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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와 불신의 경계에서

by 담은

무엇을 믿어야 하고, 누구를 믿어야 할까.

이 질문은 인생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한 번쯤은 지나야 하는 통로다.

누군가는 그 문턱 앞에서 멈추고,

누군가는 그 문을 열었다가 마음을 다치고,

또 누군가는 그 문을 아예 닫아버린 채 살아간다.


어릴 적 나는 모든 것을 쉽게 믿었었다.

좋은 말은 모두 진심일 거라 생각했고,

웃는 얼굴을 하면 모두 나를 좋아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되었다.

모든 진심이 진실은 아니고,

모든 웃음 뒤엔 이유가 있었음을...


신뢰는 이상하게도 깨지는 순간보다 생기는 순간이 더 어렵다.

처음 누군가를 믿기로 결심하는 일은

작은 다리 하나를 건너는 것과 같다.

그 다리는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불안정한 구조물이다.

건널지 말지 망설이다 결국 한 발을 내딛는 순간,

우리는 그 사람에게 마음의 일부를 내어준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늘 같은 속도로 다가오지 않는다.

나는 깊이 믿었는데, 상대는 그렇지 않기도 하고,

나는 조금씩 마음을 여는 중인데,

상대는 이미 마음을 닫아버린 후일 수도 있다.

그 어긋남 속에서 우리는 자주 상처를 입는다.

그리고 그 상처는 다음 신뢰를 가로막는 벽이 된다.


나는 오랫동안 사람을 믿지 못했다.

겉으론 웃고, 속으로는 경계했다.

대화 중에도 마음의 반은 늘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살아남는 법을 익히며,

신뢰는 점점 '사치'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마음은 이상하게도,

어느 순간 다시 누군가를 향해 열리려 한다.

작은 배려 한 톨, 짧은 위로 하나에

내 안의 닫힌문이 삐걱거리며 조금씩 열린다.

신뢰는 그렇게 다시 시작되기도 한다.

완전히 무너지지 않은 마음은 언젠가 회복을 꿈꾼다.


신뢰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단단한 신뢰'

시간이 지나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

또 하나는 '유리 같은 신뢰',

작은 균열에도 부서지고 마는 연약한 마음.


우리의 대부분은 이 두 가지 신뢰 사이 어딘가에 머무른다.

누군가에겐 단단하고, 누군가에겐 유리처럼 깨어지기도 하면서.


신뢰를 배신당한 경험이 있다면,

그 후로 누군가를 다시 믿는 일은 더디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의 의심하고 살아간다면

결국 외로움만 더 깊어질 것이다.


나는 신뢰를 선택의 문제로 생각하기로 했다.

누군가를 믿는다는 건

그 사람이 나를 다치게 할 수도 있음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신뢰는 완벽해서가 아니라,

불완전함을 감싸안는 용기에서 비롯된다.

"혹시 상처받을지라도, 나는 너를 믿을게."

이 말이야 말고 가장 따뜻한 형태의 용기가 아닐까.


나는 지금도 사람을 온전히 다 믿지는 않는다.

어쩌면 앞으로도 완전히 믿는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점점 더 잘 분별하게 되었다.

무엇을 믿고, 무구를 믿어야 하는지.

그 사람의 말보다 마음을,

그 사람의 행동보다 진심을,

그 사람이 나를 대하는 방식에서

그가 믿을 만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조금은 알 수 있게 되었다.


신뢰는 멀리 있는 구름이 아니다.

우리의 일상 속, 작은 말과 태도에서 생겨나고 자란다.

상처를 줬던 사람보다

곁에서 조용히 내 말을 들어준 사람을 더 오래 기억하게 되는 것처럼.

믿음은 큰 약속이 아니라,

잦은 진심들이 쌓여 만든 결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나 자신을 향한 신뢰다.

어떤 상황에서도 내 감정과 판단을 믿는 일.

누가 뭐라 해도 내가 느낀 것을 부정하지 않는 것.

스스로를 믿지 못하면 누구도 제대로 믿을 수 없다.

그러니 오늘은,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건넬지 말지 고민하는 당신에게 말하고 싶다.

천천히 해도 괜찮다고

신뢰는 조심스러워야 오래간다고.

그리고 언젠가,

정말 믿을 만한 사람은

그 기다림의 끝에서 당신을 따뜻하게 안아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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