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밤이 되면 조용히 눈을 뜬다.
밤이면 어둠은 집 안 구석구석 흘러내리고
모든 것이 검게 잠길 때, 그때부터 아이는 제 일을 시작한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어둠을 먹는 법을 알고 있었다.
침대 끝에서 시작된 어둠은 천천히 손끝으로 스며들고,
조용히 아이의 몸 안을 채웠다.
검은 밤 안에서 자란 아이는 늘 배가 고팠다.
아무리 어둠을 먹어도, 허기는 채워지지 않았다.
아이는 낮 동안은 집 밖을 나오지 않았다.
햇살이 살갗을 쓸면 따갑고 뜨거워 견딜 수가 없었다.
사람들의 밝은 표정, 밝은 말투, 밝은 소리, 환한 웃음은
모두 아이에게 너무 눈부셔 숨이 막혔다.
사람들은 아이를 보고 가끔 말했다.
"왜 그렇게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니?"
"웃어봐, 인생이 그렇게 어둡지 않단다."
하지만 아이에게 세상은 언제나 캄캄했다.
눈부신 대낮에도 마음 한편에는
늘 깊고 고요한 밤이 깃들어 있었다.
그 밤은 아이의 집이었고,
세상에서 유일하게 숨을 쉴 수 있는 안식처였다.
사람들이 잠든 밤, 아이는 홀로 깨어
손끝으로 어둠을 떠 입에 넣었다.
차갑고 씁쓸한 맛.
처음엔 낯설었지만 점차 익숙해졌다.
어둠은 입술을 지나 혀끝으로,
목구멍을 지나 아이의 가슴 깊숙한 곳으로 흘러들었다.
그러면 아이의 가슴속 깊이 숨겨진 슬픔,
말하지 못한 외로움과 두려움이 검은 물감처럼 천천히 퍼져나갔다.
어둠은 아이를 키웠고,
아이는 그 어둠을 먹었다.
끝없이 반복되는,
마치 사슬처럼 얽힌 순환이었다.
어느 날 아이는 생각했다.
"왜 나는 어둠을 먹어야 하지?"
"다른 사람들처럼 햇살을 먹으며 웃을 수 없는 걸까?"
"햇살은 어떤 맛일까?"
그러나 어둠에 익숙해진 아이는
이제 밝음이 두려웠다.
빛이 닿는 순간 자신이 사라질까 봐 두려웠다.
어쩌면 아이는 스스로 어둠을 선택한 것일지도 몰랐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어둠 속에서만
자신을 숨기고 보호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밤,
아이는 창가에 앉아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에는 어둠만큼이나 많은 별들이 떠 있었다.
그 별빛은 작고 희미했지만 끊임없이 빛나 있었다.
아이는 별들을 바라보며 작은 떨림을 느꼈다.
'어쩌면 저 별들도 나처럼 어둠을 먹고사는 건지도 몰라.
저 별들도 어둠 속에서 빛나고 있잖아.'
그날 이후,
아이는 어둠을 먹을 때마다
그 안에서 별의 맛을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다.
별은 아주 작고 희미했지만,
그 안에 분명히 존재하는 빛이었다.
차갑고 익숙했던 어둠 속에서도
때때로 아주 작은 단맛이 느껴졌다.
아이는 이제 알게 되었다.
자신이 먹던 어둠 속에는
아주 작은 빛들이 숨겨져 있다는 걸.
자신의 슬픔과 외로움 속에도 그와 닮은 빛이 있다는 걸.
아이는 여전히 어둠을 먹는다,
하지만 이제 그 어둠이 결코 자신을 삼키지 못한다는 것을.
그 어둠 속에서 작은 별 하나가 자라고 있고,
언젠가 그 빛으로
다른 누군가의 밤을 밝혀줄 수 있다는 것을.
아이는 오늘도 조용히 어둠을 먹는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별 하나의 맛을 기억하며,
언젠가는 자신도 어둠을 환하게 밝히는
작은 별이 되기를 소망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