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듦의기쁨, 깨달음의 희열
얼마 전부터 어깨와 등이 뻐근하다 싶더니, 왼팔 전체에 찌릿한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쉬면 나아지겠지 했는데, 통증이 심해지더니, 팔을 위로 높이 들기가 어렵고 옷도 입기 거북할 정도가 됐다.
3년 전, 오랜 직장 생활을 통해 만들어진 거북목과 굽은 어깨로 인한 어깨 통증을 처음 느꼈다. 필라테스를 통해 자세를 교정하고, 체조와 스트레칭을 꾸준히 하면서, 그동안은 비교적 몸의 통증 없이 살았는데, 다시 왼쪽 팔의 통증이 찾아온 것이다. 그것도 더 심하게.
일단 뼈나 인대에 구조적인 문제가 생긴 게 아닌지, 정형외과를 찾아 초음파 진단을 받았다. 다행히 뼈나 인대에는 문제가 없었다. 의사 선생님은 별다른 문제가 없으니 약 먹고 나아지지 않으면 전신 소염제 주사를 맞자고 하셨다.
약으로는 근본적 치료가 될 것 같지 않아, 통증이 심해지면 약을 지으리라 생각하고 처방전만 가방에 가지고 다녔다. 대신 통증이 느껴질 때마다 통증을 줄이는데 효과를 본다는 아로마 오일로 마사지를 했다.
예전 몸의 통증을 필라테스와 자세교정으로 고쳤던 기억이 나서, 팔과 어깨를 위주로 신경을 쓰며 스트레칭을 했다. 운동을 하면 좀 나아지는 듯하더니, 주말 삼시 세 끼를 해 먹고 나면, 어김없이 지릿지릿 다시곤 통증이 밀려왔다. 어깨를 펴고 복식호흡을 해보아도 소용이 없었다. 한바탕 화장실 청소나 밀린 설거지를 하고 나면 유독 왼쪽 팔이 저려오기 시작함을 느꼈다.
이상하다…. 말린 어깨가 팔의 신경을 눌러 통증이 생긴다면, 왜 유독 왼쪽일까? 더구나 나는 오른손잡이인데....
통증을 견디며 저녁 설거지를 하다 보니 오른손 장갑 안으로 물기가 느껴졌다. '또 구멍이 났나 보다.'
나는 심한 오른손잡이라, 언제나 오른손만 힘을 쓰니, 고무장갑도 늘 오른손에 먼저 구멍이 나서 오른손용 외짝 고무장갑을 따로 사서 준비해 놓을 정도다.
어쩌면 왼팔의 통증은 내가 심한 오른손잡이이기 때문이 아닐까?
양치질, 젓가락질, 칼질, 글씨 쓰기, 하다못해 얼굴에 화장품 바르기까지 생활 모든 움직임을 오른손과 오른팔에 의존하다 보니, 왼팔과 왼손은 그저 오른팔에 이끌려 ‘공짜 인생’을 살아왔다. 오히려 쓰지 않는 손이기에 예쁜 반지나 시계 팔찌 등 치장만 하니 ‘일은 안 하고 누리고만 사는’ 존재였다. 얼마 전 화장실 청소를 대차게 하고 나니 오른쪽 등에 담이 결려 일어나지도 못했고 그 뒤로 왼팔 저림이 시작된 듯하다.
눈을 감고, 두 팔의 힘과 무게를 느껴보려고 집중해보았다. 생활 속 내 자세를 주의 깊게 관찰해보았다. 힘을 쓸 때뿐 아니라, 앉아있을 때도, 서있을 때도, 늘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자세를 하고 있었다.
오른손만을 쓰다 보니 오른팔은 힘이 세졌고, 기세가 등등해진, 오른팔이 오른쪽 어깨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당연히 일하지 않아 힘이 없고, 기가 죽은 왼팔과 왼쪽 어깨는 당겨져, 견갑골이 등에 딱 달라붙어 가능한 움직임의 범위도 작고, 어깨 신경도 눌러 팔이 저리고 아픈 듯했다.
그때 ‘허니문 이펙트’라는 한계를 뛰어넘는 잠재의식에 대한 책을 쓴 세계적인 세포 과학자 ‘브루스 립튼’의 영상을 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인체는 뇌가 컨트롤하는 50조 개의 세포들의 공화국’이며 우리는 각자가 ‘몸이라는 공화국의 리더’라는 설명이었다.
흠! 몸 공화국의 리더십을 한번 발휘해 봐야겠다!
먼저 왼팔과 왼손에게 대화를 시작했다. “왼팔아, 왼손아, 너는 평생 힘든 일을 하지 않아 힘이 길러질 기회가 없었구나. 세상엔 공짜가 없단다. 일을 통해 힘을 길러야 당당히 자기 몫을 챙길 수 있어. 너도 오른손과 같이 성장할 공평한 기회를 줬어야 했는데, 늘 눈앞의 일을 처리하는데 급급해 너를 소외시키고 그저 습관적으로 오른손만 써왔구나. 이제 네가 좀 느리고 굼떠도 가능한 많은 기회를 줄게. 안 쓰던 힘을 쓰려면 힘이 많이 들 거야. 굼뜨고 어설퍼서 너 스스로도 답답하기도 할 테고. 그렇지만 왼팔의 통증을 줄이기 위해서는 이 방법이 최선인 듯하다. 내가 같이 가줄 테니 한번 해보렴.”
그리고는 아침마다 칫솔부터 왼손에게 넘겨주었다. 가방도 왼팔이 들도록 하고. 칼질이나 불을 쓰는 일, 운전대를 쥐는 것 같이 안전과 관련되는 움직임 빼고는, 모든 손쓰는 일과 힘쓰는 일을 가능한 왼손과 왼팔에게 시켜보려고 노력했다.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다. 매 순간 진정 깨어 있어야 했다. 신경을 쓰지 않으면 습관적으로 오른손이 치고 나와 왼손의 일을 빼앗아 가기 때문이었다.
그럴 때마다 오른손에게 이야기하곤 했다. “오른손아 평생 정말 수고 많았다. 고마워~ 그런데 이젠 네가 좀 쉬엄쉬엄 일할 때가 온 것 같아. 네 쪽으로 틀어진 몸을 왼쪽에게도 좀 나누어 주자꾸나. 그래야 통증 없이 우리 모두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아.”
안 쓰던 왼손과 왼팔을 쓰자니 힘도 들고 영 답답한 게 아니었다. 피곤한 날은 통증이 심해지는 것 같기도 했다. 괜스레 호기심이 발동해 시작한 실험이, 몸을 더 나빠지게 만드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럴수록 오른쪽으로 기울고 틀어졌던 자세를 더 바르게 하려고 주의를 기울였다.
그룹 필라테스도 등록해, 명치를 들고 어깨를 바로 펴는 동작을 연습했다. 밀가루와 설탕이 몸의 염증을 일으키는 주범이라니 가능한 밀가루 음식을 피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늘 갓 구운 빵 냄새의 유혹과 오래된 습관 앞에 자주 무너지곤 했지만….
삼 주쯤 지나, 저녁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예전과 달리 왼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하는 게 느껴졌다. 오른손에 힘이 빠지고 왼손에 힘이 들어가 전혀 새로운 형태로 힘을 쓰고 있는 나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신기한 게, 그날 저녁부터 왼팔이 많이 가벼워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구나 몸안에서도 균형이 이렇게 중요하구나!
몸안에서도 한쪽만 일을 해도, 한쪽만 너무 기세가 등등해도 통증이 생기는구나! 모자라서도 안 되고 넘쳐도 안 된다더니, 넘치는 오른쪽의 힘과 모자라는 왼쪽의 힘, 그 발란스를 맞춰주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되는구나!
혈액순환과 균형, 어쩌면 몸의 많은 문제들은 이 두 가지가 핵심인 듯싶었다.
왼쪽 어깨의 통증이 아직 조금은 남아 있지만 아마도 계속 신경을 쓰고 노력하면 왼손과 왼팔의 능력이 커짐에 따라 점점 더 상태가 호전될 것 같다. 언젠가는 왼쪽 장갑에도 구멍이 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몸의 문제를 이렇게 혼자서 풀어보니 재미도 나고 스스로 대견하기도 하다. 어깨 통증으로 인해 자세에도 더 신경 쓰게 되고, 스스로의 몸에 대해 깨어 있게 되니, 통증이 나쁘기만 한 것도 아닌 것 같다.
예전 기업에서 일할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잡지사의 CEO 시절, 경험이 부족한 리더로서 어떻게 조직을 이끌어야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까 많이 고민했었다.
잡지사는 조직이 책을 만드는 편집부, 광고영업을 하는 영업부, 책을 팔고 사업운영관리를 책임지는 관리부 이렇게 세 부서로 나뉜다.
물론, 잡지사의 꽃은 편집부다. 에디터들은 수준 높은 책을 만들기 위해, 멋진 화보를 만들고, 기사를 쓴다. 반면, 영업사원들은 브랜드 담당자들을 상대로 광고영업을 해야 한다. 늘 광고주가 만족할 만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노력한다. 참으로 다른 삶을 사는 두 조직이 같은 조직 안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매체별로 편집팀과 광고팀의 역량 그리고 그 균형이 매체 사업의 성패를 가른다. 참으로 이상하게도 아무리 좋은 매체 브랜드와 강력한 편집팀이 있어도, 광고팀과 팀워크가 깨지면 매체는 성공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조직 간 힘의 균형도 맞아야 하고 팀워크가 좋아야 한다.
잡지사에서 리더의 역할은 각 매체 별 양 날개를 이루는 편집팀과 광고팀의 균형을 잡고 팀워크가 깨지지 않게 조절하는 일이었다. 편집팀의 힘이 모자라면 편집팀에 힘을 보태 주고, 광고팀의 힘이 모자라면 광고팀에 힘을 보태 주는 거였다.
팀 간 균형을 유지하면서, 양쪽 날개를 성장시킬 수 있다면, 그 매체가 멋지게 비상할 수 있음은 두 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었다.
어쩌면 세상 모든 곳에는, 사람의 몸이든, 가정이든, 기업이든 같은 원리가 작용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예로부터 몸과 가정을 잘 다스리고 나서야 비로소 세상을 다스릴 수 있다는 말들을 하는 것 같다.
역시 진리는 하나임에 틀림이 없는 듯하다.
더구나 몸으로 직접 체험하는 진리는 의심이 없어지고 믿음이 강해지니 희열이 느껴진다! 이렇게 나이가 들고, 통증이 생기고, 군데군데 모자란 곳이 생기는 것은, 겸손한 마음으로 진리를 몸소 체험하고 실천하여 지혜롭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드니, 나이 드는 게 일면 반가운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엘리베이터 거울을 통해 보니, 이마 위 빽빽하던 머리 숱이 적어진 게 탈모가 시작되는 조짐이 보이는 듯하다. 공화국 리더십을 발휘할 또 한 번의 기회인가?
이번엔 수승화강 <水昇火降> - '몸의 불의 기운은 내리고 물의 기운은 올린다'는 동양의학의 지혜를 내 몸 공화국내에서 테스트해 봐야겠다.