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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뜬 달

by 담은

그날도 아빠는 술을 마셨고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아빠는 주방에 가서 칼을 들었다.

"이 씨발 X들 다 죽여버려야지 "

아빠의 빨간 눈은 우리를 보며 희번덕해 댔다.

"도망가야 돼" 엄마가 다급한 손짓으로 우리를 불렀다.

엄마는 잠옷차림인 우리를 데리고 옆집으로 달려갔다.

"우리를 좀 숨겨주세요." 엄마가 다급한 목소리로 옆집아주머니에게 말했다.

아주머니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급하게 우리를 다락방으로 이끌었다.

다락방은 작고 어둡고 어두웠다.

머리를 살짝 들면 천장에 부딪힐 정도였다.

나는 동생과 함께 다락 구석에 웅크린 몸을 숨겼다.

숨이 막혀왔다. 공기는 눅눅하고, 먼지 냄새가 가득했다.

목구명이 간질거렸다.

기침이 나올 것만 같았다.

나는 한 손으로는 신발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소리 내지 마'

'숨 쉬지 마'

'움직이지 마'


아무도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지 않았지만

직감으로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가 여기 있다는 것을 아빠가 알면 안 되었다.

아빠가 우리를 찾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나는 동생의 떨리는 손을 꼭 쥐었다.

그때였다

벨소리가 들리는 듯하더니 문 열리는 소리가 거칠게 들렸다.

문 여는 굉음과 함께 '쿵'하고 내 심장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어디 숨었어? 나와! 이 씨발년들 여기 숨어 있는 거 아냐?

다 죽여버릴 테니까 나와!"

커다랗고 찢어지는 목소리가벽을 타고,

문을 때리고 공기를 갈랐다.

머릿속에서 심장이 쿵 숨조차 쉴 수가 없었다.

내 숨소리가 아빠에게 들릴 것 같았다.

쿵쿵거리는 심장도 아빠한테 들릴 것 같아 무서웠다.

쿵쿵거리는 발소리,

문이 쾅 닫히는 소리,

아빠의 거친 욕설 그 소리들이 다락방 공기를 때렸다.

나는 더 작아지고 싶어서

몸을 웅크리고, 또 웅크렸다.

이대로 사라져도 좋을 만큼 작아지고 싶었다.

동생이 무서웠는지 훌쩍이기 시작했다.

나는 동생의 입을 조심스럽게 막았다.

"쉬잇. 쉿ㅡ" 내 입에서 거의 소리도 없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동생은 너무 어려서 너무 무서웠는지,

이내 어깨가 들썩였다.

나는 온몸이 굳어져버렸다.

다락문 바깥에서는 아빠가 여전히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여기저기 들쑤시며 우리를 찾아다녔다.

아빠가 다락방 문을 열고 우리를 찾을것만 같았다.

나는 하느님께 빌고 또 빌었다. 제발 아빠가 우리를 찾지 못하게 해달라고.

벽너머에서는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아빠를 진정시키느라 애쓰는 소리가 들렸다. 마음이 아득해졌다. 영혼이 나를 빠져나가 다른세계로 갔으면 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나는 조심조심 쉼을 들이쉬었다.

차갑고 떫은 먼지 냄새가 났다.

아빠의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자 안도감이 들었다.

심장이 털썩 주저앉는 느낌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몰랐다.

마치 영원히 다락방에 갇혀있었던 것 같았다.

살아있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 내 존재를 지워야 했던 그 밤에

나는 숨조차 낼 수 없는 아이였다.

오랫동안 아빠의 살기 띤 눈과 서슬이 퍼렇던 칼날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 후로 꿈속에서도 늘 아빠는 칼을 들고 나를 쫓아왔다.

꿈속에서도 살기 위해 늘 도망쳐야 하는 날들이 이어졌었다.


수십 년이 지났지만, 그날의 공기, 그날의 침묵,

그날의 공포는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다.
도망쳤고, 숨었고, 울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었던,

그 모든 행동은 어린 날의 상처가 되었다.

어떤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흐려지지만,
어떤 기억은 시간 속에서도 더욱 선명해진다.
나는 더이상 내게 남긴 흔적을 외면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날의 어린 나를 안고, 그날의 아빠를 다시 바라본다.


쉽지 않았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그리고 아직도 아빠를 완전히 용서하진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이해하려고 한다.


그가 가진 상처의 무게,

말 대신 폭력으로밖에 표현하지 못했던 미성숙한 감정의 언어들.
그 어두운 마음의 실체를, 나는 천천히 바라보려 한다.


용서는 잊는 일이 아니었다.
그건, 나를 짓눌렀던 분노와 두려움에서
내가 나를 풀어주는 일이었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나를 되찾고 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용서할 수 없는 기억 속에서 여전히 자신을 괴롭히고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용서는 그 사람을 위한 일이 아니라,
당신이 다시 살아가기 위한 첫걸음일지도 모른다고.

그러니 모든 상처를 과거에 남겨두고,

오늘을 살아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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