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의 삶 속에서 찾아낸 내 자리의 행복
다이애나 황태자비와 그녀의 평생의 연적 카밀라 파커 볼즈, 현세대에 이 두 여인만큼 드라마틱하게 대조적인 삶을 살았던 두 여인이 있을까?
한 여인은 자신이 사랑한 한 남자의 사랑을 얻지 못하는 대신,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얻어, 죽은 지 20년이 넘는 지금도 전 세계인으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왕족으로 꼽히는 반면, 한 사람은 바로 그 한 여자가 얻지 못해 괴로워한 바로 그 남자의 사랑을 얻는 대신,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미움을 한 몸에 받는 여인으로 살아가는 괴이한 운명.
‘당신은 이 두 여인 중 누구로 살아가고 싶습니까’
아무도 묻지 않을 것 같은 질문을 스스로 던지며 ‘가장 가까운 한 사람의 사랑과 대중의 사랑’ 그것이 여인의 일생과 행복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무게를 저울질해보고 싶은 호기심이 일었다.
SNS상에서 사진을 검색하다 보면 다이애나는 진정 아름다운 여인임을 느낀다. 178cm 신장에 큰 이목구비를 가진 다이애나는 전형적인 미인은 아닌데도, 모든 사진 속에서 눈부시게 아름답다. 드레스에 왕관을 쓴 모습도, 헝클어진 머리에 트레이닝 복을 입은 모습도 우아함 그 자체다. 그녀에 대한 영화 속 그녀의 역할을 하는 할리우드 배우조차 그녀의 우아함과 매력에 범접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분명 그녀는 이 시대를 살았던 가장 아름다운 여인 중 한 명이며, 스타일 아이콘임에 분명하다.
반면, 찰스와의 재혼으로, 엘리자베스 여왕 다음으로 영국 왕실의 두 번째 높은 여인이 된 카밀라는 아무리 값진 보석을 걸치고 번쩍이는 드레스를 입어도 예쁘지가 않다. 눈이 휘둥그레지는 보석이 아깝고, 그 몸에 걸쳐진 비싼 옷이 안타깝다. 마치 신 또한 그녀의 존재를 탐탁지 않아하는 듯하다.
그런데도 도대체 황태자는 왜 평생 카밀라에 빠져 다이애나비를 울게 했을까?
찰스는 다이애나를 만나기 전부터 카밀라와 연인관계였다고 한다. 그러나 왕족이 아닌 그녀의 출신으로 인해 왕실은 그녀와의 결혼을 반대했고, 우유부단한 왕자님은 상황을 피해 군대에 갔다. 그 사이 카밀라는 다른 남자와 결혼해서 아이 둘을 낳고 살고 있었다.
찰스의 제대 후, 다시 만난, 찰스와 카밀라, 이 둘의 사랑은 다시 불이 붙었지만, 유부녀와 결혼을 위해서는 왕위를 포기해야 하는 왕실법에 따라, 찰스는 다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에 놓였다. 거기에 주변은 이미 노총각이 된 황태자에게 결혼을 하라는 압박을 하고 있었다. 그때 찰스 앞에 나타난 순진한 귀족 출신 아가씨가 다이애나. 그는 쉽게 자신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은 순진해 보이는 13살 연하의 스무 살 아가씨와 결혼을 결심한다.
애초에 왕자님은 다른 곳에 마음을 두고, 그저 겉으로 행복해 보이기 위해 결혼을 선택한 반면, 순진한 아가씨는 왕자님과의 사랑으로 가득 찬 결혼을 꿈꾸었으니 서로 출발점이 달라도 너무 달랐던 것.
이들의 결혼의 이야기는 애초에 사랑은 줄 생각이 없었던 왕자님과, 다른 모든 것은 필요 없으니 당신의 사랑을 달라고 울부짖는 공주님 사이의 비극의 드라마였다. 두 아들을 낳고 15년 결혼 생활 동안, 다이애나가 5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다는 본인의 육성 인터뷰가 이들의 결혼생활이 어떠했는지를 설명해주고 있다.
그런 다이애나를 지탱해주었던 것은 두 아이들이었다고 한다. ‘다이애나의 꿈: 윌리엄과 해리’라는 책을 통해 다이애나의 삶과 자식사랑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 졌다.
1997년 다이애나의 사고사 장면으로 시작되는 이 책 곳곳에는, 그들을 치장하고 있는 ‘보석과 왕관의 무게’를 절감케 하는 답답하고 자유롭지 못한 왕족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흡사 ‘막장드라마와 같은’ 내용으로 가득했다. 430페이지 책이 단숨에 읽어졌다.
책을 읽고 나니, 다이애나도 찰스도 정말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이애나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가정을 버리고 집을 나가 아버지의 손에 자랐다고 한다. 공부 잘하는 언니, 오빠에 비해, 고등학교 졸업시험도 통과하지 못한 다이애나는 자존감이 낮은, 그래서 늘 남자의 사랑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고 하는 성숙하지 못한 소녀였다.
어쩌면 더 불쌍한 사람은 찰스 황태자인 듯했다. 세상 가장 지체 높고 바쁜 엄마를 둔 탓에 어린 시절 엄마를 볼 수 있는 시간은 하루 30분이 고작이었단다. 어쩌다 자신을 보더라도 여왕인 엄마는 애정의 표현이 손을 흔드는 게 다였다고 하니, 미래의 왕으로 온갖 대접은 받았지만, 정작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어야 할 여왕 엄마의 엄격함에 눌리고 애정에 목마를 수밖에 없었던 운명. 결혼 후 아이 둘을 낳아 키우면서도, 중년의 황태자는 늘 어릴 적 가지고 놀던 아기곰을 끼고 잠자리에 들고, 어쩌다 그 인형이 뜯어지면, 어릴 적 자신을 돌보던 유모만이 그 인형을 꿰맬 수 있게 했다고 하니, 그의 애정결핍과 유아적 예민함을 읽을 수 있었다.
둘째 아들 해리를 낳았을 때부터, 아예 카밀라의 집과 가까운 궁에 머물며, 주중에는 가족들과 황태자의 업무를 수행하고, 주말은 카밀라와 보냈다니 그들 삶의 이중성과 불행의 순간들이 눈에 그려지는 듯하다.
어린 시절 엄마의 따뜻한 사랑에 목말랐던 그래서 제대로 된 사랑을 할 줄 몰랐던 두 남녀가 전혀 다른 기대를 가지고 부부로 맺어져 서로를 힘들게 했던 결혼. 그래서 오히려 헤어짐이 두 사람과 두 아들에게도 나은 결정이었던 듯하다.
그런데 두 사람이 유일하게 일치했던 부분은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미워했지만, 두 아들에 대한 사랑은 깊었다. 다이애나는 숨 막히는 왕실의 규율 속 자신의 아들들이 유약하고 불안정한 찰스처럼 자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왕실의 미움을 사면서도 그들을 궁궐 밖 세상을 이해하는 아이들로 키우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어릴 적부터 부모의 불화, 지속된 외도 및 이혼 그리고 청소년기 엄마를 잃은 슬픔을 겪었지만, 두 아들 윌리엄과 해리는 비교적 잘 자라나 가정을 꾸리고 왕실의 격식과 위엄을 유지하면서도, 어머니의 정신을 이어 대중을 끌어안는 등 사랑을 나눌 줄 아는 사람들로 자라났다. 아이 셋을 둔 윌리엄 왕세손의 불륜설이 나돌기도 하지만, 부모가 겪었던 불행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 만을 바랄 뿐이다.
다이애나의 수많은 사진들을 보다 보면, 다이애나가 진정 아름다웠던 시기는 찰스의 사랑을 갈구하며 불안정한 모습을 보일 때가 아니라, 소외된 이웃들과 어려운 사람들에게 자신의 사랑을 나눌 때였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배우자의 사랑이냐 대중의 사랑이냐의 문제라기보다는 ‘사랑을 바랄 때보다는 사랑을 줄 때’, 훨씬 더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이 만들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가 러시아 문호 톨스토이는 ‘사랑이 있는 곳에 신이 함께 있다’라고 했나 보다.
화려하게만 보이던 왕자님과 공주님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나니, 그들의 왕관과 드레스에서 화려함과 영광보다는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희생하며 견뎌야 하는 왕관의 무게’가 더 크게 보인다. 애초의 질문에 대한 답이 명확해지는 듯하다.
다이애나도 카밀라도 노땡큐입니다. 그저 질끈 묶은 머리에 펑퍼짐한 몸매를 가졌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고, 명절날 떡국 한 그릇 제대로 끓여주면 엄지 척을 해 보이는 남편과 아이들이 있는 제 자리가 전 제일 좋습니다.
오늘 다시 고무장갑을 끼고 싱크대 앞에 서야 하는 자신의 자리가 초라하게 느껴진다면, 지구 반대편 가장 아름다웠고 화려했던 공주님의 왕관 뒤의 삶을 한번 진지하게 들여다볼 것을 적극 추천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