렸다.

바꿀 수 없는 현실이 더 무겁게 내 어깨를 짓눌렀다.

파출소 계단을 내려오는데 갑자기 발바닥이 갑자기 타들어 가는 듯 아팠다.

고개를 숙여 아픈 곳을 바라보니 양말 위로 피가 빨갛게 번지고 있었다.

맨발로 달려오면서 까진 발바닥에서 피가 떨어져 파출소 계단에 선명한 자국을 남겼다.

나는 계단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발이 아파 울었는지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현실이 아파서 울었는지 모르겠다.


밤은 여전히 고요했고, 별은 무심히 빛나고 있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마저 곧 사그라들고, 세상은 다시금 잔인한 침묵 속으로 가라앉았다. 엄마가 지금도 맞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현실 앞에서 나는 무력했다.

그리고 아무도 주와주지 않는다는 사실 앞에서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로부터 40여 년이 지난 지금, 그날의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너는 정말 최선을 다했어.

네가 무력하다고 느꼈던 그 순간, 혼자였기에 더 힘들었겠지.

그 순간의 무력감은 결코 너의 잘못이 아니야.

오히려 네가 얼마나 용기 있었는지 나는 잘 알아.

아무도 손잡아주지 않는 그 시간에 네가 버텨준 덕분에 내가 지금 여기에 있어.

그날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너에게 고마워. “


나는 이제 안다.

진짜 용기는,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순간에도 끝까지 스스로를 놓지 않는 마음이라는 것을.

그날의 나는 어리고 작은 아이였지만, 그 어떤 어른보다 용감했음을.


그리고 나와 같은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그날의 당신도, 당신은 혼자였지만 결코 약하지 않았다고.

그날들을 버텨낸 것만으로도 충분히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고.

그러니 우리 이제 더 이상 아픔 앞에서 작아지지 말고

세상을 용감하게 살아가자고 말이다.

당신은 이미 빛나는 사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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